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시골길을 30분 가량 달려 낙안읍성에 도착했습니다. 멋진 가을 하늘을 뽐내는 아침이었습니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성곽 위를 걷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우선 성곽을 한 바퀴 돌기로 했습니다.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토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낙안읍성에는 아직도 주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추석이 지났으니만큼, 초가지붕의 이엉을 얹는 모습도 볼 수 있었어요.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걸으며 재잘댔습니다. 장난기가 동해 녀석들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도시락 싸 왔어?"
"네."
"팔아라, 형한테."
"1억 5천인데요."
비싸기도 해라. 낮잠이나 한 숨 자야겠다고 마음먹고 아무렇게나 누워버렸습니다.
햇살이 얇은 눈꺼풀을 통과하여 검붉은 핏빛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눈을 뜨자 파란 하늘이 한가득이었습니다.
될 수 있는대로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성곽을 걸었습니다. 몇 번을 멈추거나 주저앉았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태양이 머리꼭대기쯤 이르렀을 때 성곽 걷기를 마치고 마을로 들어섰어요.
주민들이 살고 있어서인지,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예스러운 돌담길과 초가지붕을 제외한다면 말이죠.
마을 곳곳을 장승이 지키고 서있었습니다. 익살맞은 표정이 유쾌했습니다.
아, 벌교로 가는 버스가 올 시간이었습니다. 낙안읍성의 푸른 가을하늘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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