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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는 시골길을 30분 가량 달려 낙안읍성에 도착했습니다. 멋진 가을 하늘을 뽐내는 아침이었습니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성곽 위를 걷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우선 성곽을 한 바퀴 돌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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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토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낙안읍성에는 아직도 주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추석이 지났으니만큼, 초가지붕의 이엉을 얹는 모습도 볼 수 있었어요.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걸으며 재잘댔습니다. 장난기가 동해 녀석들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도시락 싸 왔어?"
 "네."
 "팔아라, 형한테."
 "1억 5천인데요."

 비싸기도 해라. 낮잠이나 한 숨 자야겠다고 마음먹고 아무렇게나 누워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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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이 얇은 눈꺼풀을 통과하여 검붉은 핏빛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눈을 뜨자 파란 하늘이 한가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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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될 수 있는대로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성곽을 걸었습니다. 몇 번을 멈추거나 주저앉았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태양이 머리꼭대기쯤 이르렀을 때 성곽 걷기를 마치고 마을로 들어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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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이 살고 있어서인지,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예스러운 돌담길과 초가지붕을 제외한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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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곳곳을 장승이 지키고 서있었습니다. 익살맞은 표정이 유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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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벌교로 가는 버스가 올 시간이었습니다. 낙안읍성의 푸른 가을하늘이여, 안녕-!



 순천만의 일몰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출발을 늦게 한 탓입니다. 순천역 앞의 여행안내소에서 교통편을 물어, 순천만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허겁지겁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태양은 지평선으로부터 한 뼘쯤 떨어져 있었어요. 갈대밭을 구경할 틈도 없이 달리듯 산을 올라 전망대를 향했습니다. 그 서슬에 나들이 나온 사람들 사이에 잠시 작은 길이 뚫렸다 사라졌죠.

 아, 늦지 않았습니다. 지평선에 다가간 태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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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로로 한 줄을 이루어 삼각대를 펼치고 있던 아마츄어 사진사들이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정신없이 들려왔습니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전망대에서 내려왔습니다. 시가지쪽의 하늘에선 불꽃놀이가 한창이었습니다. 어쩐지 도발적으로 보였습니다.

 터미널 옆 식당의 국밥은 지독히 맛이 없었습니다. 손님이 많아서 맛있는 집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바로 옆의 어판장에서 행사가 있었던 탓에 손님이 많은 모양이었습니다. 줄을 타는 광대를 술기운에 핏발이 선 눈으로 바라보는 어르신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순천의 젊은이들은 도대체 어디에 모여 있는걸까 궁금해졌습니다. 불빛을 향해 걷기 시작했죠. 불나방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다다른 곳은 순천제일대학 앞이었습니다. 몇몇 술집이 모여있는 정도였지만, 젊은이들이 종종 보였기 때문에 '이곳이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인가 보구나' 생각했어요. 술집을 찾아왔으니만큼, '술집'이라는 간판을 단 가게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지도를 펼치고 아르바이트생에게 여기가 순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냐고 물어봤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은 전혀 다른 곳을 가리키며 웃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연향동에 모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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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당히 취해서 택시를 타고 연향동에 갔습니다. 과연 젊은이들이 모여 있더군요. 확인을 했으니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궁전파크'라는 찜질방에서 숙박하기로 했습니다.

 찜질방의 전망이 좋았습니다. 연향동의 네온사인들이 내려다보였죠. 옆 건물 나이트에서 새어나온 음악소리도 들려왔어요.

 이제 불꽃 속으로 완전히 들어왔습니다.

 '불꽃 속에서 타들어가는 불나방처럼, 평안하구나'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