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행 나오신 스님들의 뒤를 따라 걸어서, 미황사에 도착했습니다. 마을과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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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내를 둘러본 뒤, 목표지인 '도솔암'으로 가는 길을 여쭈었습니다. 가장 빠른 것은 '산책로'라 불리는 길이라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등산객이 전혀 없는 한적한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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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너덜지대도 나타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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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갈수록 길이 험해졌습니다. 나뭇가지에 걸려 바지가 찢어졌습니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도 점점 희미해졌고요. 소화되지 않은 털이 섞여 있는, 짐승의 배설물도 종종 나타났죠.
 
 네, 길을 잃었습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올라가는 길은 암벽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휴대전화는 잘 터져서 미황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으신 분께서는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죠.

 "겁 먹지 마시고 일단 산 아래로 내려가 보세요."

 산등성이를 조심조심 내려가자, 길이 나타났습니다. 곧 민가도 나타났습니다. 엉뚱한 길에서 내려오는 타지인을 소들이 멀뚱히 바라보았습니다.

 논에 계시던 아저씨께서 도솔암으로 가는 길을 다시 일러주셨습니다.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한 우리는 허기를 느끼고, 아저씨께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수 없냐고 여쭈었죠. TV에서, 밭일을 하다 짜장면을 시켜 드시는 촌로들을 본 적이 있었거든요. 아저씨는 고개를 가로저은 뒤 말씀하셨습니다.

 "배고프면 라면이라도 끓여줄까?"

 와, 공짜 밥이었습니다-! 아저씨께서 내어주신 맥주 한 병을 반주삼아, 땀을 뻘뻘 흘리며 먹어치웠어요. 역시 전라도 인심이야, 라고 속닥거리면서 우리는 눈을 마주치고 웃었습니다.

 그럭저럭 배도 채웠겠다, 다시 힘을 내서 출발했습니다. 포장된 도로를 걷다 보니 이런 팻말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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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살표가 수풀 안쪽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산책로'라는 길, 한참동안 사람들이 다니지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가능하면 안내 지도에 나온 대로
능선을 따라 이동하실 것을 권장합니다.

 정상에는 통신소 독립소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왼쪽으로 샛길이 나 있었어요. 도솔암으로 가는 길입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샛길로 들어서자, 엄청난 바람과 풍경이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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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바다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샛길을 따라 도솔암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20분 정도였습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발목을 붙잡는 듯해서 몇 번이나 주저앉아 쉬었어요. 오전에 길을 헤맨 덕에 예상보다 늦은 시간에 도솔암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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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몰 전에 땅끝에 도착하기 위해서 서둘러야 했습니다. 왔던 길을 따라 한 시간쯤 내려가자 주차장과 약수터가 나왔습니다. 마침 물을 길으러 오신 분들이 계셔서,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 여쭈었습니다. 조금 무뚝뚝해 보이는 초로의 부부였습니다. 물을 다 길으신 남편분께서 트럭의 뒤에 타라고 하셨어요. 그리곤 울퉁불퉁한 길을 아주 조심조심 운전해서 저희를 버스정류장 앞까지 태워다 주셨죠. 집을 지나쳐서 한참을 더 나오신 게 분명했습니다.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가며 감사합니다, 인사했습니다. 조수석에 타고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셨죠. 얼굴 가득 인상 좋아보이는 주름이 생겼습니다.

 7년만에 다시 찾는 땅끝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없던 모노레일이 생겨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비싼 것 같아 전망대까지 걸어 올라가기로 했어요. 구불구불한 아스팔트길을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 아래 주차장까지 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일몰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길을 걷는데, 동행이 갑자기 뒤쪽으로 달려갔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보았더니, 감이 든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가시던 할머니께서 떨어뜨리신 감 하나를 주워드리고 있더군요.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시고는 광주리를 손으로 가리키셨습니다.

 "그거 먹고, 하나 더 가져 가."

 '해남 인심 최고-!'라고 마음 속으로 외쳤어요.
 
 전망대에 예전에 없던 입장료가 생겨있는 데다, 일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땅끝탑으로 바로 내려갔습니다. 바로 바닷가와 접해 있어서, 올라간 만큼을 다시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일몰을 약 20분 남겨두고 땅끝탑에 도착했습니다. 마을 주민인 듯한 부부가 석양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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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 전에는 '토말비'라는 이름의 조형물에 낙서가 잔뜩 되어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땅끝탑'이라는 이름의 깔끔한 조형물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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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 사이에 변한 것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굳이 산을 넘지 않아도, 땅끝탑에서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이 뚫려있었다는 것. 모노레일 값을 아낀답시고 산을 헉헉대며 넘을 필요가 없던 것입니다. (새로 뚫린 길은 모노레일 매표소 왼쪽에 있습니다)

 이래저래 엉뚱한 길들을 헤맨 하루였지만, 해남 사람들의 정만은 듬뿍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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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는 시골길을 30분 가량 달려 낙안읍성에 도착했습니다. 멋진 가을 하늘을 뽐내는 아침이었습니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성곽 위를 걷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우선 성곽을 한 바퀴 돌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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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토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낙안읍성에는 아직도 주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추석이 지났으니만큼, 초가지붕의 이엉을 얹는 모습도 볼 수 있었어요.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걸으며 재잘댔습니다. 장난기가 동해 녀석들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도시락 싸 왔어?"
 "네."
 "팔아라, 형한테."
 "1억 5천인데요."

 비싸기도 해라. 낮잠이나 한 숨 자야겠다고 마음먹고 아무렇게나 누워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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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이 얇은 눈꺼풀을 통과하여 검붉은 핏빛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눈을 뜨자 파란 하늘이 한가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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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될 수 있는대로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성곽을 걸었습니다. 몇 번을 멈추거나 주저앉았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태양이 머리꼭대기쯤 이르렀을 때 성곽 걷기를 마치고 마을로 들어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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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이 살고 있어서인지,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예스러운 돌담길과 초가지붕을 제외한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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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곳곳을 장승이 지키고 서있었습니다. 익살맞은 표정이 유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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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벌교로 가는 버스가 올 시간이었습니다. 낙안읍성의 푸른 가을하늘이여, 안녕-!



 순천만의 일몰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출발을 늦게 한 탓입니다. 순천역 앞의 여행안내소에서 교통편을 물어, 순천만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허겁지겁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태양은 지평선으로부터 한 뼘쯤 떨어져 있었어요. 갈대밭을 구경할 틈도 없이 달리듯 산을 올라 전망대를 향했습니다. 그 서슬에 나들이 나온 사람들 사이에 잠시 작은 길이 뚫렸다 사라졌죠.

 아, 늦지 않았습니다. 지평선에 다가간 태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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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로로 한 줄을 이루어 삼각대를 펼치고 있던 아마츄어 사진사들이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정신없이 들려왔습니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전망대에서 내려왔습니다. 시가지쪽의 하늘에선 불꽃놀이가 한창이었습니다. 어쩐지 도발적으로 보였습니다.

 터미널 옆 식당의 국밥은 지독히 맛이 없었습니다. 손님이 많아서 맛있는 집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바로 옆의 어판장에서 행사가 있었던 탓에 손님이 많은 모양이었습니다. 줄을 타는 광대를 술기운에 핏발이 선 눈으로 바라보는 어르신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순천의 젊은이들은 도대체 어디에 모여 있는걸까 궁금해졌습니다. 불빛을 향해 걷기 시작했죠. 불나방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다다른 곳은 순천제일대학 앞이었습니다. 몇몇 술집이 모여있는 정도였지만, 젊은이들이 종종 보였기 때문에 '이곳이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인가 보구나' 생각했어요. 술집을 찾아왔으니만큼, '술집'이라는 간판을 단 가게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지도를 펼치고 아르바이트생에게 여기가 순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냐고 물어봤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은 전혀 다른 곳을 가리키며 웃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연향동에 모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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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당히 취해서 택시를 타고 연향동에 갔습니다. 과연 젊은이들이 모여 있더군요. 확인을 했으니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궁전파크'라는 찜질방에서 숙박하기로 했습니다.

 찜질방의 전망이 좋았습니다. 연향동의 네온사인들이 내려다보였죠. 옆 건물 나이트에서 새어나온 음악소리도 들려왔어요.

 이제 불꽃 속으로 완전히 들어왔습니다.

 '불꽃 속에서 타들어가는 불나방처럼, 평안하구나'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중국-몽골-러시아 배낭여행, 어디서 자야 할까?

궤적 2007. 7. 11. 10:40 posted by 주말수염반장


 러시아까지의 여행기 포스팅을 마쳤습니다. 동유럽 여행기를 시작하기 전에 모아두었던 자료를 정리할 겸, 우선 러시아까지 이동하면서 묵었던 숙소에 대한 정보를 올리겠습니다. 요금 정보는 2006년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선 북경에서 첫날 밤에 묵었던 선희네 민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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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희네 민박 명함


 천진에서 배에서 내려 북경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면 '왕징'이라는 곳에서 버스가 정차하죠. 그 인근에 한국인 민박집이 많이 있습니다. 위의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하면 주인 아저씨께서 찾아가는 길을 설명해줍니다. 버스 하차 위치에서 그리 멀지 않아요. 1일 50위안. 저녁과 아침을 먹었는데(모든 손님에게 제공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북경에서 같이 있던 동행분께서 워낙 수완이 좋으셔서^ ^;;), 맛있었습니다.

 북경에서 사흘 자는 동안 각각 다른 숙소에서 잤어요. 다음 날에는 前門쪽의 '대책란가제일반점'이라는 곳에서 잤습니다. 전문의 대책란가를 따라 들어가다 보면 길 왼쪽편에 보여요. 2인 1실 60위안. 여행자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입니다. 마지막날 밤에는 여행자 거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악가(乐佳)여관에 짐을 풀었습니다. 2인 1실 80위안. 20위안 더 비쌌지만 대책란가제일반점보다 나을 건 없었습니다.

 호화호특에서는 통따반점이라는 곳에 머물었습니다. 역에서 내려 광장을 지나면 길건너 왼편에 보입니다. 바로 뒤편에 시장이 있어요. 2인실을 40위안 주고 혼자 썼습니다. 침대 스프링도 죄다 나가있고 온수도 밤에만 나왔지만, 채광이 아주 좋았습니다. 직원들도 친절했구요. 체크아웃하는 날에는 가방도 흔쾌히 맡아줍니다(무료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몽골의 울란바타르에서 묵었던 곳은 UB게스트하우스. 다음 포스트를 참조하세요(윗부분에 있습니다).2. 몽골(06. 4. 5. ~ 4. 11.) 

 이르쿠츠크에서 머문 곳은 '이르쿠츠크 다운타운 호스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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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 다운타운 호스텔. 역에서 가깝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위 명함의 점선표시를 따라 걸어가면 됩니다(20분쯤 걸립니다). 힘들다면 트램 1번을 타셔도 좋습니다(두 정거장). 입구가 건물 뒤쪽에 있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걸으셔야 할 겁니다.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은행은 환율이 좋지 않습니다. 숙소의 스텝들은 영어를 구사하는 유쾌한 성격의 사람들이구요, 인터넷은 유료(무지 느려요>.<). 도미토리 400루블입니다. 이르쿠츠크 시내지도 복사본을 받을 수 있으니 꼭 챙기세요.

모스크바에서는 트레블러스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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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트러스 게스트하우스.


 워낙 잘 알려진 곳이라서 그런지, 직원들이 사무적입니다. 방값도 터무니없이 비싸구요(도미토리 900루블, 거주자등록, 아침 포함). 지하철 역에서 접근성도 좋지 않네요.

 수즈달에서 묵은 곳은 Hotel Rizopolozhenskaya입니다. 2인 1실을 혼자 쓰는 데 800루블을 요구하는 것을 흥정하여 600루블에 이틀간 머물었죠. 수즈달이라는 곳이 워낙 조용한 곳이기도 했지만, 수도원 안에 있어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크지 않은 동네여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낮에 도착한다면요^^;;).

 상페테부르크에는 나무민박에 몸을 뉘였습니다. 주인 아저씨께서 화가이신지라 예술가다운 괴팍함(?)을 느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좋으신 분입니다. 중심가에 위치해서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지셨다면 어지간한 곳은 도보로 돌아보실 수 있습니다. 지하철 마야꼽스카야 역에서 812-273-3235(집)이나 812-955-8972(핸드폰) 번으로 전화해보세요. 하루에 20달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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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페테부르크


4월 21일 금요일

 새벽 다섯 시 5분, 상페테부르크에 도착. 수첩에 적어둔 Hi. St. petesburg Hostel을 찾아 비를 맞으며 헤맨다. 한 시간 반쯤 헤매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나무민박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마야콥스카야 역에 가려고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가서 15p짜리 토큰 구입. 지하철 역 몇 개가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지하철을 탈 필요도 없이 걸어서 마야콥스카야 역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바로 그 곳이 마야콥스카야 역이었던 거다. 길 건너는 데 15p를 쓴 셈이다.

 어렵지 않게 민박집을 찾아냈는데, 문을 찾을 수가 없어서 난감해하고 있다가 마침 지나가는 러시아 청년에게 핸드폰을 빌려 숙소에 연락을 해서 겨우 입구를 찾는다. 몹시 지쳐있었기 때문에 옷만 갈아입고 바로 잠이 들었다 열두 시에 일어난다. 라면과 쌀밥, 김치(!)를 얻어먹고 두 시쯤 밖으로. 에르미타지까지 30분 정도 걸려 걸어간다. ISIC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덕에 무료로 입장. 소장품은 그야말로 대단해서 세 시간쯤의 구경으로도 지칠 지경인 데다가, 아주 일부분밖에 보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렘브란트의 에칭 작업이 인상적이다. 구도를 공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에칭을 여러 번 반복하여 찍어내며 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사진의 인화작업과 유사해 보인다. 대리석 조각들은 '만지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킬 정도. 서양인들이 여기저기서 스트로보를 터뜨리고, 중국어를 쓰는 동양인들은 (경보음에도 불구하고)이것저것 만져보기에 바쁘다. 고흐 작품을 찾는 데에는 실패. 내일 다시 와보리라. 여섯 시에 광장에서 사열식을 구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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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미타지 앞에서 본 사열식


 요기를 하고 인터넷 카페를 이용하다 아홉 시쯤 숙소로 복귀. 주인 아저씨는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다. 일 년간 아르바이트를 하여 모은 단 돈 400만 원만 가지고 이집트까지 가려고 한다는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니 하루를 공짜로 재워주신단다(고마워요>.<b). 부인을 찾아볼 수 없고, 러시아 아주머니 한 분과 그녀의 딸 정도로 보이는 여자, 한국인인 주인 아저씨의 딸이 숙소를 지키고 있다.


4월 22일 토요일

 여덟 시 반쯤 "식사하세요"라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아, 민박은 좋구나! 천천히 밖에 나갈 채비를 하고 열한 시쯤 밖으로. 민박집에 빨래를 맡겨서 얇은 바지에 점퍼만 입고 밖으로 나왔는데, 날씨가 흐린 데다 바람까지 불어서 몹시 춥다. '피의 성당'을 가장 먼저 구경. 모스크바의 성 바실 성당을 모델로 했다는데, 과연 그 화려함이 대단하다. 옆을 흐르고 있는 운하가 아름다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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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성당. 모스크바의 성 바실 성당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네바 강 건너편에 가보기로 하고, 다리를 몇 개 건넌다. 붉고 거대한 등대 주변에서 결혼식을 마친 부부들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작은 섬에 들어가 엄청 뾰족한 첨탑을 가진 교회를 구경. 강변 어디서나 잘 보일 정도로 첨탑이 높다. '네바 게이트'로 나와 섬의 강변을 걷다가 박물관이 많은 곳을 지난다. 추워서 걸음을 멈추고 싶지 않다. 덜덜 떨며 다시 강을 건너 러시아 박물관을 지난다. 에르미타지 근처의 검은 색 건물로 들어가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으로 향하는 버스를 예매해 둔다. 유로라인, 5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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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어디에서나 잘 보이는 교회의 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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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산책중인 상페테부르크 시민들.


 몸을 조금 녹이다가 다시 밖으로 나간다. 밖은 여전히 주워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걷노라니 날씨가 다시 맑아져서 더 걷기로. 중심가 동쪽으로 가보기로 하고 걷다가 요의를 느껴서 그것을 해결할 겸 식당에 들어간다. 진열대 안의 요리를 고르면 점원이 그것의 무게를 달아 접시에 담아주는 곳이다. 감자볶음과 소고기만 먹었는데 가격이 무려 173p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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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잘 어울리는 배색의 성당


 여름정원 동쪽 3Km에 있는 하얀색과 하늘색으로 외벽을 칠한 예쁜 성당을 발견. 해가 조금 뉘엿해져 강물에 아름답게 반사되는 시간의 네바강변을 걷는다. "좋다"라고 혼잣말을 해본다. 여름 정원은 시간이 늦어 닫혀있다. 이삭 성당에서 노을을 기다린다. 하지만 아홉시가 넘어도 노을이 붉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홉 시 20분까지 기다리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숙소로. 숙소에는 손님 한 명이 와 있다. 30세의 배낭여행객 민형. 북유럽으로 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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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시 20분까지 기다려서 찍은 이삭 성당의 노을



4월 23일 일요일

 아홉 시 아침식사. 오늘은 민형과 함께다. 피의 성당을 지나 민형의 티켓팅을 도운 뒤 에르미타지에. 숙소에서 한글 가이드북을 빌린 덕에 지난번보다는 헤매지 않을 수 있다. 반 고흐며 르누아르들의 명작을 보는 감동이 대단하다. (사진 촬영료 100p.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은 대개 찍지 못하게 해놓은 경우가 많다) 오후 다섯 시까지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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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미타지의 전경. 전시물은 직접 보시길 권장합니다.


 가이드북에 적힌 이른 바 '건축가 로시의 거리'와 센노야 시장을 구경한 뒤, 전철을 타고 알렉산드로 네프스키 대수도원을 향한다. 합정동의 외국인 묘지 비슷한 분위기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무덤이 있다길래 찾아보려다 실패. 문이 닫혀있어 15p의 뒷돈을 주고 들어간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결국 돌아오는 길에 어디에 있는지를 알았으나, 문이 닫혀있다. 다시 전철을 타고 마야꼽스카야 역으로 돌아와 한국에서 나를 '술로 먹여살린' 선배에게 선물할 압생트를 구입한다. 무려 1613p!! 식은땀(?)을 흘리며 구매 결정.

 밤 열 시 넘어서 숙소에 도착한다. 하늘은 아직 한국의 여름 여덟시 정도의 밝기이다. 내일은 러시아를 떠나 에스토니아로 간다. 나보다 하루 뒤에 에스토니아로 온다는 민형과, 가능하다면 톰페아 언덕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잠이 든다.






모스크바


4월 17일 월요일

 새벽 네 시 조금 넘어 모스끄바에 도착한다. 바샤 가족과 함께 행동하기로 하고, 지하철이 다닐 때까지 대합실에서 기다린다. 동이 틀 때쯤 지하철을 타고 벨라루시 역으로 향한다(러시아의 기차역은 종착지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다). 짐을 보관소에 맡기고(67p) 크렘린으로. 따뜻한 아침 햇살이 사진찍기 좋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크렘린 주위의 붉은 광장(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거의 없다)과 성 바실 성당, 모스크바 강 등을 구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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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실 성당 앞에 선 바샤. 바샤의 이름은 성 바실리의 이름에서 따왔다.



 바샤 가족은 아마도 돈이 떨어진 눈치였다. 맥도널드를 발견하고 칭얼대는 바샤를 어르던 안나는 근처의 간이 상점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핫도그 하나를 사 먹인다. 바샤를 제외한 모두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묘한 침묵. 하릴없이 앉아 있다가 다시 벨라루시 역으로. 역 주위에서 바샤 가족이 기차에서 먹을 것들을 장본다. 무얼 사더라도 한참씩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하다. 대합실로 돌아와 세르게이 할아버지의 제안으로 맥주 한 병씩을 마신다(56p). 빈속에 맥주를 마신 나는 조금 거나해져서, 바샤 가족에게 한 턱 내겠다며 피자집에 들어간다. 커다란 피자 한 판과 콜라 두 병(440p)을 먹고 마신다. 토마토 소스가 전혀 없고 조금 짰지만, 모두들 맛있게 먹는다. 먹기를 마치고 나오며 안나는 리듬체조 하는 시늉을 하며 무언가 말했는데, 아마도 “배가 불러서 체조라도 할 기분이야”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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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는 내려가는 데 몇 분이 걸릴 정도로 길다. 바샤는 곧 헤어진다는 걸 아는지, 이날 내내 어두운 표정이었다.


 세 시 반쯤 맡겨두었던 짐을 그들이 탈 기차 안으로 옮겨준 뒤, 작별. 바샤는 작별을 눈치 채고 서운한 얼굴이 된다. 하지만 오줌 마려운 것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우는 모습을 베개로 감출 줄 아는 씩씩한 러시아 어린이답게(?) 울지는 않았다. 모두와 포옹한 뒤 배낭을 메고 등을 돌린다.

 프로스펙트미라 지하철역으로 가서 론리플래닛을 통해 알아둔 숙소로 향한다. 트레블러 게스트하우스(900p, 거주자 등록, 아침식사 포함. 4인 1실 도미토리). 은행에서 100달러를 환전(2775루블)한 뒤, 음료수 두 병(50p)을 사서 속소로. 잘못하여 탄산수를 샀는데, 감상을 말하자면 “물에다 무슨 짓이야!” 정도. 해갈한 뒤, 쓰러져 잠이 든다.


4월 18일 화요일

열두 시간동안 잠을 잔 뒤, 여섯 시에 기상. 밖에는 비가 내린다. 샤워를 하고 여덟 시에 아침식사. 향후 계획을 세우고 짐을 맡긴 뒤 아홉시에 체크아웃(러기지 룸에서 몽골과 이르쿠츠크에서 만났던 미국인들을 다시 만난다. 짧게 일별만 함). ‘향후 계획’은 다음과 같다.

 
4/18 모스크바 시내 구경, 사진기 사기. 다섯 시에 수즈달 가는 버스타기. 수즈달에서 1박.
 4/19 수즈달 구경. 야로슬라블, 로스토브 벨리키, 세르기예브 포사드 중 어느 곳의 버스(or 기차)가 있나 알아보기. 없으면 일찍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다시 기차를 타고 로스토브 벨리키에 가서 1박.
 4/20 황금고리 구경. 야로슬라브에서 상페테부르크(아마도 야간 기차) 오르기.
 4/21 상페테부르크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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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최 벽이라고 생각되는 곳


 지하철 5회권(70p)을 사서 아르바트 거리로 향한다. 신 아르바트 거리는 한국으로 치자면 종로 정도의 분위기이다. 가이드북에서 ‘인사동’ 운운하던 곳은 구 아르바트 거리인가보다. ‘빅토르 최 벽’이라고 생각되는 곳과 푸쉬킨 부부 동상 등을 본다. 비가 온 탓인지 노점상이나 사람들은 생각보다 적다. 사진 가게를 발견하여 들어가본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주인이라 어쩐지 믿음이 간다. 라이카 바르낙 모델의 레플리카인 조르키 1을 구입한다. 필터와 케이스, 후드 등의 악세사리를 착실히 챙긴다. 상태를 확인하고 작동법을 배우는 동안 말은 동하지 않지만 몸짓으로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진이라는 취미를 가진 자들끼리의 동질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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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 가게의 할아버지. 어딘지 신뢰가 가는 얼굴이다.


 구 아르바트 거리의 끝에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건물을 발견한다. k대 평화의 전당쯤은 “저리 가세요”라고 말할만한 건물. 근처 모스크바 강변의 건물들도 대단하다. 구경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Novodevichy Convent로. 시장을 지나서 나타난 그곳은 론리플래닛이 말한 것처럼 ‘beautiful’하지는 않다. 다만 크기가 굉장하다는 것을 주위를 돌면 알 수 있다. Bell Tower가 그럴 듯했지만, 날씨가 흐려 사진 찍을 마음이 들진 않는다. 걷기 지칠 무렵, ‘저기쯤 체홉의 무덤이 있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건물이 멀리 보였고, 나는 지하철 역으로 돌아간다. 모스크바 대학 역에 잠시 앉아있는데, 뭔가 ‘똘돌이’들이 “나는 공부벌레가 아니야. 나도 제법 괴짜다운 구석이 있다구”라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듯한 외모의 녀석들이 몇몇 있다.

 오후 세 시 40분쯤 프로스펙트 미라 역에 도착한다. 맥도널드에서 빅맥세트 먹음. 캐챱을 따로 판다(115+8p). 네 시쯤 먹기를 마치고 숙소로 향한다. 슬슬 늦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수즈달 행 버스는 하루에 한 대, 오후 다섯 시에 있다고 한다. 짐을 찾고 나서 발을 동동 구르며 지하철을 타고 버스터미널이 있는 Shchyolkovskaya 역에 도착했을 때엔 이미 다섯 시가 넘어 있다. ‘아아, 야로슬라브 쪽으로 가야 하나’하고 포기하는 마음으로 “수즈달, 아진, 빠좔루이스따(수즈달, 하나, 부탁해요)”라고 말하자 놀랍게도 18시 30분 차가 있다고! 직행은 아니고, 이바노보라는 곳으로 가는 도중에 내리는 모양이다. 177p. 다행이다(몇 시에 도착할 지는 모르겠지만). 버스를 기다리면서 일기쓰는 중. 그나저나, 모스끄바 물가, 너무 비싸다! 네스티 한 병 40p! 이르쿠츠크에서는 핫도그랑 네스티 합쳐서 50p이었는데.

 기사 아저씨가 깨워서 눈을 뜬 시간은 밤 11시이다. 수즈달에 도착하면 깨워달라며 15p 짜리 음료수를 사드린 보람이 있구나, 생각하며 내려보니 주위는 암흑천지이다. 마치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내린 기분이다. 추위 때문이라기보다는 공포 때문에 턱이 덜덜 떨린다. 기사 아저씨가 가리킨 방향으로 무작정 걷는다. 한참을 걷다가 맞은편에서 차가 한 대 달려왔을 때에서야 내가 걷는 곧이 도로 한복판임을 깨닫는다. 서둘러 도로 한쪽으로 비켜서자,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뒤에서 달려온다. 가이드북이 목숨줄이라도 되는 듯이 겨드랑이에 꼭 끼고 더욱 빠른 속도로 걷기 시작한다. 개라도 한 마리 왕왕 짖으며 달려오면 최악의 상황이 되겠구나, 생각하며 걷노라니, 맞은편에서 손에 술병 같은 것을 든 젊은이 두 명이 다가온다. ‘살려주세요’라고 중얼거리며 그들에게로 간다. 러시아어로 무언가를 말하면서 내게로 다가온 그들은 가까이에서 나를 본 후 이방인임을 깨닫고 ‘아!’하는 표정을 짓는다. 놀랍게도 떨림이 그친다. 그들에게 잠자는 시늉을 했더니 길을 가르쳐준다. 그들이 가리킨 곳으로 조금 더 걸어가자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참전용사 묘지인 듯한 ‘꺼지지 않는 불꽃’을 지나 레스토랑 쪽으로 가서 가이드북을 펼쳐든다. 어디쯤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젊은이 두 명이 카페에서 나온다. 그들 중 하나가 영어를 약간 구사할 줄 알아서 길을 물으니 “Don't worry"라며 카페로 따라오라고. 그들은 여자 넷과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이쯤에서 마음을 놓고 잠시 앉아 그들과 한담을 나눈다. ‘레나’라던가 하는 여자 하나가 내가 찾는 곳 근처에 산다는 것을 알고 함께 걷기 시작한다. 아아, 드디어 숙소다! Hotel Rizopolozhenskaya. 론리 플래닛에 나온 것과는 달리 800p을 부르는 것을, 600p로 흥정하여 체크인. 여행 시작 후 처음으로 싱글룸을 쓰는 것이다. 황금고리쪽으로의 이동은 하루를 소모하더라도 낮에 하기로 결심한다.



수즈달

4월 19일 수요일

 생각보다 몸이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열시 반 기상. 찌뿌둥하다. 샤워하고 1박 더할 것을 통보한 뒤 현금인출기에서 2000p 출금. 레스토랑을 찾아 걷다보니 Nativity of the virgin cathedral에 도착. 푸른색의 돔이 인상적이다. 이 곳을 중심으로 주변을 돌며 사진을 찍으면서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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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vity of the virgin cathedral


 빵과 라면(도시락 라면. 한국에서 파는 바로 그거다. 소고기맛과 닭고기맛이 있는데, 소고기맛이 우리가 먹던 그 것. 키릴문자로 ‘도시락’이라고 써 있다), 오렌지 두 개, 우유 한 병, 속에 으깬 감자가 든 파이를 사서 숙소로 돌아와 점심식사. 무척 허기진 상태여서 맛있게 먹는다. 한숨 잔 뒤, 네 시 반쯤 다시 밖으로. 이번은 마을의 북쪽을 산책한다. 비가 조금씩 내린다. 비싼 입장료가 무서워 Saviour Monastery of St. Euthymius 주변을 걷기만 한다. 치사하게(?)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멍은 모조리 막아놓았다. 지도에 표시된 목조다리는 끊어진 상태여서 강변을 걷다가 저녁거리를 사서 계속 산책. 론리플래닛에 실린 St. Lazarus' Church 사진을 찍은 장소를 찾아냄. 구름이 걷히고 사진찍기 좋은 빛이 비추기 시작하여 Convent of the Intercession까지 걸어간다. 예쁜 오두막이 많은 아기자기한 곳이다. 수즈달이 마음에 들기 시작한다. 다만 차편이 좋지 않아 개인 여행자에게는 접근이 조금 힘든 곳이라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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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Lazarus' Church. 론리 플래닛 사진 따라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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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을 찍은 곳의 바로 뒤편 집에 살고 있는 고양이.


 숙소에 돌아와 리셉셔니스트에게 물으니 블라디미르로 가는 버스는 아침 다섯 시 20분부터 있다고 한다. 내일 일찍 출발하기로 마음먹는다. 조르키 1의 스풀(필름이 감기는 부분)이 망가져 있음을 발견하여, 모스끄바에 도착하면 아르바트 거리에 잠시 들러야 할 것 같다. 어두워지기 전에 로스토브 벨리키에 도착해야 할 텐데.


4월 20일 목요일

 이동에 하루를 소비. 여덟 시 반쯤 체크아웃하고 터미널로 걸어간다. 이틀 전 밤에는 터미널이 닫혀있었기 때문에(알고 보니 저녁 여덟 시에 닫는다고 한다) 길 복판에서 내렸던 듯하다. 아홉 시 블라디미르행 버스가 막 출발하려는 찰라다. 표를 사고 나와보니 이미 아홉 시 버스는 떠난 뒤. 삼십분을 기다려 다음 버스를 타려다 야로슬라브행 버스가 있음을 시간표에서 발견하고 매표구에서 확인하고 나오니 아홉 시 반 버스도 떠난 뒤이다. 열 시 버스(30p)를 차장에게 혼나며 탑승한다.

 50분쯤 후에 블라디미르에 도착한다. 터미널 안의 매표구에서 모스끄바행 버스표를 사려고 세 번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 러시아어를 모르는 내 탓을 하며 자신을 달래려 했지만, 그녀들의 불친절에 부아가 치민다. 기차를 타기로 마음먹고 밖에 나와보니 바로 길 건너에 모스끄바행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표를 터미널 안에서 팔지 않은 이유를 그제야 깨닫는다. 버스는 열두 시에 출발(150p). 출발 전에 30p짜리 빵을 사 먹고 21p짜리 스프라이트 한 병을 마신다.

 세 시 반쯤 모스끄바(쿠로스카야 역)에 도착. 지하철을 타고 아르바트 거리에 가서 조르키 1의 스풀을 바꾼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는 권총자살을 하는 히틀러의 그림이 인쇄된 스티커가 여기저기 붙어있다. 오늘은 히틀러의 생일이다. 이 시기에는 러시아의 스킨헤드들을 조심해야 한다. 로스토브 밸리키행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21시에 출발하는 것이 있다고. 이전 버스는 네 시에 떠난 모양이다. 대합실에 앉아 가이드북을 펴들고 잠시 고민한 뒤, 상페테부르크행을 결정한다. 지하철을 타고 콤소몰스카야 역으로 간다. 20시 36분에 출발하는 3등 침대칸 표(386p)를 끊는다. 역 밖으로 나와 40p짜리 케밥과 9.5p짜리 오렌지 쥬스로 허기를 달랜다.

 일곱 시쯤 6번 기차칸 앞에서 개표를 기다리는데, 불량스러워 보이는 러시아 청년들이 술냄새를 풍기며 접근한다. 뭐라고 말을 하는데, 못 알아듣겠다는 시늉만 하고 있자니 경찰이 다가와 놈들의 여권 번호를 적어간다. 아아, 고마워요 경찰아저씨! 개표 직전, 어떻게 기차 안에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녀석들 중 하나가 창문을 통해 내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인다.

 일곱 시 반쯤 기차에 오른다. 엄청난 몸집의 할머니가 맞은편에 앉는다. 옷을 걸기도 힘들어 보여서 거들어준다. 짐에서 먹을 것을 주섬주섬 꺼내어 간이탁자 위에 올려놓은 뒤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모습이 탐욕스러워 보인다. 시트를 펴니 지린내가 코를 찌른다. 45p을 지불하고 시트커버를 빌린다. 그것 없이는 도저히 잘 수가 없을 것 같다. 복도 쪽 2층 자리의 다른 뚱보 아주머니가 자리를 바꾸자고 해서 흔쾌히 승했는데, 자리에 눕고 나니 바로 후회가 든다. 좁고 불편한 데다가, 덥기까지 했다. 나쁜 저리인지 뻔히 알면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을 이용해먹는 그녀에게 울분을 느낀다. 묵묵히 앉아있는 군복 차림의 러시아 녀석을 놓아두고 말이다. 녀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예의 그 코막힌 소리를 가진 ‘멍청한 러시아인’의 전형처럼 보이는 녀석으로, ‘건들지 마’라는 식의 얼굴을 하고 있다가 누군가 말을 걸어주자 그때부터 말문이 터져 엄청나게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내가 있는 칸의 사람들만이 밤늦도록 떠들었으므로,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거구의 할머니의 경우, 몸을 움직일 힘은 없어도 입술을 달싹여 떠들 힘은 충분하다는 기세로 계속 지껄여댄다. 심한 갈증이 불쾌감을 더해서, 레스토랑 칸을 찾아가 40p짜리 값비싼 물(젠장할, 탄산수다)을 사서 마신다. 여행 시작 이후 가장 불쾌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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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


4월 13일 목요일

 여덟 시 반쯤 기상. 아홉시에 빵과 차로 아침식사. 아무도 깨어있는 사람이 없다. 천천히 씻고 나갈 준비를 한 뒤, 열한 시 반쯤 밖으로. 열두 시 전에 체크아웃을 하려고 했는데, 가방 정도는 그대로 둬도 된다고 한다. 지도를 보며 일단 광장으로. 거의 걸음을 멈추지 않고 걸어다닌다.

 걷다 보니 앙가라 강변에 도착. 광장 뒤편인에서는 마침 2차대전 당시의 이르쿠츠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꺼지지 않는 불꽃'의 초병 교대의식이 진행중이다. 다리를 높이 올려 걷는 딱딱한 동작으로 교대하는 군인들 주위를 러시아인들이 놀리듯 경례를 하며 따라 걷는다. 정위치하여 부동자세로 서 있는 군인을 폰카로 찍으며 웃는 러시아 여성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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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지 않는 불꽃'의 초병


 허기가 느껴져서, 트램 1번을 타고 중앙시장으로 가서 구경한 뒤 빵과 네스티(50p)로 요기. 무엇을 사야 할까(기차 안에서 먹을 것) 대충 눈으로 보아둔 뒤, 중심가쪽으로. 중심가쯤 가니까, 이르쿠츠크가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리는 이유를 얼핏 알 듯도 하다. 추위를 피해 백화점 구경 후, 중국시장에 가서 어제 발견한 좌판 아주머니의 밥을 사 먹는다. 아주머니는 단속을 피해 골목 안으로 들어가 계신다. 중국인 시장은 여기가 러시아인지 중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중국인이 많다. 다시 백화점으로 가서 현금인출기에서 2000루블 출금. 중앙시장으로 가서 기차 안에서 먹을 것들을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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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 중심가의 레닌 흉상


 다섯 시쯤 숙소에 도착. 주인 아주머니와 짧은 영어로 대화하다가 다섯 시 40분에 역으로. 15번 칸의 12번 침대를 차장아주머니가 배정해준다. 내가 산 차표는 3등 침대칸으로, 한 량이 모두 개방되어 있는 열차다. 여행자라고는 나밖에 없다(여행자들의 경우, 보통은 2등 침대칸-4인 1실-을 탄다고 한다. 하지만 3등 침대칸의 가격은 2등 침대칸의 절반). 세르게이라는 이름의 할아버지(라기엔 그리 나이들어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손자와 있으니. 우리 아버지뻘 정도)와 안나라는 이름의 아이 엄마(28세), 바샤(바부쉬카, '성 바실리'의 이름을 딴 것. 6세)라는 아이와 같이 지내게 됨. 적어 둔 러시아어로 인사하고, 사탕 하나를 바샤에게 쥐어준 뒤 금세 친해진다. 이 가족도 모스끄바까지 간다고. 기차 안의 시계는 모스끄바에 맞춰져서 -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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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할아버지와. 뒤쪽에 '군복 녀석들'도 보인다. 촬영은 바샤가.


 바샤의 그림책으로 러시아어 읽기를 연습하자니, 상의를 입지 않은 군복 차림의 녀석들이 말을 걸어온다. 그중에 이가 담뱃진으로 누런 녀석 하나가 옆에 붙어앉아 발음을 교정(?)해준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열차칸 사이로 나갔다가, 술에 잔뜩 취한 군복 녀석들 중 하나에게 붙들려 엄청 시달림. 자기들이 가진 통조림을 꺼내보이며 이걸 사서 같이 보드카를 마시자는 모양이다. 아껴두었던 소주 한 병을 먹여 달래보려 했으나, 허사. '내일'을 러시아어로 말하며 겨우 잠자리에 든다.

(시트 커버 요금 45p)



4월 14일 금요일

 모스끄바 시간 다섯 시쯤 기상(이후 모두 모스끄바 시간). 다섯 시간 시차만큼의 거리를 기차로 이동하는 것이다. 어제 사둔 사과와 라면으로 아침식사. 기차는 예니세이강을 건너 '크라스노야르스크' 역에 도착. 30분 가량 서 있다. 기차가 정차해 있는 동안 역 주위의 노파들이 집에서 만들어 온 음식들을 판다. 맥주 한 병과 닭다리 하나, 오이절임을 산다(100p). 그것과 빵, 살라미 소시지, 치즈, 홍차로 점심. 기차 양 끝의 사모바르에서 뜨거운 물을 쓸 수 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한국에서 가져온 책 "귀여운 여인"(안톤 체홉)을 읽다보니 금세 바샤네 가족이 저녁 먹을 준비를 한다. 빵, 소시지, 오렌지 쥬스로 요기. 바샤네 가족에 대한 상세 정보. 세르게이는 집 짓는 일을 한다는 모양. 안나는 미용쪽 일. 벨라루시에 계신 안나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이며, 집은 chita라고. 식사를 마친 뒤, 기차가 이름모를 역에 도착한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걸로 보아 조금 덜 추운 곳으로 접어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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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이35를 들고 있는 바샤. 작은 크기 때문인지,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울란바타르에서 이르쿠츠크로 이동할 때 탔던 2등 침대칸보다 3등 침대칸쪽이 훨씬 재미있다. 무엇보다. 자리가 좋게 배정되었다. 허름한 차림의 남자에게는 화장실 가까운 자리를 주더라. 아직까지 지루하지는 않지만, 하루가 조금은 단조로워졌음을 느낀다. 일기도 자연 짧아질 밖에.

 

4월 14일 토요일

 아침은 역시 사과와 라면. 점심은 바샤네가 준 러시아제 라면. 쌀이 먹고 싶다!(러시아제 라면 봉지가 쌀로 만든 면이라는 의미의 그림으로 되어 있긴 하지만) 정차역에서 50p짜리 튀긴 빵을 사 먹음. 안에 사과쯤으로 생각되는 잼이 들어 있어 맛있다. 기차에 오르기 전에 미리 사두었던 먹을 것들이 거의 동이나 이젠 사 먹을 수밖에 없다. 멍하니 봉지를 들고 있다가 개에게 먹을 것을 빼앗길 뻔한다. 이런 사소한 일들이 모여 하루가 된다.

 낮잠을 잔 뒤, 햄버그와 빵, 토마토 두 개, 삶은 계란 하나와 파 한 뿌리가 든 도시락(50p)을 사 먹는다. 금방 만들어 온 것이라 따끈따끈하다. 일단은 라면이 아니라서 좋다. 창 밖에는 눈이 쌓여있지 않은 곳이 눈에 띄기 시작하는데, 어제 눈이 오지 않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점점 따듯한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키 큰 나무들은 여전하고, 군복 녀석들도 술 마시자고 계속 채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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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샤와 안나. 침대와 침대 사이에 간이 탁자가 놓여 있다.


 모레 새벽이면 모스끄바에 도착이다. 바샤 가족과 미리 주소를 교환한다. 내일은 사진을 찍어둬야겠다. 바샤가 하루종일 치대서 땀이 날 지경이다. 샤워가 하고 싶다. 여름에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기차를 타는 사람들은 정말 고역일 게다. 창 밖으로 기가막힌 풍경들이 지나갈 때마다 사진을 찍을 수 없음이 아쉽다. '운전면허를 따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드는 몇 안되는 경우 중 하나.

 오늘은 바샤가 세르게이 할아버지께 혼나고 우는 것을 보았는데, 베개로 머리를 감싼 채 소리죽여 울더라. 여섯 살짜리 답잖은 행동이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안나에게 귓속말을 하는 모습은, 그 전에 큰소리로 "오줌 마려워!"라고 했다가 혼나는 바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서 재미있다.



4월 16일 일요일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우즈베키스탄 아저씨를 만나다. 이름은 압둘라. 이슬람 교도이고 평택, 수원, 금산에서 일을 하셨다고. 비자가 만기되어 쫓겨나신 모양이다. 다행히 한국에 대한 나쁜 기억은 없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 마음씨가 좋다며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아저씨. 술과 담배는 하지 않지만 여자는 밝힌다며, 아내를 넷까지 들일 수 있는 이슬람교 탓을 한다. 우즈베키스탄 여자들은 이슬람교도인 탓에 집안 일만 해서, 돈을 벌기가 힘들다고 한다. 모스끄바에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길이라고. 상페테르부르크에는 못된 놈들이 많다며 조심하라는 당부말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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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노동 경력이 있어서 한국어를 구사하시던 압둘라 아저씨.


 모스끄바 역 전에 '황금의 고리'라 불리는 곳에 정차한다는 사실을 알고 도중에 내리려 했으나, 압둘라 아저씨의 통역에 따르면 바샤 가족은 모스끄바에서 내려 벨라루시에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열 시간 동안 나와 함께 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결국은 모스끄바에서 함께 내리기로 결심. 무슨 일이 생기면 벨라루시로 전화하라는 든든한 안나의 말. 여자는 확실히 애를 낳은 뒤에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생물이 된다. 영어를 구사하는 러시아 학생도 중간에 승차했지만, 압둘라 아저씨를 만난 탓에 전혀 관심 밖이다.

 기차는 작은 역도 빠뜨리지 않고 정차한다. 이거야 원, 통일호를 타고 서울-부산을 며칠간 왕복하는 기분 아닌가. 오늘은 비가 내린다. 창 밖은 어느 새 완연한 봄이다.

(오늘 지출 내역 : 고기가 든 튀긴 빵 50p, 닭다리 도시락 50p. 닭다리 도시락은 약간 상한 느낌도 들고, 잘 익지도 않은 엉터리였다.)



여행통신(중국-이집트, 육로여행)

궤적 2007. 5. 8. 19:29 posted by 주말수염반장
 순전히 '귀찮다'라는 이유로 근 한달째 여행기 쓰기를 미루고 있습니다. 다시 의욕이 생길 때까지의 틈을 메우기 위해, 여행중에 미니홈피의 방명록에 썼던 '여행통신'을 긁어서 모아봤습니다.

 우선, 루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출동-China-Mongolia-Russia-Estonia-Latvia-Lithuania-Poland-Czech-Germany-Austria-Hungary-Croatia-Bosnia & Herzegovina-Montenegro-Albania-Greece-Bulgaria-Turky-Syria-Jordan-Egypt-한국
 

 '여행통신'을 통해 앞으로의 여행기를 짐작해보세요-!




조금 전에 베이징에 무사히 도착. 조선족이 운영하는 민박집에 왔더니 한글 자판도 쓸 수 있고 좋다! 북경에서 며칠 머물다가 몽골로 이동할 계획. (2006.03.29 21:37)

-'뻬이징 덕(?)'은 돈을 아끼느라 먹지 못했지만, 무척 맛있는 중국 만두는 실컷 먹을 수 있었습니다.

-몽골에서 6일동안 너무 늘어져 있어서, 다시 배낭을 짊어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웃음).

-오늘 저녁에 러시아 이르쿠츠크(바이칼 호수 옆이라죠)로 가는 기차에 오릅니다. 기차 안에서 두 밤 자야 해요. 아아, 지금까지는 별 거부감 없는 얼굴(그들과 비슷해 보인다는 의미에서) 덕에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이방인이 되어야겠군요. 부디 제가 무사하기를 기도해주세요-!
( 2006.04.10 11:56, IP 202.179.21.110 )

러시아 이르쿠츠크에 도착했습니다!

마치 "여기가 바로 시베리아다!"라고 말하고 있는듯한 풍경이 제법 그럴듯했습니다.

바이칼 호수는 아직도 꽁꽁 얼어있더군요. 그 위를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겨울에는 표지판이 세워진다고 하던데, 확인은 못했습니다만-.

내일 저녁에 다시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떠납니다. 무려 5일이나 걸리는 대장정입니다.

그럼 그때까지, 모두들 안녕히-! ( 2006.04.12 21:18 )

-상트 베쩨르부르크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제법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러시아에는 수많은 김영근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인가 트램 안에서 한 무리의 김영근들을 보았을 때 저는 잠시 정신이 아뜩해져서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의 심정을 말하자면 '아아, 우리의 지구를 어쩔 셈인가-!' 정도랄까요(웃음). 허리가 가슴께에 달린 것 같은 그들은, 어찌나 성큼성큼 걷는지 아무리 열심히 따라가려해도 벌써 저만큼 가 있기 일쑤입니다.

-요 며칠간 동행이 없어서 외롭기 그지없습니다. 그간의 동행들을 소개하자면, 북경에서는 각국의 '인체 번식에 대한 아크로바틱한 접근'이라는 내용을 담은 CD를 보급하시는데에 진력하시는 40대 중반의 '만수아저씨'와 함께였고, 몽골에서는 비트박스를 연구하는 동갑내기 일본인 '유스케'군과 함께 여행했었습니다.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 안에서는 살 길을 찾아 벨로루시로 가는 러시아인 '바샤'가족과 함께였구요. 다음에 만나게 될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몹시 궁금합니다.
( 2006.04.22 01:56 )

-St.Petersburg를 꼭지점으로, 북서쪽으로 나아가기를 멈추고 남서를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아, 짧은 영어 탓에 양키들을 대하기가 몹시 겁이 납니다. 영어 공부를 전혀 하지 않있던 6년동안에, be동사의 시제변화도 까먹었을 정도예요! T.T "I was-"라고 말했던 자신을 발견하고는 얼굴이 빨개지곤 합니다. be 동사의 시제변화, 누가 좀 알려주세요~!

-거창한 건물들을 보는 것도 이제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좀 조용한 곳에 가서 며칠 푹 쉬고 싶지만, 숙소값이 만만치 않아서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싼 숙소야, 나타나라-!" ( 2006.04.30 06:18 )

아아, 숙소 방명록을 보니까 "I was"가 맞군요. 두 번 죽는 기분이 이런거구나-. (2006.05.02 04:16)

-발틱 3국과 폴란드, 체코를 지나 독일에 도착했습니다. 폴란드에서는 갑자기 지친듯한 느낌이 들어 조금 고생했지만, 체코에서는 '과연!'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분좋게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슬슬 한국분들도 나타나주셔서 벙어리 신세도 면할 수 있게 되었구요.

-5주 넘게 기른 수염을 자르고, 머리도 다시 짧게 잘랐습니다. 정성기 군의 말에 의하면 '이제 좀 사람같다'는군요. 숙소비 굳은 김에 며칠 푸욱 쉴 작정입니다. 말하자면 '개인정비' 기간이랄까요-.

-앞으로의 루트는 오스트리아-헝가리-불가리아-그리스-이집트-터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장 있는 독일도 원래는 계획에 없었으니까,이 루트도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엽서를 받고 싶으신 분은 원하시는 국가명과 주소를 '비밀이야' 쪽에 남겨주세요. 사실은 주소를 하나도 몰라서 엽서를 전혀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군대에 있을 때만큼 편지를 쓰고 싶어요-! ( 2006.05.11 19:30 )

-며칠 전에는 마침내(?) 노숙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잘쯔부르그 역 안 벤치에서요. 정말 끔찍한 밤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저의 눈꺼풀을 통해 밝음과 어두움을 투사하는 전광판, 어둠의 차례에 누군가 앞에 있나 싶어서 눈을 떠 보면 보이는 등신대의 할머니 광고판, 즉석 증명사진 부스에서는 "Nuclear Lunch Detected" 톤의 목소리가 일정 간격으로 들려오고,쉽사리 잠이 오지 않아 눈을 떠 보면 보이는 "Zug Um"이라는 단어. 그 날 밤에 대해서는 어느 술자리에선가 자세하게 이야기 해드릴게요.

-어제 만난 일본인 슈와 산보의 꼬임(?) 덕분에 앞으로의 행보는 뱀이 기어가는 꼴이 될 것 같습니다. 조금 생소한 나라들입니다. 차차 보고하겠습니다.

-지금 묵고 있는 숙소가 주로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라서, 별 수 없이 또 다시 일본인 이야기입니다. 숙소에 6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일본인 할머니 한 분이 계십니다. 손녀쯤 되어보이는 일본 여성과 함께 있길래 '보기 좋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혼자 여행하고 계시더군요.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보며 "쓰고이!"를 외치시는 할머니의 눈은, 정말 초롱초롱했습니다. (손녀로 착각한 일본 여성은 혼자서 1년 2개월째 여행중이라더군요!) ( 2006.05.21 16:53 )

-부탁한 모두에게 도합 열 통의 엽서를 크로아티아에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엽서를 받았다는 소식이 전혀 없군요. 하루 생활비 절반 정도의 돈을 쓰고는 쓰린 속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터키에서 이집트로 가는 배가 없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별 수 없이 육로로 이집트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시리아를 지나야 해서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필요 서류중 하나인 한국 대사관 추천장(?) 발급이 중단되었다는군요. 이리저리 알아보느라 '이스탄불 한인회장님(!)'까지 만났습니다. 일단 국경에 가보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과연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의 엄청난 물가에 시달리다가, 불가리아에서부터는 '좀 살만하군'이라는 느낌입니다. 당장 배는 곯지 않고 있는데, 과연 한국에 돌아갈 비행기삯이 남을지 걱정입니다. ARS 모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네요.

-이번 보고서(?)에서는 이래저래 엄살만 부리게 되는군요. 마지막 엄살입니다. 오랜만에 대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사이버 캠퍼스 로그인하여 분반 확인 후 과제물 제출할 것!'이라는 공지가! 아아, 첫 학기부터 낙제생이 되어야 하는건가요- ( 2006.06.08 03:24 )

-마침내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이집트에 도착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덥습니다-!

-요 며칠동안 누군가가 숙소에 두고 간 "야생초 편지"를 읽고 있는데요, 그 탓인지 향긋한 풋고추에 된장을 쿡 찍어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서 큰일입니다. 여행 막바지에 들어서 갑자기 한국음식 생각이 나는 것은 대체 무슨 조화일까요.

-시리아에서 세 장의 엽서를 더 보냈습니다. 그 중 두 장은 부탁하지 않은 사람에게 보냈으니, 기대해보세요-. '난 아닐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는 당신, "네, 당신은 아녜요." ㅎ ( 2006.06.23 20:07 )

-우와, 내게도 이런 일이! 어제 이태리인 '이반'이 추근덕거리는 바람에 일찍 숙소로 도망와 독주 한 병을 마시고 잤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합'이라는 홍해변의 마을에 있는데, 완전 반해버려서 벌써 세 밤째랍니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느긋하게 보내고 있는 나날이라서 엽서 양산 모드에 돌입했습니다. 모두 꽈방으로 보내니까, 2~3주 후에 꽈방 탁자 위를 확인해보세요.
(2006.06.26 03:10)

-아아, 마침내 귀국입니다. 같은 비행기인줄 알았던 세 명은 아침 비행기로 떠나버리고, 결국 출발할 때처럼 저 혼자입니다. 이래저래 꽤나 늦추어진 귀국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돌아가기 싫어요-!"(버럭) '한국 가면 돈 열심히 벌어야지'라고 마음먹었습니다.

-"가기 싫어-!"하며 발버둥치느라 지쳐서 쓸 기운도 없군요. 이쯤에서 김군의 여행통신을 '일단은' 마칩니다. 멀지 않은 어느 날인가 다시 뵐 수 있게 되기를. 안녕-.  ( 2006.07.08 17:23 )

3. 러시아(06. 4. 12. ~ 4. 23.) #2 '오물'과 보드카

궤적 2007. 4. 4. 19:18 posted by 주말수염반장

바이칼 호수

 두시 반, 라스트뱐카로 향하는 버스가 출발한다. 창 밖의 풍경은 그야말로 "여기가 시베리아다"라고 외치고 있는 듯, 흰눈으로 덮힌 벌판과 곧게 자란 침엽수림뿐이다. 버스 어디엔가 구멍이 뚫렸는지, 몸을 더욱 움츠리게 만드는 바람도 시베리아를 체감하게 한다.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바이칼 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보통은 관광객들이 우르르 내릴 때 따라 내리면 되겠지만, 버스 안에 다른 여행자라고는 없는 것 같다. 적당한 곳에서 내려, 오물(바이칼 호수에서만 산다는 담수어)을 파는 노점상들 곁을 지나 호수로 향한다. 
 바이칼 호수는 '꽁꽁' 얼어 있다. 어찌나 두껍게 어는지, 한겨울에는 호수의 얼음 위에 도로표지판까지 세워진다고 한다. 쇄빙선의 궤적이 다시 울퉁불퉁한 얼음이 되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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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빙선의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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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게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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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사진이 아니다.

  바이칼 호수에 왔으니만큼, 명물이라는 오물을 먹어보지 않을 수 없다. 노점상에서 훈제된 오물 두 마리(50루블)를 사서 옆에 있는 상점으로 들어간다. 100 루블짜리 싸구려 보드카 한 병을 사서 오물을 안주삼아 마시기 시작한다. 무미에 가까울 정도로 담백한 생선을 훈연의 향이 적절히 감싼 맛이다. 씹히는 느낌은 무척 부드럽다. 창 밖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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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상인들은 좌판을 덮어두고 상점 옆에 앉아 눈이 그치기를 기다린다.


보드카 한 병과 오물 두 마리를 금세 해치워버리고 얼근해진 몸을 일으킨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맛뵈드리고 싶어 마른 오물 다섯 마리(100루블)를 산다.
 오물이 든 비닐봉지를 달랑거리며 내렸던 곳의 반대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좀처럼 오지 않는다. 일곱 시까지 기다리다 별 수 없이 버스보다 10루블 비싼 미니버스를 타기로 결정한다. 10루블만큼 빨라서, 한 시간만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한다. 짧은 시간동안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했다는 느낌이 들어 만족스러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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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

 아침 여섯 시쯤, 내릴 준비를 하느라 부산한 레나 가족들 때문에 잠시 깨었다가, 일곱시에 차장이 깨우는 바람에 다시 일어난다. 여덟 시에 도착한 곳은 바이칼 호수 옆에 위치한 도시, 이르쿠츠크이다. 역 안까지 레나 가족들의 짐을 들어다 준 뒤에 몽골에서 만난 캐나다인에게 얻은 정보대로 다리쪽으로 가는 트램 1번을 타고(5루블) 두 정거장 뒤에 내려서 약간 헤맨 끝에이르쿠츠크 다운타운 호스텔을 찾아들어간다. 그야말로 러시아인답게 생긴 여주인이 반긴다. 체크인을 한 뒤 그녀에게 거주자 등록(러시아에 입국한 뒤 사흘 안에 거주자 등록을 해야 한다. 간혹  거주자등록을 하지 않은 채 경찰의 검문에 걸리면 골치아픈 일이 생긴다고 한다. 러시아의 경찰이나 군인들이 깡패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는 여행자들에게 유명하다. 내가 묵은 숙소에서는 300루블에 거주자 등록을 해결해 주었다)을 부탁하고 샤워실로 가던 중, UB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미국인 셋을 만난다. 유스케군에게 약을 주었던 그들이다. 그들은 오늘 모스크바로 떠난다고 한다.
 
 빵과 치즈, 홍차로 아침식사를 하고 열한시 반쯤 숙소 밖으로 나간다. 가까운 은행에서 환전을 한다. 100$=2600루블. 환율이 형편없다. 일단 이르쿠츠크 역으로 다시 걸어가 내일 저녁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표를 예약한다. 3등석 침대칸(쁘라치까르타), 1833루블(이르쿠츠크까지 타고 왔던 기차는 2등석이었다. 2등석은 막혀있는 칸 안에 침대가 네 개 있고, 3등석 침대칸 한 량이 모두 개방되어있고, 복도쪽에까지 침대가 두 개 있어서 2등석으로 치자면 한 칸에 침대 여섯 개가 있는 셈이다). 아래 사진과 같이 수첩에 적어 보여주는 것으로 표 구입을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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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내일 아침, 쁘라치까르타(3등석 침대칸), 한명'이라는 키릴문자를 몽골의 Mr.Kim에게 받은 러시아어 프랙스 북에서 찾아 적었다. 그림은 '차량의 양 끝쪽은 싫어요(양 끝에 화장실이 있어 사람들이 자주 드나든다), 아래쪽의 침대를 주세요'라는 의미로 그려넣었는데, 알고 보니 차량 안에서의 위치는 승차할 때 차장의 마음대로 정해지는 것이었다.

  체크인 할 때 호스텔 주인에게 들은 대로 트램 1번을 타고 중국인 시장에서 내린 뒤, 버스터미널로 걸어간다. 이르쿠츠크에서 가까운 바이칼호수변의 마을 리스트뱐카행 버스표(50루블)를 산다. 버스터미널 안의 행선지 표시는 모두 키릴문자로 표기되어 있어, 기차 안에서 키릴문자 읽는 법을 대강 익혀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가 출발하기까지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중국인 시장을 구경하며 요깃거리를 찾노라니, 어디선가 한국어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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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의 중국인 시장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한국어로 호객을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한국 밥 드시고 가시우!" 시장통에서 밥과 반찬을 담아파시는 조선족 아주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마침 시장하기도 했고 반갑기도 한 마음에 밥 한 그릇에 반찬 얹은 것을 받아들고 길거리에 서서 허겁지겁 떠먹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의 한국인 손님이었는지, 아주머니께선 살기 힘들다는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하셨습니다. "러시아 너무 춥고 사람도 없어요. 장사하기 힘들어요." 아주머니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사람이 지나가면 러시아어나 중국어로 열심히 호객을 했습니다. 아마도 한국 반찬이랑 밥 드시고 가세요, 정도의 내용이 아니었을까요. 사람들은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귓가로 흘려버리면서 지저분한 시장통을 요령좋게 빠져나갔습니다. 먹기를 마치고 작별인사를 하는 제게 아주머니는 "또 오시구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 참, 아주머니도-. 저 이제 모스크바로 간다니까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