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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EIDF 리뷰] 예술가와 수단 쌍둥이

다시보기 2008. 10. 9. 16:04 posted by 주말수염반장
대단한 미장센을 가지고 있는 다큐멘터리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주인공을 예쁘게 포장해버리는 의사(擬似) 다큐멘터리려니 생각했다.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점 주인공이 미워져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 마지막 장면에서야 그 이유를 깨닫고, 자신의아둔함을 꾸짖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시선의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행위예술가인 주인공은 작업을 위해 수단에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쌍둥이 아이들을 제멋대로 연민해 버린다. 이것이 첫 번째 층위의 폭력적 시선이다.
그녀는 아이들을 입양하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를 벌인다. 카메라의 시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한, 그것은 어디까지나 퍼포먼스이다. 이것이 두 번째 층위의 '시선의 폭력'이다. 개인의 일상에 틈입해 버린 카메라의 폭력 말이다.
그 과정이 일반의 상식으로는 합당하지 않아 보여 우리는 그녀를 욕하게 된다. 여기에서 세 번째 층위의 폭력적 시선이 발견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타자화.

복잡한 층위의 시선을 생각하게 하는 이 다큐멘터리의 진짜 메시지는 마지막에서야 드러난다. 마지막 장면을 천천히 되새겨보자.

쌍둥이를 입양하는 데 실패한 주인공은 작품 활동에 매진하여, 흑인을 모델로 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분장을 한 모델들이 시체처럼무대(거대한 캔버스라 불러도 좋다)에 널브러지고, 그 위에 주인공이 붉은 페인트를 흩뿌린다. 눕거나 엎드린 상태에서, 무슨 일이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모델들의 불안한 눈동자가 클로즈업된다(그들은 발가벗기워진 피부에 닿는 페인트의 차가운 감촉에 놀라움찍거리기도 한다).  작업을 마친 주인공의 손에 들린 붓에서 붉은 페인트가 떨어진다. 붓은 마치 칼과 같이 날카로워 보이고,페인트는 마치 피와 같이 섬뜩하다.
그녀의 작품을 보는 이들은 온통 백인 일색이다. 그들은 모델들을 사진찍기도 하고, 서로무언가 이야기하며 웃음짓기도 한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또다른 시선에 렌즈의 초점이 옮겨간다. 몹시 낯선 무언가를 보는 듯한눈빛의 아시안.

그 아시안의 시선은 곧 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주인공을 미워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성이라고 읽었다. 녀석은 나를 비웃고 있었다.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이물스럽게 튀어나와버린 그의 등장에 뒷통수를 맛은 듯 어안이 벙벙해졌다.

기실은 모두가 모두에게 제멋대로이고 폭력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모두가 당신의 관심이나 친절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당신을 비웃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라.

우리가 정말로 봐야 할 것은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