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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페테부르크


4월 21일 금요일

 새벽 다섯 시 5분, 상페테부르크에 도착. 수첩에 적어둔 Hi. St. petesburg Hostel을 찾아 비를 맞으며 헤맨다. 한 시간 반쯤 헤매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나무민박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마야콥스카야 역에 가려고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가서 15p짜리 토큰 구입. 지하철 역 몇 개가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지하철을 탈 필요도 없이 걸어서 마야콥스카야 역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바로 그 곳이 마야콥스카야 역이었던 거다. 길 건너는 데 15p를 쓴 셈이다.

 어렵지 않게 민박집을 찾아냈는데, 문을 찾을 수가 없어서 난감해하고 있다가 마침 지나가는 러시아 청년에게 핸드폰을 빌려 숙소에 연락을 해서 겨우 입구를 찾는다. 몹시 지쳐있었기 때문에 옷만 갈아입고 바로 잠이 들었다 열두 시에 일어난다. 라면과 쌀밥, 김치(!)를 얻어먹고 두 시쯤 밖으로. 에르미타지까지 30분 정도 걸려 걸어간다. ISIC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덕에 무료로 입장. 소장품은 그야말로 대단해서 세 시간쯤의 구경으로도 지칠 지경인 데다가, 아주 일부분밖에 보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렘브란트의 에칭 작업이 인상적이다. 구도를 공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에칭을 여러 번 반복하여 찍어내며 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사진의 인화작업과 유사해 보인다. 대리석 조각들은 '만지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킬 정도. 서양인들이 여기저기서 스트로보를 터뜨리고, 중국어를 쓰는 동양인들은 (경보음에도 불구하고)이것저것 만져보기에 바쁘다. 고흐 작품을 찾는 데에는 실패. 내일 다시 와보리라. 여섯 시에 광장에서 사열식을 구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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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미타지 앞에서 본 사열식


 요기를 하고 인터넷 카페를 이용하다 아홉 시쯤 숙소로 복귀. 주인 아저씨는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다. 일 년간 아르바이트를 하여 모은 단 돈 400만 원만 가지고 이집트까지 가려고 한다는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니 하루를 공짜로 재워주신단다(고마워요>.<b). 부인을 찾아볼 수 없고, 러시아 아주머니 한 분과 그녀의 딸 정도로 보이는 여자, 한국인인 주인 아저씨의 딸이 숙소를 지키고 있다.


4월 22일 토요일

 여덟 시 반쯤 "식사하세요"라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아, 민박은 좋구나! 천천히 밖에 나갈 채비를 하고 열한 시쯤 밖으로. 민박집에 빨래를 맡겨서 얇은 바지에 점퍼만 입고 밖으로 나왔는데, 날씨가 흐린 데다 바람까지 불어서 몹시 춥다. '피의 성당'을 가장 먼저 구경. 모스크바의 성 바실 성당을 모델로 했다는데, 과연 그 화려함이 대단하다. 옆을 흐르고 있는 운하가 아름다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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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성당. 모스크바의 성 바실 성당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네바 강 건너편에 가보기로 하고, 다리를 몇 개 건넌다. 붉고 거대한 등대 주변에서 결혼식을 마친 부부들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작은 섬에 들어가 엄청 뾰족한 첨탑을 가진 교회를 구경. 강변 어디서나 잘 보일 정도로 첨탑이 높다. '네바 게이트'로 나와 섬의 강변을 걷다가 박물관이 많은 곳을 지난다. 추워서 걸음을 멈추고 싶지 않다. 덜덜 떨며 다시 강을 건너 러시아 박물관을 지난다. 에르미타지 근처의 검은 색 건물로 들어가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으로 향하는 버스를 예매해 둔다. 유로라인, 5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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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어디에서나 잘 보이는 교회의 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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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산책중인 상페테부르크 시민들.


 몸을 조금 녹이다가 다시 밖으로 나간다. 밖은 여전히 주워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걷노라니 날씨가 다시 맑아져서 더 걷기로. 중심가 동쪽으로 가보기로 하고 걷다가 요의를 느껴서 그것을 해결할 겸 식당에 들어간다. 진열대 안의 요리를 고르면 점원이 그것의 무게를 달아 접시에 담아주는 곳이다. 감자볶음과 소고기만 먹었는데 가격이 무려 173p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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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잘 어울리는 배색의 성당


 여름정원 동쪽 3Km에 있는 하얀색과 하늘색으로 외벽을 칠한 예쁜 성당을 발견. 해가 조금 뉘엿해져 강물에 아름답게 반사되는 시간의 네바강변을 걷는다. "좋다"라고 혼잣말을 해본다. 여름 정원은 시간이 늦어 닫혀있다. 이삭 성당에서 노을을 기다린다. 하지만 아홉시가 넘어도 노을이 붉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홉 시 20분까지 기다리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숙소로. 숙소에는 손님 한 명이 와 있다. 30세의 배낭여행객 민형. 북유럽으로 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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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시 20분까지 기다려서 찍은 이삭 성당의 노을



4월 23일 일요일

 아홉 시 아침식사. 오늘은 민형과 함께다. 피의 성당을 지나 민형의 티켓팅을 도운 뒤 에르미타지에. 숙소에서 한글 가이드북을 빌린 덕에 지난번보다는 헤매지 않을 수 있다. 반 고흐며 르누아르들의 명작을 보는 감동이 대단하다. (사진 촬영료 100p.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은 대개 찍지 못하게 해놓은 경우가 많다) 오후 다섯 시까지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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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미타지의 전경. 전시물은 직접 보시길 권장합니다.


 가이드북에 적힌 이른 바 '건축가 로시의 거리'와 센노야 시장을 구경한 뒤, 전철을 타고 알렉산드로 네프스키 대수도원을 향한다. 합정동의 외국인 묘지 비슷한 분위기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무덤이 있다길래 찾아보려다 실패. 문이 닫혀있어 15p의 뒷돈을 주고 들어간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결국 돌아오는 길에 어디에 있는지를 알았으나, 문이 닫혀있다. 다시 전철을 타고 마야꼽스카야 역으로 돌아와 한국에서 나를 '술로 먹여살린' 선배에게 선물할 압생트를 구입한다. 무려 1613p!! 식은땀(?)을 흘리며 구매 결정.

 밤 열 시 넘어서 숙소에 도착한다. 하늘은 아직 한국의 여름 여덟시 정도의 밝기이다. 내일은 러시아를 떠나 에스토니아로 간다. 나보다 하루 뒤에 에스토니아로 온다는 민형과, 가능하다면 톰페아 언덕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