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몽골-러시아 배낭여행, 어디서 자야 할까?

궤적 2007. 7. 11. 10:40 posted by 주말수염반장


 러시아까지의 여행기 포스팅을 마쳤습니다. 동유럽 여행기를 시작하기 전에 모아두었던 자료를 정리할 겸, 우선 러시아까지 이동하면서 묵었던 숙소에 대한 정보를 올리겠습니다. 요금 정보는 2006년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선 북경에서 첫날 밤에 묵었던 선희네 민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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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희네 민박 명함


 천진에서 배에서 내려 북경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면 '왕징'이라는 곳에서 버스가 정차하죠. 그 인근에 한국인 민박집이 많이 있습니다. 위의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하면 주인 아저씨께서 찾아가는 길을 설명해줍니다. 버스 하차 위치에서 그리 멀지 않아요. 1일 50위안. 저녁과 아침을 먹었는데(모든 손님에게 제공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북경에서 같이 있던 동행분께서 워낙 수완이 좋으셔서^ ^;;), 맛있었습니다.

 북경에서 사흘 자는 동안 각각 다른 숙소에서 잤어요. 다음 날에는 前門쪽의 '대책란가제일반점'이라는 곳에서 잤습니다. 전문의 대책란가를 따라 들어가다 보면 길 왼쪽편에 보여요. 2인 1실 60위안. 여행자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입니다. 마지막날 밤에는 여행자 거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악가(乐佳)여관에 짐을 풀었습니다. 2인 1실 80위안. 20위안 더 비쌌지만 대책란가제일반점보다 나을 건 없었습니다.

 호화호특에서는 통따반점이라는 곳에 머물었습니다. 역에서 내려 광장을 지나면 길건너 왼편에 보입니다. 바로 뒤편에 시장이 있어요. 2인실을 40위안 주고 혼자 썼습니다. 침대 스프링도 죄다 나가있고 온수도 밤에만 나왔지만, 채광이 아주 좋았습니다. 직원들도 친절했구요. 체크아웃하는 날에는 가방도 흔쾌히 맡아줍니다(무료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몽골의 울란바타르에서 묵었던 곳은 UB게스트하우스. 다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윗부분에 있습니다).2. 몽골(06. 4. 5. ~ 4. 11.) 

 이르쿠츠크에서 머문 곳은 '이르쿠츠크 다운타운 호스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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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 다운타운 호스텔. 역에서 가깝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위 명함의 점선표시를 따라 걸어가면 됩니다(20분쯤 걸립니다). 힘들다면 트램 1번을 타셔도 좋습니다(두 정거장). 입구가 건물 뒤쪽에 있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걸으셔야 할 겁니다.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은행은 환율이 좋지 않습니다. 숙소의 스텝들은 영어를 구사하는 유쾌한 성격의 사람들이구요, 인터넷은 유료(무지 느려요>.<). 도미토리 400루블입니다. 이르쿠츠크 시내지도 복사본을 받을 수 있으니 꼭 챙기세요.

모스크바에서는 트레블러스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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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트러스 게스트하우스.


 워낙 잘 알려진 곳이라서 그런지, 직원들이 사무적입니다. 방값도 터무니없이 비싸구요(도미토리 900루블, 거주자등록, 아침 포함). 지하철 역에서 접근성도 좋지 않네요.

 수즈달에서 묵은 곳은 Hotel Rizopolozhenskaya입니다. 2인 1실을 혼자 쓰는 데 800루블을 요구하는 것을 흥정하여 600루블에 이틀간 머물었죠. 수즈달이라는 곳이 워낙 조용한 곳이기도 했지만, 수도원 안에 있어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크지 않은 동네여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낮에 도착한다면요^^;;).

 상페테부르크에는 나무민박에 몸을 뉘였습니다. 주인 아저씨께서 화가이신지라 예술가다운 괴팍함(?)을 느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좋으신 분입니다. 중심가에 위치해서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지셨다면 어지간한 곳은 도보로 돌아보실 수 있습니다. 지하철 마야꼽스카야 역에서 812-273-3235(집)이나 812-955-8972(핸드폰) 번으로 전화해보세요. 하루에 20달러입니다.




모스크바


4월 17일 월요일

 새벽 네 시 조금 넘어 모스끄바에 도착한다. 바샤 가족과 함께 행동하기로 하고, 지하철이 다닐 때까지 대합실에서 기다린다. 동이 틀 때쯤 지하철을 타고 벨라루시 역으로 향한다(러시아의 기차역은 종착지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다). 짐을 보관소에 맡기고(67p) 크렘린으로. 따뜻한 아침 햇살이 사진찍기 좋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크렘린 주위의 붉은 광장(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거의 없다)과 성 바실 성당, 모스크바 강 등을 구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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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실 성당 앞에 선 바샤. 바샤의 이름은 성 바실리의 이름에서 따왔다.



 바샤 가족은 아마도 돈이 떨어진 눈치였다. 맥도널드를 발견하고 칭얼대는 바샤를 어르던 안나는 근처의 간이 상점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핫도그 하나를 사 먹인다. 바샤를 제외한 모두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묘한 침묵. 하릴없이 앉아 있다가 다시 벨라루시 역으로. 역 주위에서 바샤 가족이 기차에서 먹을 것들을 장본다. 무얼 사더라도 한참씩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하다. 대합실로 돌아와 세르게이 할아버지의 제안으로 맥주 한 병씩을 마신다(56p). 빈속에 맥주를 마신 나는 조금 거나해져서, 바샤 가족에게 한 턱 내겠다며 피자집에 들어간다. 커다란 피자 한 판과 콜라 두 병(440p)을 먹고 마신다. 토마토 소스가 전혀 없고 조금 짰지만, 모두들 맛있게 먹는다. 먹기를 마치고 나오며 안나는 리듬체조 하는 시늉을 하며 무언가 말했는데, 아마도 “배가 불러서 체조라도 할 기분이야”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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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는 내려가는 데 몇 분이 걸릴 정도로 길다. 바샤는 곧 헤어진다는 걸 아는지, 이날 내내 어두운 표정이었다.


 세 시 반쯤 맡겨두었던 짐을 그들이 탈 기차 안으로 옮겨준 뒤, 작별. 바샤는 작별을 눈치 채고 서운한 얼굴이 된다. 하지만 오줌 마려운 것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우는 모습을 베개로 감출 줄 아는 씩씩한 러시아 어린이답게(?) 울지는 않았다. 모두와 포옹한 뒤 배낭을 메고 등을 돌린다.

 프로스펙트미라 지하철역으로 가서 론리플래닛을 통해 알아둔 숙소로 향한다. 트레블러 게스트하우스(900p, 거주자 등록, 아침식사 포함. 4인 1실 도미토리). 은행에서 100달러를 환전(2775루블)한 뒤, 음료수 두 병(50p)을 사서 속소로. 잘못하여 탄산수를 샀는데, 감상을 말하자면 “물에다 무슨 짓이야!” 정도. 해갈한 뒤, 쓰러져 잠이 든다.


4월 18일 화요일

열두 시간동안 잠을 잔 뒤, 여섯 시에 기상. 밖에는 비가 내린다. 샤워를 하고 여덟 시에 아침식사. 향후 계획을 세우고 짐을 맡긴 뒤 아홉시에 체크아웃(러기지 룸에서 몽골과 이르쿠츠크에서 만났던 미국인들을 다시 만난다. 짧게 일별만 함). ‘향후 계획’은 다음과 같다.

 
4/18 모스크바 시내 구경, 사진기 사기. 다섯 시에 수즈달 가는 버스타기. 수즈달에서 1박.
 4/19 수즈달 구경. 야로슬라블, 로스토브 벨리키, 세르기예브 포사드 중 어느 곳의 버스(or 기차)가 있나 알아보기. 없으면 일찍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다시 기차를 타고 로스토브 벨리키에 가서 1박.
 4/20 황금고리 구경. 야로슬라브에서 상페테부르크(아마도 야간 기차) 오르기.
 4/21 상페테부르크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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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최 벽이라고 생각되는 곳


 지하철 5회권(70p)을 사서 아르바트 거리로 향한다. 신 아르바트 거리는 한국으로 치자면 종로 정도의 분위기이다. 가이드북에서 ‘인사동’ 운운하던 곳은 구 아르바트 거리인가보다. ‘빅토르 최 벽’이라고 생각되는 곳과 푸쉬킨 부부 동상 등을 본다. 비가 온 탓인지 노점상이나 사람들은 생각보다 적다. 사진 가게를 발견하여 들어가본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주인이라 어쩐지 믿음이 간다. 라이카 바르낙 모델의 레플리카인 조르키 1을 구입한다. 필터와 케이스, 후드 등의 악세사리를 착실히 챙긴다. 상태를 확인하고 작동법을 배우는 동안 말은 동하지 않지만 몸짓으로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진이라는 취미를 가진 자들끼리의 동질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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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 가게의 할아버지. 어딘지 신뢰가 가는 얼굴이다.


 구 아르바트 거리의 끝에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건물을 발견한다. k대 평화의 전당쯤은 “저리 가세요”라고 말할만한 건물. 근처 모스크바 강변의 건물들도 대단하다. 구경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Novodevichy Convent로. 시장을 지나서 나타난 그곳은 론리플래닛이 말한 것처럼 ‘beautiful’하지는 않다. 다만 크기가 굉장하다는 것을 주위를 돌면 알 수 있다. Bell Tower가 그럴 듯했지만, 날씨가 흐려 사진 찍을 마음이 들진 않는다. 걷기 지칠 무렵, ‘저기쯤 체홉의 무덤이 있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건물이 멀리 보였고, 나는 지하철 역으로 돌아간다. 모스크바 대학 역에 잠시 앉아있는데, 뭔가 ‘똘돌이’들이 “나는 공부벌레가 아니야. 나도 제법 괴짜다운 구석이 있다구”라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듯한 외모의 녀석들이 몇몇 있다.

 오후 세 시 40분쯤 프로스펙트 미라 역에 도착한다. 맥도널드에서 빅맥세트 먹음. 캐챱을 따로 판다(115+8p). 네 시쯤 먹기를 마치고 숙소로 향한다. 슬슬 늦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수즈달 행 버스는 하루에 한 대, 오후 다섯 시에 있다고 한다. 짐을 찾고 나서 발을 동동 구르며 지하철을 타고 버스터미널이 있는 Shchyolkovskaya 역에 도착했을 때엔 이미 다섯 시가 넘어 있다. ‘아아, 야로슬라브 쪽으로 가야 하나’하고 포기하는 마음으로 “수즈달, 아진, 빠좔루이스따(수즈달, 하나, 부탁해요)”라고 말하자 놀랍게도 18시 30분 차가 있다고! 직행은 아니고, 이바노보라는 곳으로 가는 도중에 내리는 모양이다. 177p. 다행이다(몇 시에 도착할 지는 모르겠지만). 버스를 기다리면서 일기쓰는 중. 그나저나, 모스끄바 물가, 너무 비싸다! 네스티 한 병 40p! 이르쿠츠크에서는 핫도그랑 네스티 합쳐서 50p이었는데.

 기사 아저씨가 깨워서 눈을 뜬 시간은 밤 11시이다. 수즈달에 도착하면 깨워달라며 15p 짜리 음료수를 사드린 보람이 있구나, 생각하며 내려보니 주위는 암흑천지이다. 마치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내린 기분이다. 추위 때문이라기보다는 공포 때문에 턱이 덜덜 떨린다. 기사 아저씨가 가리킨 방향으로 무작정 걷는다. 한참을 걷다가 맞은편에서 차가 한 대 달려왔을 때에서야 내가 걷는 곧이 도로 한복판임을 깨닫는다. 서둘러 도로 한쪽으로 비켜서자,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뒤에서 달려온다. 가이드북이 목숨줄이라도 되는 듯이 겨드랑이에 꼭 끼고 더욱 빠른 속도로 걷기 시작한다. 개라도 한 마리 왕왕 짖으며 달려오면 최악의 상황이 되겠구나, 생각하며 걷노라니, 맞은편에서 손에 술병 같은 것을 든 젊은이 두 명이 다가온다. ‘살려주세요’라고 중얼거리며 그들에게로 간다. 러시아어로 무언가를 말하면서 내게로 다가온 그들은 가까이에서 나를 본 후 이방인임을 깨닫고 ‘아!’하는 표정을 짓는다. 놀랍게도 떨림이 그친다. 그들에게 잠자는 시늉을 했더니 길을 가르쳐준다. 그들이 가리킨 곳으로 조금 더 걸어가자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참전용사 묘지인 듯한 ‘꺼지지 않는 불꽃’을 지나 레스토랑 쪽으로 가서 가이드북을 펼쳐든다. 어디쯤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젊은이 두 명이 카페에서 나온다. 그들 중 하나가 영어를 약간 구사할 줄 알아서 길을 물으니 “Don't worry"라며 카페로 따라오라고. 그들은 여자 넷과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이쯤에서 마음을 놓고 잠시 앉아 그들과 한담을 나눈다. ‘레나’라던가 하는 여자 하나가 내가 찾는 곳 근처에 산다는 것을 알고 함께 걷기 시작한다. 아아, 드디어 숙소다! Hotel Rizopolozhenskaya. 론리 플래닛에 나온 것과는 달리 800p을 부르는 것을, 600p로 흥정하여 체크인. 여행 시작 후 처음으로 싱글룸을 쓰는 것이다. 황금고리쪽으로의 이동은 하루를 소모하더라도 낮에 하기로 결심한다.



수즈달

4월 19일 수요일

 생각보다 몸이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열시 반 기상. 찌뿌둥하다. 샤워하고 1박 더할 것을 통보한 뒤 현금인출기에서 2000p 출금. 레스토랑을 찾아 걷다보니 Nativity of the virgin cathedral에 도착. 푸른색의 돔이 인상적이다. 이 곳을 중심으로 주변을 돌며 사진을 찍으면서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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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vity of the virgin cathedral


 빵과 라면(도시락 라면. 한국에서 파는 바로 그거다. 소고기맛과 닭고기맛이 있는데, 소고기맛이 우리가 먹던 그 것. 키릴문자로 ‘도시락’이라고 써 있다), 오렌지 두 개, 우유 한 병, 속에 으깬 감자가 든 파이를 사서 숙소로 돌아와 점심식사. 무척 허기진 상태여서 맛있게 먹는다. 한숨 잔 뒤, 네 시 반쯤 다시 밖으로. 이번은 마을의 북쪽을 산책한다. 비가 조금씩 내린다. 비싼 입장료가 무서워 Saviour Monastery of St. Euthymius 주변을 걷기만 한다. 치사하게(?)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멍은 모조리 막아놓았다. 지도에 표시된 목조다리는 끊어진 상태여서 강변을 걷다가 저녁거리를 사서 계속 산책. 론리플래닛에 실린 St. Lazarus' Church 사진을 찍은 장소를 찾아냄. 구름이 걷히고 사진찍기 좋은 빛이 비추기 시작하여 Convent of the Intercession까지 걸어간다. 예쁜 오두막이 많은 아기자기한 곳이다. 수즈달이 마음에 들기 시작한다. 다만 차편이 좋지 않아 개인 여행자에게는 접근이 조금 힘든 곳이라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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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Lazarus' Church. 론리 플래닛 사진 따라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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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을 찍은 곳의 바로 뒤편 집에 살고 있는 고양이.


 숙소에 돌아와 리셉셔니스트에게 물으니 블라디미르로 가는 버스는 아침 다섯 시 20분부터 있다고 한다. 내일 일찍 출발하기로 마음먹는다. 조르키 1의 스풀(필름이 감기는 부분)이 망가져 있음을 발견하여, 모스끄바에 도착하면 아르바트 거리에 잠시 들러야 할 것 같다. 어두워지기 전에 로스토브 벨리키에 도착해야 할 텐데.


4월 20일 목요일

 이동에 하루를 소비. 여덟 시 반쯤 체크아웃하고 터미널로 걸어간다. 이틀 전 밤에는 터미널이 닫혀있었기 때문에(알고 보니 저녁 여덟 시에 닫는다고 한다) 길 복판에서 내렸던 듯하다. 아홉 시 블라디미르행 버스가 막 출발하려는 찰라다. 표를 사고 나와보니 이미 아홉 시 버스는 떠난 뒤. 삼십분을 기다려 다음 버스를 타려다 야로슬라브행 버스가 있음을 시간표에서 발견하고 매표구에서 확인하고 나오니 아홉 시 반 버스도 떠난 뒤이다. 열 시 버스(30p)를 차장에게 혼나며 탑승한다.

 50분쯤 후에 블라디미르에 도착한다. 터미널 안의 매표구에서 모스끄바행 버스표를 사려고 세 번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 러시아어를 모르는 내 탓을 하며 자신을 달래려 했지만, 그녀들의 불친절에 부아가 치민다. 기차를 타기로 마음먹고 밖에 나와보니 바로 길 건너에 모스끄바행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표를 터미널 안에서 팔지 않은 이유를 그제야 깨닫는다. 버스는 열두 시에 출발(150p). 출발 전에 30p짜리 빵을 사 먹고 21p짜리 스프라이트 한 병을 마신다.

 세 시 반쯤 모스끄바(쿠로스카야 역)에 도착. 지하철을 타고 아르바트 거리에 가서 조르키 1의 스풀을 바꾼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는 권총자살을 하는 히틀러의 그림이 인쇄된 스티커가 여기저기 붙어있다. 오늘은 히틀러의 생일이다. 이 시기에는 러시아의 스킨헤드들을 조심해야 한다. 로스토브 밸리키행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21시에 출발하는 것이 있다고. 이전 버스는 네 시에 떠난 모양이다. 대합실에 앉아 가이드북을 펴들고 잠시 고민한 뒤, 상페테부르크행을 결정한다. 지하철을 타고 콤소몰스카야 역으로 간다. 20시 36분에 출발하는 3등 침대칸 표(386p)를 끊는다. 역 밖으로 나와 40p짜리 케밥과 9.5p짜리 오렌지 쥬스로 허기를 달랜다.

 일곱 시쯤 6번 기차칸 앞에서 개표를 기다리는데, 불량스러워 보이는 러시아 청년들이 술냄새를 풍기며 접근한다. 뭐라고 말을 하는데, 못 알아듣겠다는 시늉만 하고 있자니 경찰이 다가와 놈들의 여권 번호를 적어간다. 아아, 고마워요 경찰아저씨! 개표 직전, 어떻게 기차 안에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녀석들 중 하나가 창문을 통해 내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인다.

 일곱 시 반쯤 기차에 오른다. 엄청난 몸집의 할머니가 맞은편에 앉는다. 옷을 걸기도 힘들어 보여서 거들어준다. 짐에서 먹을 것을 주섬주섬 꺼내어 간이탁자 위에 올려놓은 뒤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모습이 탐욕스러워 보인다. 시트를 펴니 지린내가 코를 찌른다. 45p을 지불하고 시트커버를 빌린다. 그것 없이는 도저히 잘 수가 없을 것 같다. 복도 쪽 2층 자리의 다른 뚱보 아주머니가 자리를 바꾸자고 해서 흔쾌히 승했는데, 자리에 눕고 나니 바로 후회가 든다. 좁고 불편한 데다가, 덥기까지 했다. 나쁜 저리인지 뻔히 알면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을 이용해먹는 그녀에게 울분을 느낀다. 묵묵히 앉아있는 군복 차림의 러시아 녀석을 놓아두고 말이다. 녀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예의 그 코막힌 소리를 가진 ‘멍청한 러시아인’의 전형처럼 보이는 녀석으로, ‘건들지 마’라는 식의 얼굴을 하고 있다가 누군가 말을 걸어주자 그때부터 말문이 터져 엄청나게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내가 있는 칸의 사람들만이 밤늦도록 떠들었으므로,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거구의 할머니의 경우, 몸을 움직일 힘은 없어도 입술을 달싹여 떠들 힘은 충분하다는 기세로 계속 지껄여댄다. 심한 갈증이 불쾌감을 더해서, 레스토랑 칸을 찾아가 40p짜리 값비싼 물(젠장할, 탄산수다)을 사서 마신다. 여행 시작 이후 가장 불쾌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