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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20 4. 에스토니아(06. 4. 24. ~ 4. 26.) 가이드북이 없는 여행객은 서럽다? 4


에스토니아


4월 24일

 다섯 시에 민형의 삐삐 소리에 깬다. 조금 게으름을 피우다 다시 일어났을 때는 다섯 시 45분. 배낭을 꾸린 뒤 출발 준비를 한다.  주인 아저씨는 일찍부터 작업을 하고 계신다. 작별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민형이 발틱 역까지 배우을 나와 준다(지하철비 36루블). 아저씨가 그려주신 약도 덕에 별로 어렵지 않게 버스에 승차한다. 버스는 일곱 시 15분에 출발한다. 어제 사 두었던 빵을 씹어먹고 잠이 든다.
 몇 시간 뒤, 국경에 이르렀을 때 잠에서 깬다. 출국 심사는 버스에서 내려서 하고, 입국 심사는 차 안에서 여권만 걷어서 간단하게 한다. 오후 세 시쯤 에스토니아(Estonia)의 탈린(Tallinn)에 도착한다. 탈린 시간으로 바꾸면 두 시라는 것이 옳다.
 지도 한 장 구하지 못한 상태로 터미널에 도착했기 때문에 무척 난감하다. ATM에서 500EEK를 출금한 뒤,  지나가는 젊은 여성에게 기차역의 위치를 묻는다. 찾아가려는 숙소가 그 앞에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아두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의사소통의 문제로 꽤 고생한 탓인지, 에스토니아는 영어가 잘 통하는 나라라는 느낌이 든다. 택시를 탈 것을 권유하는 그 아가씨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니 옅고 밝은 색의 콧수염이 보여서 조금 놀란다. 역 앞까지의 택시비는 75EEK. 
 찾아간 곳은 Alur Hostel. Hostel Times에서 알아놓은 대로, 과연 역 왼쪽으로 1분쯤 가니 호스텔이 나온다. 스텝들은 친절하고 숙소는 깔끔하다. 지도가 있느냐고 물으니, 'Talline This Week'라는 무가지를 준다. 침대에 엎드려 읽다가 낮잠을 잔다.

석조 포도의 좁은 길을 걷는 기분이 그럴싸하다.


 아홉 시쯤 깨어 지도를 들여다 보다가 밖으로 나온다. '이제 유럽이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탈린의 야경은 아름답다. 청명한 대기 너머로 금성이 섬광탄처럼 빛을 발하고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아기자기한 도시라는 느낌이다. 밤 늦게 돌아다녀도 전혀 위압감이나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숙박비 225EEK(도미토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탈린의 야경은 아름답다.



4월 25일

 아침 여덟 시 반에 자다 지쳐 눈이 떠진다. 여유롭게 구경을 나갈 채비를 하고 러시아에서 사온 남은 것들을 먹어치운 뒤, 열한 시쯤 밖으로. 한국에서 출력해 온 종이 한 장을 가이드북 삼아 산책을 시작한다. 석조 포도의 좁은 길을 걷는 기분이 그럴싸하다. 어제 발견한 전망대 두 곳이 사실은 지름길을 통하면 아주 가깝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다. 넉넉잡아 세 시간이면 올드타운 전체를 구경할 수 있는 아담한 크기의 도시이다.

탈린을 구경해 보세요!


 숙소에서 가까운 전망대에서, 몽골에서부터 만났던 미국인들을 만난다. 여기까지는 같은 코스였지만 이제부터는 길이 갈를 듯하다. 그들은 스톡홀름을 통해 북유럽으로 간다고 한다.
 61EEK어치의 먹을 것들을 사서 숙소로 돌아온다. 슈퍼에서 파는 것들은 러시아보다 싼 느낌이다. 네 시쯤 점심식사를 마치고, 한 시간 반 동안 낮잠을 잔다. 여섯 시에 톰페아 언덕에서 민형을 만나기로 약속했으므로, 그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두 시간 반도안 그 안을 핀볼처럼 진동하였음에도 그를 만나지 못한다. 약속이 너무 막연했던 탓이다. 이를테면, "내일 오후 여섯 시에 남산에서 만나요."라는 약속과 다를 바가 없던 것.

톰페아 언덕은 넓었고, 나는 민형을 만나지 못했다.


 올드타운을 조금 벗어나 시가지로 들어가 시내도 구경. 환전해둔 돈이 600EEK쯤 남았다. 내일 방값을 지불하고 차표를 사면 150EEK쯤이 남는다. 라헤마아 국립공원에 다녀올까. 내일 일단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 터미널로 가 보자!


4월 26일

 아홉 시 기상. 방값을 지불하고 열한 시에 체크아웃. 역 창에서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행 유로라인 버스표를 구입한다. 23시 40분 출발, 200EEK. 매표소 아주머니는 영어를 잘 못한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듯한 인상이다. 러시아의 고압적인 직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트램 2번을 타고 버스 터미널로. 트램에는 일단 올라탔는데, 차장도 없고 돈을 누구에게 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트램 문 안쪽에 '무임승차 벌금 600' 정도의 듯으로 짐작되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붉거나 노란 관목들과 원색의 초록 상록수들이 자라는 상쾌한 길을 따라 걷는다.


 한 시에 비이트나로 출발하는 버스표를 구입한다. [38EEK, 학생 할인. 짐 보관료 15EEK] 두 시에 비이트나에 도착. 터미널도 없는, 정류장이다. '라헤마아 공원 안내소 7.2Km'라는 표지판만 보고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 밥 로스 아저씨가 늘상 그리는, 붉거나 노란 관목들과 원색의 초록 상록수들이 자라는 상쾌한 길을 따라 걷는다. 한 시간 반 뒤에 라헤마아 공원 표지판을 발견한다.

한 시간 반 뒤에 헤마아 공원 표지판을 발견한다.


 근처의 상점('pood'로 표시. 러시아에서 's'를 볼 수 없었듯, 여기에서는 'F'를 찾기 힘들다.)에서 21EEK어치의 먹고 마실 것을 산다. 요기를 마친 뒤, 여행 안내소로. 걸어왔다고 하니 놀라는 눈치이다. 자동차 없이 안쪽을 관광할 방법은 없다는 듯하다. 버스가 없는 모양이다. 불만은 없다. 걸어오는 길을 충분히 즐겼으니까.
 비이트나로 돌아가는 길은 안내소 직원들이 일러준 대로, 스쿨 버스를 얻어탄다. 한 시간 반동안 걸어온 길이었는데, 버스를 타니 겨우 15분만에 도착. 탈린행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주위를 구경하기로 마음먹는다.
 숲속 길을 따라가니 호수와, 아무도 없는 오두막이 있다. 아마 관광객에게 빌려주는 오두막인 모양이다. 라헤마아 공원을 구경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으로 산책을 한다. 이런 장소를 찾을 수 있던 것은, 무엇보다 가이드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헤마아 공원을 구경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다.


 여섯 시 반쯤 다시 정류소로. 버스 몇 대를 지나보내로 툴툴대다가, 일곱 시 15분쯤 탈린행 버스에 승차하는데 성공한다[50EEK].
 이 일기는 대합실에서 리가행 버스를 기다리며 기록중이다.
[화장실 이용료 4EEK, Lays와 네스티 24E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