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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23 [전남기행]3. 땅끝 해남 인심에 세 번 감동하다(07. 10. 16.)


 만행 나오신 스님들의 뒤를 따라 걸어서, 미황사에 도착했습니다. 마을과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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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내를 둘러본 뒤, 목표지인 '도솔암'으로 가는 길을 여쭈었습니다. 가장 빠른 것은 '산책로'라 불리는 길이라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등산객이 전혀 없는 한적한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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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너덜지대도 나타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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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갈수록 길이 험해졌습니다. 나뭇가지에 걸려 바지가 찢어졌습니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도 점점 희미해졌고요. 소화되지 않은 털이 섞여 있는, 짐승의 배설물도 종종 나타났죠.
 
 네, 길을 잃었습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올라가는 길은 암벽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휴대전화는 잘 터져서 미황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으신 분께서는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죠.

 "겁 먹지 마시고 일단 산 아래로 내려가 보세요."

 산등성이를 조심조심 내려가자, 길이 나타났습니다. 곧 민가도 나타났습니다. 엉뚱한 길에서 내려오는 타지인을 소들이 멀뚱히 바라보았습니다.

 논에 계시던 아저씨께서 도솔암으로 가는 길을 다시 일러주셨습니다.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한 우리는 허기를 느끼고, 아저씨께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수 없냐고 여쭈었죠. TV에서, 밭일을 하다 짜장면을 시켜 드시는 촌로들을 본 적이 있었거든요. 아저씨는 고개를 가로저은 뒤 말씀하셨습니다.

 "배고프면 라면이라도 끓여줄까?"

 와, 공짜 밥이었습니다-! 아저씨께서 내어주신 맥주 한 병을 반주삼아, 땀을 뻘뻘 흘리며 먹어치웠어요. 역시 전라도 인심이야, 라고 속닥거리면서 우리는 눈을 마주치고 웃었습니다.

 그럭저럭 배도 채웠겠다, 다시 힘을 내서 출발했습니다. 포장된 도로를 걷다 보니 이런 팻말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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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살표가 수풀 안쪽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산책로'라는 길, 한참동안 사람들이 다니지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가능하면 안내 지도에 나온 대로
능선을 따라 이동하실 것을 권장합니다.

 정상에는 통신소 독립소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왼쪽으로 샛길이 나 있었어요. 도솔암으로 가는 길입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샛길로 들어서자, 엄청난 바람과 풍경이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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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바다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샛길을 따라 도솔암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20분 정도였습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발목을 붙잡는 듯해서 몇 번이나 주저앉아 쉬었어요. 오전에 길을 헤맨 덕에 예상보다 늦은 시간에 도솔암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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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몰 전에 땅끝에 도착하기 위해서 서둘러야 했습니다. 왔던 길을 따라 한 시간쯤 내려가자 주차장과 약수터가 나왔습니다. 마침 물을 길으러 오신 분들이 계셔서,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 여쭈었습니다. 조금 무뚝뚝해 보이는 초로의 부부였습니다. 물을 다 길으신 남편분께서 트럭의 뒤에 타라고 하셨어요. 그리곤 울퉁불퉁한 길을 아주 조심조심 운전해서 저희를 버스정류장 앞까지 태워다 주셨죠. 집을 지나쳐서 한참을 더 나오신 게 분명했습니다.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가며 감사합니다, 인사했습니다. 조수석에 타고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셨죠. 얼굴 가득 인상 좋아보이는 주름이 생겼습니다.

 7년만에 다시 찾는 땅끝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없던 모노레일이 생겨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비싼 것 같아 전망대까지 걸어 올라가기로 했어요. 구불구불한 아스팔트길을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 아래 주차장까지 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일몰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길을 걷는데, 동행이 갑자기 뒤쪽으로 달려갔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보았더니, 감이 든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가시던 할머니께서 떨어뜨리신 감 하나를 주워드리고 있더군요.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시고는 광주리를 손으로 가리키셨습니다.

 "그거 먹고, 하나 더 가져 가."

 '해남 인심 최고-!'라고 마음 속으로 외쳤어요.
 
 전망대에 예전에 없던 입장료가 생겨있는 데다, 일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땅끝탑으로 바로 내려갔습니다. 바로 바닷가와 접해 있어서, 올라간 만큼을 다시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일몰을 약 20분 남겨두고 땅끝탑에 도착했습니다. 마을 주민인 듯한 부부가 석양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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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 전에는 '토말비'라는 이름의 조형물에 낙서가 잔뜩 되어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땅끝탑'이라는 이름의 깔끔한 조형물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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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 사이에 변한 것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굳이 산을 넘지 않아도, 땅끝탑에서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이 뚫려있었다는 것. 모노레일 값을 아낀답시고 산을 헉헉대며 넘을 필요가 없던 것입니다. (새로 뚫린 길은 모노레일 매표소 왼쪽에 있습니다)

 이래저래 엉뚱한 길들을 헤맨 하루였지만, 해남 사람들의 정만은 듬뿍 느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