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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11 중국-몽골-러시아 배낭여행, 어디서 자야 할까?
  2. 2007.02.26 2. 몽골(06. 4. 5. ~ 4. 11.)

중국-몽골-러시아 배낭여행, 어디서 자야 할까?

궤적 2007. 7. 11. 10:40 posted by 주말수염반장


 러시아까지의 여행기 포스팅을 마쳤습니다. 동유럽 여행기를 시작하기 전에 모아두었던 자료를 정리할 겸, 우선 러시아까지 이동하면서 묵었던 숙소에 대한 정보를 올리겠습니다. 요금 정보는 2006년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선 북경에서 첫날 밤에 묵었던 선희네 민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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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희네 민박 명함


 천진에서 배에서 내려 북경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면 '왕징'이라는 곳에서 버스가 정차하죠. 그 인근에 한국인 민박집이 많이 있습니다. 위의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하면 주인 아저씨께서 찾아가는 길을 설명해줍니다. 버스 하차 위치에서 그리 멀지 않아요. 1일 50위안. 저녁과 아침을 먹었는데(모든 손님에게 제공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북경에서 같이 있던 동행분께서 워낙 수완이 좋으셔서^ ^;;), 맛있었습니다.

 북경에서 사흘 자는 동안 각각 다른 숙소에서 잤어요. 다음 날에는 前門쪽의 '대책란가제일반점'이라는 곳에서 잤습니다. 전문의 대책란가를 따라 들어가다 보면 길 왼쪽편에 보여요. 2인 1실 60위안. 여행자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입니다. 마지막날 밤에는 여행자 거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악가(乐佳)여관에 짐을 풀었습니다. 2인 1실 80위안. 20위안 더 비쌌지만 대책란가제일반점보다 나을 건 없었습니다.

 호화호특에서는 통따반점이라는 곳에 머물었습니다. 역에서 내려 광장을 지나면 길건너 왼편에 보입니다. 바로 뒤편에 시장이 있어요. 2인실을 40위안 주고 혼자 썼습니다. 침대 스프링도 죄다 나가있고 온수도 밤에만 나왔지만, 채광이 아주 좋았습니다. 직원들도 친절했구요. 체크아웃하는 날에는 가방도 흔쾌히 맡아줍니다(무료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몽골의 울란바타르에서 묵었던 곳은 UB게스트하우스. 다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윗부분에 있습니다).2. 몽골(06. 4. 5. ~ 4. 11.) 

 이르쿠츠크에서 머문 곳은 '이르쿠츠크 다운타운 호스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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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 다운타운 호스텔. 역에서 가깝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위 명함의 점선표시를 따라 걸어가면 됩니다(20분쯤 걸립니다). 힘들다면 트램 1번을 타셔도 좋습니다(두 정거장). 입구가 건물 뒤쪽에 있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걸으셔야 할 겁니다.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은행은 환율이 좋지 않습니다. 숙소의 스텝들은 영어를 구사하는 유쾌한 성격의 사람들이구요, 인터넷은 유료(무지 느려요>.<). 도미토리 400루블입니다. 이르쿠츠크 시내지도 복사본을 받을 수 있으니 꼭 챙기세요.

모스크바에서는 트레블러스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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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트러스 게스트하우스.


 워낙 잘 알려진 곳이라서 그런지, 직원들이 사무적입니다. 방값도 터무니없이 비싸구요(도미토리 900루블, 거주자등록, 아침 포함). 지하철 역에서 접근성도 좋지 않네요.

 수즈달에서 묵은 곳은 Hotel Rizopolozhenskaya입니다. 2인 1실을 혼자 쓰는 데 800루블을 요구하는 것을 흥정하여 600루블에 이틀간 머물었죠. 수즈달이라는 곳이 워낙 조용한 곳이기도 했지만, 수도원 안에 있어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크지 않은 동네여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낮에 도착한다면요^^;;).

 상페테부르크에는 나무민박에 몸을 뉘였습니다. 주인 아저씨께서 화가이신지라 예술가다운 괴팍함(?)을 느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좋으신 분입니다. 중심가에 위치해서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지셨다면 어지간한 곳은 도보로 돌아보실 수 있습니다. 지하철 마야꼽스카야 역에서 812-273-3235(집)이나 812-955-8972(핸드폰) 번으로 전화해보세요. 하루에 20달러입니다.


2. 몽골(06. 4. 5. ~ 4. 11.)

궤적 2007. 2. 26. 21:11 posted by 주말수염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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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타르

 오전 아홉시 반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 도착했습니다. 배낭에 넣어두었던 두꺼운 옷을 꺼내 입고 기차역을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입김이 날 정도로 추운 날씨였습니다. 역에서 가장 가까운 환전소에 들어가 100$를 환전했어요(118100투그릭). 환전소 안의 TV에선 몇 해 전 종영한 한국 드라마 <보디가드>가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미리 출력해 온 약도를 택시기사에게 보여주고 UB게스트하우스로 향합니다(택시비 1000투그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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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게스트하우스(http://www.ubguest.com/)의 약도.


 숙소 앞에 이르렀는데, 마침 숙소의 주인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Where are you come from?"이라는 물음에에 "비 서동소스 이르승(한국 사람입니다)"이라고, 기차안에서 외워두었던 몽골어로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몽골어는 어디서 배웠어요?"라는 한국어더군요. 여행 준비를 대강 한 탓에 숙소 주인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몽골인들은 한국인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으니, 헷갈릴 만도 했죠. Mr.Kim이라고 불리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UB게스트하우스는 론리플래닛 등의 가이드북에서 '잘 나가는' 숙소로 평가받고 있는 곳입니다. 하루 숙박료가 겨우 5$(도미토리)인 숙소에 머물면서 5000투그릭(우리나라 돈이랑 단위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5000원 정도)짜리 밥을 두 번이나 얻어먹었어요.

 식당에서 Mr.Kim은 제게 겁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강도들이 도처에 날뛰고 있다나요. 값나가는 것들은 들고 다니지 말고, 어두워진 뒤에 돌아다니지도 말라. 사나운 몽골 녀석들에게 얻어맞고 돌아오는 손님들이 너무 많다, 정도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무려나, 어두워지려면 아직 멀었으므로 숙소로 돌아와 그에게 시내 지도를 얻어 대강의 설명을 들은 후 구경에 나섰습니다. 우선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가서 잠시 분위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제법 세련되어 보이는 젊은이들이 둘씩 셋씩 몰려다니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에 들었던 이야기 때문인지 그들의 눈빛이 좀 사나워 보이는듯도 했습니다. 잠시 앉아 지도를 보며 지도와 주위를 맞춰봅니다.

 근처의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모든 질문에 거의 유일하게 알고 있던 몽골어 "한국에서 왔어요"를 남발한 끝에 공짜로 들어갔습니다(나중에 알고 보니 유료라더군요). 몽골의 전시 센스는 그야말로 0점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명이나 디스플레이 모두. 고비 사막에서 발굴했다는 공룡화석은 볼만했어요. 그 엄청난 녀석을 사진기에 담고 싶었지만, 실내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림들과 박제된 동물들은 조금 섬뜩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몽골인들은 무언가 폭력적인 것이나 영웅의 기상(?)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모양이에요.

 Mr.Kim이 지도에 체크해준 '간단히드'라는 사원으로 향하던 중, 언덕 위에 돌무더기가 있는 것을 보고 한 번 올라가 봤어요. 몽골인들이 그 주위를 돌며 돌을 던져놓기도 하고 주위에 술을 뿌리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올라와 놀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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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히드 앞의 벤치에서 한참동안 앉아서 몽골인들이 하는 양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네처럼 건물을 보고 감탄을 하거나 사진을 찍기보다는, 묵묵히 들어와서 그들의 종교행위를 하고 나서 묵묵히 나갈 뿐이었습니다. 포니테일을 한 사내도 몸에 밴 건들거리는 자세로-하지만 묵묵히- 경내를 돌고, 머리카락을 노랗게 염색한 젊은이도 어머니를 모시고 와 경내를 돌고. 아이들은 팔이 닿지 않는 곳에 매달린 종을 만지기 위해 안감힘을 썼구요.

 돌아오는 길에 고려식당이라는 한국어 간판을 내건 식당에서 맥주 한 병(1200투그릭), 비프커틀릿(3000투그릭)을 마시고 먹었습니다. 울란바타르에서는 한국식당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어요. 보통의 몽골 음식점보다는 두어배쯤 가격이 비쌌지만, 인기가 꽤 좋은 모양이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Mr.Kim의 꼬임(?)에 넘어가 카라코룸 투어를 하기로 결정합니다. 기사포함, 게르 1박, 론리플래닛판 러시아어 프랙티스북과 시베리아횡단열차 가이드북, 합쳐서 80$.

 카라코룸

 다음날 아침 일찍 슈퍼마켓에 가서 6000투그릭어치의 음료수와 보드카, 먹을 것들을 사서 떠날 채비를 했어요. 열 시에 기사가 딸린 승용차를 타고 출발합니다.  기사의 이름은 바이라. 32세, 아들 하나를 둔 유부남. 고수머리에 쌍꺼풀, 유순한 얼굴. 동행하게 된 사람은 일본인 유스케군. 동갑내기. 웃을 때마다 금니가 보입니다. 요 녀석은 몽골에 여행을 온 동기가 '비트박스를 연구하기 위해서'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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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을 해준 몽골인 바이라씨.


 자동차는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거의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움품움푹 패인 도로를 달렸습니다. 앞자리에 탔는데, 앞에 얼마나 깊은 구덩이가 있을까 주시하느라 긴장을 늦출 수가 없더라구요. 이렇게 달려서야 도착할 때쯤이면 자동차의 충격완화장치가 다 망가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점심무렵 '룬'이라는 곳에서 잠시 차를 세우고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굴라쉬(1200투그릭, 이 음식은 이번 여행의 종착지인 이집트에서까지 먹을 수 있었어요. 나라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지만,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이더군요. 조리법은 여기! ), 수테차이(100투그릭)을 먹고 마셨습니다.

 세 시 반쯤 '리틀 고비'라고 불리우는 곳에서 말을 타봤어요. 처음이어서 조금 허둥대자니 유스케군이 말을 탈 때에는 발판에 힘을 주어 약간 서있는 느낌이 되어야 한다고 일러주더라구요. 딱딱한 안장 탓인지, 사타구니께가 아팠습니다. 신나게 달려보지는 못했지만, 푸른 하늘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말 주인 아저씨의 게르에서 수테차이도 얻어마셨구요. TV에선 몽골어로 더빙된 러시아 흑백영화가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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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옆에는 양도 키우고 있다.


 오후 일곱시쯤, 카라코룸에 도착했습니다. 영어를 구사하는 아주머니 가야와 그의 남편, 그리고 어린 딸들 칸쵸쵸와 나막쵸춍이 살고 있는 게르에 묵게 되었죠. 우선 저녁으로 말린 고기로 낸 국물에 면을 삶아 만든 칼국수 비슷한 음식을 먹었어요. 밤중에는 몽골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할아버지의 공연을 봤습니다. '모린 호르'라는 해금을 닮은 악기, 가야금을 닮은 '야트가'등을 연주했는데요, 감상평은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였습니다. 좀 투박한 느낌이어서요. 할아버지의 솜씨가 좋지 못한 걸지도 몰라요. 하루 전에 울란바타르 시내를 돌아다니다 길거리에서 들은 것은 이쪽보다는 나았거든요. 몽골 허밍은 신기하더군요. 코로 허밍을 하는 동시에 목에서도 소리를 내기도 하고, 나무토막으로 머리를 울림판 삼아 연주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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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쵸쵸와 나막쵸춍("나 좀 그만 괴롭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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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금 연주. 투박한 소리가 난다.


 공연이 끝나고 유스케군과 술을 마셨습니다. 저는 보드카, 유스케군은 맥주. 몽골의 마실거리에서는 뭐랄까, 몽골적인 맛이 느껴지는데(심지어는 보드카에서도), 그리 좋은 쪽의 맛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오줌같은 느낌이랄까요. 물론 오줌을 마셔보지는 않았습니다. 보드카 한 병을 비우고 기분 좋은 취기를 느끼면서 게르 밖으로 나가 별을 올려보았습니다.

 아침은 간장소스의 볶은면. 열 시쯤 가야의 집을 떠나 '에르데네 주 키드'라는 사원을 둘러보았습니다. 앞서 말했던 몽골인들의 묘한 취향을 말해주는 듯, 탱화들까지 무시무시합니다. 사람가죽으로 만든 말안장 앉은 괴상한 몰골의 사람을 조각해 놓은 것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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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다깨다하며 차 안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몽골노래(노래도 '영웅의 기상' 느낌이어서 비장하기 이를데 없습니다)를 외울 지경이 되었을 때쯤 울란바타르에 도착했습니다.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려오느라 피곤한 몸을 누이고 하루 쉬기로 합니다.

 테렐지

 느리적느리적 테렐지에 갈 준비를 합니다. 지난 밤에 테렐지에 가기로 결정했거든요. 가게에서 7000투그릭 정도의 먹고 마실거리를 산 뒤 숙소에서 대절해준 봉고차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동행은 역시 유스케군. 한 시간쯤 걸려 도착헸어요. 그런데, 갑자기 유스케군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아침에 먹은 것이 잘못된 모양이라며 토를 하더라구요. 강아지 한 마리가, 게르 밖으로 나와 토를 하는 유스케군을 꼬리치며 좇아다니면서 토를 먹어치웠습니다. 유스케군을 데리고 옆 게르에 들어가 같은 숙소에서 하루 먼저 이곳으로 왔다는 미국인 여행자들에게 약을 얻어서, 먹게 했습니다. 그는 게르 안에서 쉬기로 했고, 저는 주위를 산책했습니다. 게르 바로 뒤쪽에 바위산이 있어서, 올라가보기도 하구요. 테렐지쪽이 카라코룸보다는 제가 생각하던 몽골의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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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하는 가나와 유스케. 게르는 멀리 보이는 바위산 아래에 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말을 탑니다. 두 시간 동안 산 너머까지 다녀오는 코스였어요. 아까의 그 미국인들과 저를 가나라는 이름의 열 살짜리 몽골 어린이가 리드했습니다. 그의 리드에 따라 말이 짧은 시간동안 질주했는데,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를 정도였달까요. 돌아오는 길엔 말이 땀을 흘리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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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소년 가나

  유스케군은 앓은 탓인지, 조금 까칠해져 있었습니다. 불을 지펴주러 들어온 가나의 삼촌과 보드카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한국에 가서 일을 했었다. 그러나 곧 쫓겨났다. 다시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싶지만, 비행기삯이 없다"라는 정도의 내용)를 나누었습니다. 그가 나가자 유스케군은 게르의 문을 안쪽에서 잠궈버렸습니다. 새벽에 가나의 삼촌이 불을 때주러 다시 들어올 거라고 말했더니, 그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별 수 없이 얇은 침낭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습니다. 게르 가운데에 있는 난로의 불이 꺼지자, 엄청난 한기가 몰려왔습니다. 새벽 한 시와 여섯 시, 두 번이나 추위때문에 잠에서 깨었어요.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가보니, 바깥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덜덜 떨면서 다시 잠을 청해 여덟시까지 자고 일어나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산그림자가 있을 때 사진을 찍어두려고 했는데, 어디선가 개들이 사납게 짖으며 달려든는 통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게르를 들락날락했죠. 해가 완전히 뜨고 나서야 다시 나가 산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개 한 마리가 몸을 부비며 친한척을 해서 함께 걷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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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사이 마을은 눈에 덮혀 있었습니다. 산그림자가 산중턱까지 기어올라갔을 때쯤되어 게르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툴툴거리며 게르 위에 올라갔어요. 올라가느라 밑에 두고 간 빗자루를 건네받자, 아이들은 솜이불처럼 두툼하게 쌓인 눈을 꼼꼼히 쓸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눈발을 흩뿌렸냐는듯이 푸른 하늘 아래에서였습니다.

  가나와 뭉크가 지붕에 올라가 눈을 치우는 걸 보고 있자니, 열 시 반쯤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낸 차가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눈썰매를 타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어요. 숙소로 돌아가 씻고 세탁서비스를 요청한 뒤, 역 근처의 국제열차표 구매창구까지 걸어가 내일 저녁 러시아의 이르쿠츠크로 떠나는 기차표(33000투그릭, 4인실 윗칸. 도착은 출발 이틀 후 아침 여덟시)를 예매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빨래를 널고 신발을 빨며 이동을 준비했습니다. 갑작스레 변의를 느껴 화장실에 앉아 식은땀을 흘리며 설사를 했습니다. 한국에서 미리 사 둔 지사제 두 알을 투약하고, 저녁 일곱 시까지 한 숨 잤습니다. 일어나보니 옆 침대에 캐나다인 한 명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지금 막 이르쿠츠크에서 오는 길이랍니다. 이르쿠츠크는 몹시 춥다며(자기가 있을 때에는 영하 12도나 되었다고 하더군요) 옷이 충분하냐고 걱정을 하더군요. 제가 가려고 하는 호스텔(이르쿠츠크 다운타운 호스텔. 호스텔 검색은 여기! 또는 여기! 제가 여행하던 때는 비수기라 예약을 전혀 하지 않고-신용카드가 없어서 예약도 불가능했지만-링크해둔 사이트에서 어디서 묵을까만 결정한 뒤 이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종종 난처한 상황에 처할 때도 있었어요)에서 묵었던 모양으로, 기차역에서 다리쪽으로 가는 트램 1번을 타면 금방 도착한다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제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이집트의 여름은 몹시 덥다며 또 걱정을 해줍니다. 유스케군은 다음날 아침에 유럽으로 떠난다고 했습니다. 여행중 영어에 대해 느끼는 것은, 영어는 마치 탁구와 같아서 좋은 상대를 만나면 더 좋은 영어를 구사할 수 있고, 실력없는 상대를 만나면 형편없는 영어가 입밖으로 튀어나온다는 것입니다. 사흘이나 같이 다닌 유스케군과 충분히 친해지지 못한 것은 짧은 영어탓이랄수도 있겠죠.

 다음날에는 기차 안에서 먹을 것들을 사고 남은 몽골돈을 러시아 루블로 환전해둔 뒤, 숙소에서 웹서핑을 하며 기차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여섯 시 사십 분쯤 기차에 올랐습니다. 같은 칸에는 러시아인 부부와 딸 한 명이 함께 타게 되었습니다. 몽골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왔었는지, 기차가 떠날 때까지 플랫폼의 가족을 유리창을 통해바라보며 우는 바람에 인사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기차가 출발하고 나서 한참 뒤에야 인사를 나누었어요. Mr.Kim에게 받은 러시아어 프랙티스북이 유용했죠. 딸의 이름은 레나이고, 이르쿠츠크에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열여덟 살이고 학생은 아니라는군요. 온 몸을 울려 나오는 목소리가 비염 탓에 막혀버리는 듯한 목소리의 소유자입니다. 영어는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셋 중 누군가에게선가 풍기는 암내가 대단하더군요.

 아마도 새벽 네시나 다섯시쯤 국경인 수흐바타르에 도착한 듯했습니다. 여덟시 반쯤 일어나 역으로 가서 소변을 보고 세면을 했어요. 기차로 돌아와 몽골 군인이 국경에서 돈을 압수할지도 모른다는(불법으로 돈을 버는 것을 막기 위해 입국할 때에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인지를 적어야 합니다. 나갈 때에 가진 돈이 들어올 때의 돈보다 많으면 그 차액만큼을 압수한다고 합니다. 극단적인 경우겠죠. 뭐, 저는 귀찮아서 그 칸을 공란으로 해두었습니다) Mr.Kim의 으름장을 떠올리고는 점퍼의 모자 말아넣는 곳에 돈을 말아 종이에 싼 것을 청테잎으로 붙여놓았습니다. 출국심사는 제법 삼엄한 분위기였습니다. 다행히 돈 검사는 하지 않았구요. 열시쯤 기차가 출발하여 열한시쯤 러시아쪽 국경의 나우시키 역에 도착합니다. 한시쯤 입국심사를 마치고 여권을 돌려받았습니다. 두시 반까지 나우시키 역 주위를 산책했습니다. 한적한 시골마을로, 목조건물이 많았고 수종이 몽골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산책 도중 스쳐지나간 러시아 꼬마여자아이의 입모양은 뭔가 욕을 하는 듯했고(눈빛이 분명 그랬거든요), 중학생쯤 되어보이는 사내녀석은 허리가 가슴께에 있어보일 정도로 다리가 길었는데, 걸음은 또 어찌나 빠르던지요. 기차는 네시아 다시 출발했습니다. 그야말로 완행이어서 작은 역에서도 하나하나 정차를 합니다. 같은 칸의 아저씨가 토마토 하나와 살라미 소세지를 잘라서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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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나우시키 역


 옆 칸에는 브리얏 계열의 러시아인(몽골인으로 착각했습니다. 러시아에 사는 몽골 민족입니다)이 몽골에서 한국 전자제품을 잔뜩 사가지고 와서는 내게 설명서 내용을 알려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앙가르스키라는 곳에서 마사지를 하는 분이라는데, 무척 유쾌한 아주머니입니다. 한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아줌마 타입이어서, 전국노래자랑에서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무대 아래로 뛰쳐나가 춤을 추시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거의 정확합니다. '까레야(한국)' 물건을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재킷 하나를 보여주시며 울란바타르의 한국상품 상점에서 샀다는데, 아무리 보아도 중국제 같아 중국제라고 했더니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하더라구요. 같은 칸의 일행과 나누는 대화의 억양이나 제스츄어, 표정을 살펴보니 '속았다' 하는 것 같았습니다. 설명서는 건강보조기의 것이었는데, '정력증강'이나 '생리불순' 같은 단어들을 온갖 몸짓으로 설명하기란 꽤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자, 내일 아침이면 바이칼 호수 옆의 도시 이르쿠츠크에 도착합니다. 꽝꽝 얼은 바이칼 호수 위를 걸어봅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닥터 지바고의 눈 덮인 벌판이 생각나신다구요? leoniscore군은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러시아인들의 현실과 만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