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행 나오신 스님들의 뒤를 따라 걸어서, 미황사에 도착했습니다. 마을과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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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내를 둘러본 뒤, 목표지인 '도솔암'으로 가는 길을 여쭈었습니다. 가장 빠른 것은 '산책로'라 불리는 길이라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등산객이 전혀 없는 한적한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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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너덜지대도 나타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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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갈수록 길이 험해졌습니다. 나뭇가지에 걸려 바지가 찢어졌습니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도 점점 희미해졌고요. 소화되지 않은 털이 섞여 있는, 짐승의 배설물도 종종 나타났죠.
 
 네, 길을 잃었습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올라가는 길은 암벽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휴대전화는 잘 터져서 미황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으신 분께서는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죠.

 "겁 먹지 마시고 일단 산 아래로 내려가 보세요."

 산등성이를 조심조심 내려가자, 길이 나타났습니다. 곧 민가도 나타났습니다. 엉뚱한 길에서 내려오는 타지인을 소들이 멀뚱히 바라보았습니다.

 논에 계시던 아저씨께서 도솔암으로 가는 길을 다시 일러주셨습니다.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한 우리는 허기를 느끼고, 아저씨께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수 없냐고 여쭈었죠. TV에서, 밭일을 하다 짜장면을 시켜 드시는 촌로들을 본 적이 있었거든요. 아저씨는 고개를 가로저은 뒤 말씀하셨습니다.

 "배고프면 라면이라도 끓여줄까?"

 와, 공짜 밥이었습니다-! 아저씨께서 내어주신 맥주 한 병을 반주삼아, 땀을 뻘뻘 흘리며 먹어치웠어요. 역시 전라도 인심이야, 라고 속닥거리면서 우리는 눈을 마주치고 웃었습니다.

 그럭저럭 배도 채웠겠다, 다시 힘을 내서 출발했습니다. 포장된 도로를 걷다 보니 이런 팻말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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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살표가 수풀 안쪽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산책로'라는 길, 한참동안 사람들이 다니지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가능하면 안내 지도에 나온 대로
능선을 따라 이동하실 것을 권장합니다.

 정상에는 통신소 독립소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왼쪽으로 샛길이 나 있었어요. 도솔암으로 가는 길입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샛길로 들어서자, 엄청난 바람과 풍경이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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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바다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샛길을 따라 도솔암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20분 정도였습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발목을 붙잡는 듯해서 몇 번이나 주저앉아 쉬었어요. 오전에 길을 헤맨 덕에 예상보다 늦은 시간에 도솔암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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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몰 전에 땅끝에 도착하기 위해서 서둘러야 했습니다. 왔던 길을 따라 한 시간쯤 내려가자 주차장과 약수터가 나왔습니다. 마침 물을 길으러 오신 분들이 계셔서,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 여쭈었습니다. 조금 무뚝뚝해 보이는 초로의 부부였습니다. 물을 다 길으신 남편분께서 트럭의 뒤에 타라고 하셨어요. 그리곤 울퉁불퉁한 길을 아주 조심조심 운전해서 저희를 버스정류장 앞까지 태워다 주셨죠. 집을 지나쳐서 한참을 더 나오신 게 분명했습니다.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가며 감사합니다, 인사했습니다. 조수석에 타고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셨죠. 얼굴 가득 인상 좋아보이는 주름이 생겼습니다.

 7년만에 다시 찾는 땅끝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없던 모노레일이 생겨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비싼 것 같아 전망대까지 걸어 올라가기로 했어요. 구불구불한 아스팔트길을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 아래 주차장까지 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일몰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길을 걷는데, 동행이 갑자기 뒤쪽으로 달려갔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보았더니, 감이 든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가시던 할머니께서 떨어뜨리신 감 하나를 주워드리고 있더군요.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시고는 광주리를 손으로 가리키셨습니다.

 "그거 먹고, 하나 더 가져 가."

 '해남 인심 최고-!'라고 마음 속으로 외쳤어요.
 
 전망대에 예전에 없던 입장료가 생겨있는 데다, 일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땅끝탑으로 바로 내려갔습니다. 바로 바닷가와 접해 있어서, 올라간 만큼을 다시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일몰을 약 20분 남겨두고 땅끝탑에 도착했습니다. 마을 주민인 듯한 부부가 석양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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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 전에는 '토말비'라는 이름의 조형물에 낙서가 잔뜩 되어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땅끝탑'이라는 이름의 깔끔한 조형물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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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 사이에 변한 것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굳이 산을 넘지 않아도, 땅끝탑에서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이 뚫려있었다는 것. 모노레일 값을 아낀답시고 산을 헉헉대며 넘을 필요가 없던 것입니다. (새로 뚫린 길은 모노레일 매표소 왼쪽에 있습니다)

 이래저래 엉뚱한 길들을 헤맨 하루였지만, 해남 사람들의 정만은 듬뿍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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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는 시골길을 30분 가량 달려 낙안읍성에 도착했습니다. 멋진 가을 하늘을 뽐내는 아침이었습니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성곽 위를 걷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우선 성곽을 한 바퀴 돌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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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토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낙안읍성에는 아직도 주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추석이 지났으니만큼, 초가지붕의 이엉을 얹는 모습도 볼 수 있었어요.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걸으며 재잘댔습니다. 장난기가 동해 녀석들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도시락 싸 왔어?"
 "네."
 "팔아라, 형한테."
 "1억 5천인데요."

 비싸기도 해라. 낮잠이나 한 숨 자야겠다고 마음먹고 아무렇게나 누워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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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이 얇은 눈꺼풀을 통과하여 검붉은 핏빛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눈을 뜨자 파란 하늘이 한가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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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될 수 있는대로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성곽을 걸었습니다. 몇 번을 멈추거나 주저앉았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태양이 머리꼭대기쯤 이르렀을 때 성곽 걷기를 마치고 마을로 들어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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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이 살고 있어서인지,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예스러운 돌담길과 초가지붕을 제외한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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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곳곳을 장승이 지키고 서있었습니다. 익살맞은 표정이 유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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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벌교로 가는 버스가 올 시간이었습니다. 낙안읍성의 푸른 가을하늘이여, 안녕-!



 순천만의 일몰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출발을 늦게 한 탓입니다. 순천역 앞의 여행안내소에서 교통편을 물어, 순천만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허겁지겁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태양은 지평선으로부터 한 뼘쯤 떨어져 있었어요. 갈대밭을 구경할 틈도 없이 달리듯 산을 올라 전망대를 향했습니다. 그 서슬에 나들이 나온 사람들 사이에 잠시 작은 길이 뚫렸다 사라졌죠.

 아, 늦지 않았습니다. 지평선에 다가간 태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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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로로 한 줄을 이루어 삼각대를 펼치고 있던 아마츄어 사진사들이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정신없이 들려왔습니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전망대에서 내려왔습니다. 시가지쪽의 하늘에선 불꽃놀이가 한창이었습니다. 어쩐지 도발적으로 보였습니다.

 터미널 옆 식당의 국밥은 지독히 맛이 없었습니다. 손님이 많아서 맛있는 집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바로 옆의 어판장에서 행사가 있었던 탓에 손님이 많은 모양이었습니다. 줄을 타는 광대를 술기운에 핏발이 선 눈으로 바라보는 어르신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순천의 젊은이들은 도대체 어디에 모여 있는걸까 궁금해졌습니다. 불빛을 향해 걷기 시작했죠. 불나방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다다른 곳은 순천제일대학 앞이었습니다. 몇몇 술집이 모여있는 정도였지만, 젊은이들이 종종 보였기 때문에 '이곳이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인가 보구나' 생각했어요. 술집을 찾아왔으니만큼, '술집'이라는 간판을 단 가게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지도를 펼치고 아르바이트생에게 여기가 순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냐고 물어봤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은 전혀 다른 곳을 가리키며 웃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연향동에 모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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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당히 취해서 택시를 타고 연향동에 갔습니다. 과연 젊은이들이 모여 있더군요. 확인을 했으니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궁전파크'라는 찜질방에서 숙박하기로 했습니다.

 찜질방의 전망이 좋았습니다. 연향동의 네온사인들이 내려다보였죠. 옆 건물 나이트에서 새어나온 음악소리도 들려왔어요.

 이제 불꽃 속으로 완전히 들어왔습니다.

 '불꽃 속에서 타들어가는 불나방처럼, 평안하구나'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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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페테부르크


4월 21일 금요일

 새벽 다섯 시 5분, 상페테부르크에 도착. 수첩에 적어둔 Hi. St. petesburg Hostel을 찾아 비를 맞으며 헤맨다. 한 시간 반쯤 헤매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나무민박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마야콥스카야 역에 가려고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가서 15p짜리 토큰 구입. 지하철 역 몇 개가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지하철을 탈 필요도 없이 걸어서 마야콥스카야 역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바로 그 곳이 마야콥스카야 역이었던 거다. 길 건너는 데 15p를 쓴 셈이다.

 어렵지 않게 민박집을 찾아냈는데, 문을 찾을 수가 없어서 난감해하고 있다가 마침 지나가는 러시아 청년에게 핸드폰을 빌려 숙소에 연락을 해서 겨우 입구를 찾는다. 몹시 지쳐있었기 때문에 옷만 갈아입고 바로 잠이 들었다 열두 시에 일어난다. 라면과 쌀밥, 김치(!)를 얻어먹고 두 시쯤 밖으로. 에르미타지까지 30분 정도 걸려 걸어간다. ISIC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덕에 무료로 입장. 소장품은 그야말로 대단해서 세 시간쯤의 구경으로도 지칠 지경인 데다가, 아주 일부분밖에 보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렘브란트의 에칭 작업이 인상적이다. 구도를 공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에칭을 여러 번 반복하여 찍어내며 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사진의 인화작업과 유사해 보인다. 대리석 조각들은 '만지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킬 정도. 서양인들이 여기저기서 스트로보를 터뜨리고, 중국어를 쓰는 동양인들은 (경보음에도 불구하고)이것저것 만져보기에 바쁘다. 고흐 작품을 찾는 데에는 실패. 내일 다시 와보리라. 여섯 시에 광장에서 사열식을 구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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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미타지 앞에서 본 사열식


 요기를 하고 인터넷 카페를 이용하다 아홉 시쯤 숙소로 복귀. 주인 아저씨는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다. 일 년간 아르바이트를 하여 모은 단 돈 400만 원만 가지고 이집트까지 가려고 한다는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니 하루를 공짜로 재워주신단다(고마워요>.<b). 부인을 찾아볼 수 없고, 러시아 아주머니 한 분과 그녀의 딸 정도로 보이는 여자, 한국인인 주인 아저씨의 딸이 숙소를 지키고 있다.


4월 22일 토요일

 여덟 시 반쯤 "식사하세요"라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아, 민박은 좋구나! 천천히 밖에 나갈 채비를 하고 열한 시쯤 밖으로. 민박집에 빨래를 맡겨서 얇은 바지에 점퍼만 입고 밖으로 나왔는데, 날씨가 흐린 데다 바람까지 불어서 몹시 춥다. '피의 성당'을 가장 먼저 구경. 모스크바의 성 바실 성당을 모델로 했다는데, 과연 그 화려함이 대단하다. 옆을 흐르고 있는 운하가 아름다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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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성당. 모스크바의 성 바실 성당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네바 강 건너편에 가보기로 하고, 다리를 몇 개 건넌다. 붉고 거대한 등대 주변에서 결혼식을 마친 부부들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작은 섬에 들어가 엄청 뾰족한 첨탑을 가진 교회를 구경. 강변 어디서나 잘 보일 정도로 첨탑이 높다. '네바 게이트'로 나와 섬의 강변을 걷다가 박물관이 많은 곳을 지난다. 추워서 걸음을 멈추고 싶지 않다. 덜덜 떨며 다시 강을 건너 러시아 박물관을 지난다. 에르미타지 근처의 검은 색 건물로 들어가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으로 향하는 버스를 예매해 둔다. 유로라인, 5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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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어디에서나 잘 보이는 교회의 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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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산책중인 상페테부르크 시민들.


 몸을 조금 녹이다가 다시 밖으로 나간다. 밖은 여전히 주워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걷노라니 날씨가 다시 맑아져서 더 걷기로. 중심가 동쪽으로 가보기로 하고 걷다가 요의를 느껴서 그것을 해결할 겸 식당에 들어간다. 진열대 안의 요리를 고르면 점원이 그것의 무게를 달아 접시에 담아주는 곳이다. 감자볶음과 소고기만 먹었는데 가격이 무려 173p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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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잘 어울리는 배색의 성당


 여름정원 동쪽 3Km에 있는 하얀색과 하늘색으로 외벽을 칠한 예쁜 성당을 발견. 해가 조금 뉘엿해져 강물에 아름답게 반사되는 시간의 네바강변을 걷는다. "좋다"라고 혼잣말을 해본다. 여름 정원은 시간이 늦어 닫혀있다. 이삭 성당에서 노을을 기다린다. 하지만 아홉시가 넘어도 노을이 붉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홉 시 20분까지 기다리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숙소로. 숙소에는 손님 한 명이 와 있다. 30세의 배낭여행객 민형. 북유럽으로 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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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시 20분까지 기다려서 찍은 이삭 성당의 노을



4월 23일 일요일

 아홉 시 아침식사. 오늘은 민형과 함께다. 피의 성당을 지나 민형의 티켓팅을 도운 뒤 에르미타지에. 숙소에서 한글 가이드북을 빌린 덕에 지난번보다는 헤매지 않을 수 있다. 반 고흐며 르누아르들의 명작을 보는 감동이 대단하다. (사진 촬영료 100p.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은 대개 찍지 못하게 해놓은 경우가 많다) 오후 다섯 시까지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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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미타지의 전경. 전시물은 직접 보시길 권장합니다.


 가이드북에 적힌 이른 바 '건축가 로시의 거리'와 센노야 시장을 구경한 뒤, 전철을 타고 알렉산드로 네프스키 대수도원을 향한다. 합정동의 외국인 묘지 비슷한 분위기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무덤이 있다길래 찾아보려다 실패. 문이 닫혀있어 15p의 뒷돈을 주고 들어간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결국 돌아오는 길에 어디에 있는지를 알았으나, 문이 닫혀있다. 다시 전철을 타고 마야꼽스카야 역으로 돌아와 한국에서 나를 '술로 먹여살린' 선배에게 선물할 압생트를 구입한다. 무려 1613p!! 식은땀(?)을 흘리며 구매 결정.

 밤 열 시 넘어서 숙소에 도착한다. 하늘은 아직 한국의 여름 여덟시 정도의 밝기이다. 내일은 러시아를 떠나 에스토니아로 간다. 나보다 하루 뒤에 에스토니아로 온다는 민형과, 가능하다면 톰페아 언덕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잠이 든다.






모스크바


4월 17일 월요일

 새벽 네 시 조금 넘어 모스끄바에 도착한다. 바샤 가족과 함께 행동하기로 하고, 지하철이 다닐 때까지 대합실에서 기다린다. 동이 틀 때쯤 지하철을 타고 벨라루시 역으로 향한다(러시아의 기차역은 종착지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다). 짐을 보관소에 맡기고(67p) 크렘린으로. 따뜻한 아침 햇살이 사진찍기 좋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크렘린 주위의 붉은 광장(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거의 없다)과 성 바실 성당, 모스크바 강 등을 구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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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실 성당 앞에 선 바샤. 바샤의 이름은 성 바실리의 이름에서 따왔다.



 바샤 가족은 아마도 돈이 떨어진 눈치였다. 맥도널드를 발견하고 칭얼대는 바샤를 어르던 안나는 근처의 간이 상점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핫도그 하나를 사 먹인다. 바샤를 제외한 모두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묘한 침묵. 하릴없이 앉아 있다가 다시 벨라루시 역으로. 역 주위에서 바샤 가족이 기차에서 먹을 것들을 장본다. 무얼 사더라도 한참씩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하다. 대합실로 돌아와 세르게이 할아버지의 제안으로 맥주 한 병씩을 마신다(56p). 빈속에 맥주를 마신 나는 조금 거나해져서, 바샤 가족에게 한 턱 내겠다며 피자집에 들어간다. 커다란 피자 한 판과 콜라 두 병(440p)을 먹고 마신다. 토마토 소스가 전혀 없고 조금 짰지만, 모두들 맛있게 먹는다. 먹기를 마치고 나오며 안나는 리듬체조 하는 시늉을 하며 무언가 말했는데, 아마도 “배가 불러서 체조라도 할 기분이야”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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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는 내려가는 데 몇 분이 걸릴 정도로 길다. 바샤는 곧 헤어진다는 걸 아는지, 이날 내내 어두운 표정이었다.


 세 시 반쯤 맡겨두었던 짐을 그들이 탈 기차 안으로 옮겨준 뒤, 작별. 바샤는 작별을 눈치 채고 서운한 얼굴이 된다. 하지만 오줌 마려운 것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우는 모습을 베개로 감출 줄 아는 씩씩한 러시아 어린이답게(?) 울지는 않았다. 모두와 포옹한 뒤 배낭을 메고 등을 돌린다.

 프로스펙트미라 지하철역으로 가서 론리플래닛을 통해 알아둔 숙소로 향한다. 트레블러 게스트하우스(900p, 거주자 등록, 아침식사 포함. 4인 1실 도미토리). 은행에서 100달러를 환전(2775루블)한 뒤, 음료수 두 병(50p)을 사서 속소로. 잘못하여 탄산수를 샀는데, 감상을 말하자면 “물에다 무슨 짓이야!” 정도. 해갈한 뒤, 쓰러져 잠이 든다.


4월 18일 화요일

열두 시간동안 잠을 잔 뒤, 여섯 시에 기상. 밖에는 비가 내린다. 샤워를 하고 여덟 시에 아침식사. 향후 계획을 세우고 짐을 맡긴 뒤 아홉시에 체크아웃(러기지 룸에서 몽골과 이르쿠츠크에서 만났던 미국인들을 다시 만난다. 짧게 일별만 함). ‘향후 계획’은 다음과 같다.

 
4/18 모스크바 시내 구경, 사진기 사기. 다섯 시에 수즈달 가는 버스타기. 수즈달에서 1박.
 4/19 수즈달 구경. 야로슬라블, 로스토브 벨리키, 세르기예브 포사드 중 어느 곳의 버스(or 기차)가 있나 알아보기. 없으면 일찍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다시 기차를 타고 로스토브 벨리키에 가서 1박.
 4/20 황금고리 구경. 야로슬라브에서 상페테부르크(아마도 야간 기차) 오르기.
 4/21 상페테부르크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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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최 벽이라고 생각되는 곳


 지하철 5회권(70p)을 사서 아르바트 거리로 향한다. 신 아르바트 거리는 한국으로 치자면 종로 정도의 분위기이다. 가이드북에서 ‘인사동’ 운운하던 곳은 구 아르바트 거리인가보다. ‘빅토르 최 벽’이라고 생각되는 곳과 푸쉬킨 부부 동상 등을 본다. 비가 온 탓인지 노점상이나 사람들은 생각보다 적다. 사진 가게를 발견하여 들어가본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주인이라 어쩐지 믿음이 간다. 라이카 바르낙 모델의 레플리카인 조르키 1을 구입한다. 필터와 케이스, 후드 등의 악세사리를 착실히 챙긴다. 상태를 확인하고 작동법을 배우는 동안 말은 동하지 않지만 몸짓으로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진이라는 취미를 가진 자들끼리의 동질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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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 가게의 할아버지. 어딘지 신뢰가 가는 얼굴이다.


 구 아르바트 거리의 끝에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건물을 발견한다. k대 평화의 전당쯤은 “저리 가세요”라고 말할만한 건물. 근처 모스크바 강변의 건물들도 대단하다. 구경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Novodevichy Convent로. 시장을 지나서 나타난 그곳은 론리플래닛이 말한 것처럼 ‘beautiful’하지는 않다. 다만 크기가 굉장하다는 것을 주위를 돌면 알 수 있다. Bell Tower가 그럴 듯했지만, 날씨가 흐려 사진 찍을 마음이 들진 않는다. 걷기 지칠 무렵, ‘저기쯤 체홉의 무덤이 있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건물이 멀리 보였고, 나는 지하철 역으로 돌아간다. 모스크바 대학 역에 잠시 앉아있는데, 뭔가 ‘똘돌이’들이 “나는 공부벌레가 아니야. 나도 제법 괴짜다운 구석이 있다구”라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듯한 외모의 녀석들이 몇몇 있다.

 오후 세 시 40분쯤 프로스펙트 미라 역에 도착한다. 맥도널드에서 빅맥세트 먹음. 캐챱을 따로 판다(115+8p). 네 시쯤 먹기를 마치고 숙소로 향한다. 슬슬 늦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수즈달 행 버스는 하루에 한 대, 오후 다섯 시에 있다고 한다. 짐을 찾고 나서 발을 동동 구르며 지하철을 타고 버스터미널이 있는 Shchyolkovskaya 역에 도착했을 때엔 이미 다섯 시가 넘어 있다. ‘아아, 야로슬라브 쪽으로 가야 하나’하고 포기하는 마음으로 “수즈달, 아진, 빠좔루이스따(수즈달, 하나, 부탁해요)”라고 말하자 놀랍게도 18시 30분 차가 있다고! 직행은 아니고, 이바노보라는 곳으로 가는 도중에 내리는 모양이다. 177p. 다행이다(몇 시에 도착할 지는 모르겠지만). 버스를 기다리면서 일기쓰는 중. 그나저나, 모스끄바 물가, 너무 비싸다! 네스티 한 병 40p! 이르쿠츠크에서는 핫도그랑 네스티 합쳐서 50p이었는데.

 기사 아저씨가 깨워서 눈을 뜬 시간은 밤 11시이다. 수즈달에 도착하면 깨워달라며 15p 짜리 음료수를 사드린 보람이 있구나, 생각하며 내려보니 주위는 암흑천지이다. 마치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내린 기분이다. 추위 때문이라기보다는 공포 때문에 턱이 덜덜 떨린다. 기사 아저씨가 가리킨 방향으로 무작정 걷는다. 한참을 걷다가 맞은편에서 차가 한 대 달려왔을 때에서야 내가 걷는 곧이 도로 한복판임을 깨닫는다. 서둘러 도로 한쪽으로 비켜서자,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뒤에서 달려온다. 가이드북이 목숨줄이라도 되는 듯이 겨드랑이에 꼭 끼고 더욱 빠른 속도로 걷기 시작한다. 개라도 한 마리 왕왕 짖으며 달려오면 최악의 상황이 되겠구나, 생각하며 걷노라니, 맞은편에서 손에 술병 같은 것을 든 젊은이 두 명이 다가온다. ‘살려주세요’라고 중얼거리며 그들에게로 간다. 러시아어로 무언가를 말하면서 내게로 다가온 그들은 가까이에서 나를 본 후 이방인임을 깨닫고 ‘아!’하는 표정을 짓는다. 놀랍게도 떨림이 그친다. 그들에게 잠자는 시늉을 했더니 길을 가르쳐준다. 그들이 가리킨 곳으로 조금 더 걸어가자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참전용사 묘지인 듯한 ‘꺼지지 않는 불꽃’을 지나 레스토랑 쪽으로 가서 가이드북을 펼쳐든다. 어디쯤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젊은이 두 명이 카페에서 나온다. 그들 중 하나가 영어를 약간 구사할 줄 알아서 길을 물으니 “Don't worry"라며 카페로 따라오라고. 그들은 여자 넷과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이쯤에서 마음을 놓고 잠시 앉아 그들과 한담을 나눈다. ‘레나’라던가 하는 여자 하나가 내가 찾는 곳 근처에 산다는 것을 알고 함께 걷기 시작한다. 아아, 드디어 숙소다! Hotel Rizopolozhenskaya. 론리 플래닛에 나온 것과는 달리 800p을 부르는 것을, 600p로 흥정하여 체크인. 여행 시작 후 처음으로 싱글룸을 쓰는 것이다. 황금고리쪽으로의 이동은 하루를 소모하더라도 낮에 하기로 결심한다.



수즈달

4월 19일 수요일

 생각보다 몸이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열시 반 기상. 찌뿌둥하다. 샤워하고 1박 더할 것을 통보한 뒤 현금인출기에서 2000p 출금. 레스토랑을 찾아 걷다보니 Nativity of the virgin cathedral에 도착. 푸른색의 돔이 인상적이다. 이 곳을 중심으로 주변을 돌며 사진을 찍으면서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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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vity of the virgin cathedral


 빵과 라면(도시락 라면. 한국에서 파는 바로 그거다. 소고기맛과 닭고기맛이 있는데, 소고기맛이 우리가 먹던 그 것. 키릴문자로 ‘도시락’이라고 써 있다), 오렌지 두 개, 우유 한 병, 속에 으깬 감자가 든 파이를 사서 숙소로 돌아와 점심식사. 무척 허기진 상태여서 맛있게 먹는다. 한숨 잔 뒤, 네 시 반쯤 다시 밖으로. 이번은 마을의 북쪽을 산책한다. 비가 조금씩 내린다. 비싼 입장료가 무서워 Saviour Monastery of St. Euthymius 주변을 걷기만 한다. 치사하게(?)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멍은 모조리 막아놓았다. 지도에 표시된 목조다리는 끊어진 상태여서 강변을 걷다가 저녁거리를 사서 계속 산책. 론리플래닛에 실린 St. Lazarus' Church 사진을 찍은 장소를 찾아냄. 구름이 걷히고 사진찍기 좋은 빛이 비추기 시작하여 Convent of the Intercession까지 걸어간다. 예쁜 오두막이 많은 아기자기한 곳이다. 수즈달이 마음에 들기 시작한다. 다만 차편이 좋지 않아 개인 여행자에게는 접근이 조금 힘든 곳이라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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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Lazarus' Church. 론리 플래닛 사진 따라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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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을 찍은 곳의 바로 뒤편 집에 살고 있는 고양이.


 숙소에 돌아와 리셉셔니스트에게 물으니 블라디미르로 가는 버스는 아침 다섯 시 20분부터 있다고 한다. 내일 일찍 출발하기로 마음먹는다. 조르키 1의 스풀(필름이 감기는 부분)이 망가져 있음을 발견하여, 모스끄바에 도착하면 아르바트 거리에 잠시 들러야 할 것 같다. 어두워지기 전에 로스토브 벨리키에 도착해야 할 텐데.


4월 20일 목요일

 이동에 하루를 소비. 여덟 시 반쯤 체크아웃하고 터미널로 걸어간다. 이틀 전 밤에는 터미널이 닫혀있었기 때문에(알고 보니 저녁 여덟 시에 닫는다고 한다) 길 복판에서 내렸던 듯하다. 아홉 시 블라디미르행 버스가 막 출발하려는 찰라다. 표를 사고 나와보니 이미 아홉 시 버스는 떠난 뒤. 삼십분을 기다려 다음 버스를 타려다 야로슬라브행 버스가 있음을 시간표에서 발견하고 매표구에서 확인하고 나오니 아홉 시 반 버스도 떠난 뒤이다. 열 시 버스(30p)를 차장에게 혼나며 탑승한다.

 50분쯤 후에 블라디미르에 도착한다. 터미널 안의 매표구에서 모스끄바행 버스표를 사려고 세 번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 러시아어를 모르는 내 탓을 하며 자신을 달래려 했지만, 그녀들의 불친절에 부아가 치민다. 기차를 타기로 마음먹고 밖에 나와보니 바로 길 건너에 모스끄바행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표를 터미널 안에서 팔지 않은 이유를 그제야 깨닫는다. 버스는 열두 시에 출발(150p). 출발 전에 30p짜리 빵을 사 먹고 21p짜리 스프라이트 한 병을 마신다.

 세 시 반쯤 모스끄바(쿠로스카야 역)에 도착. 지하철을 타고 아르바트 거리에 가서 조르키 1의 스풀을 바꾼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는 권총자살을 하는 히틀러의 그림이 인쇄된 스티커가 여기저기 붙어있다. 오늘은 히틀러의 생일이다. 이 시기에는 러시아의 스킨헤드들을 조심해야 한다. 로스토브 밸리키행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21시에 출발하는 것이 있다고. 이전 버스는 네 시에 떠난 모양이다. 대합실에 앉아 가이드북을 펴들고 잠시 고민한 뒤, 상페테부르크행을 결정한다. 지하철을 타고 콤소몰스카야 역으로 간다. 20시 36분에 출발하는 3등 침대칸 표(386p)를 끊는다. 역 밖으로 나와 40p짜리 케밥과 9.5p짜리 오렌지 쥬스로 허기를 달랜다.

 일곱 시쯤 6번 기차칸 앞에서 개표를 기다리는데, 불량스러워 보이는 러시아 청년들이 술냄새를 풍기며 접근한다. 뭐라고 말을 하는데, 못 알아듣겠다는 시늉만 하고 있자니 경찰이 다가와 놈들의 여권 번호를 적어간다. 아아, 고마워요 경찰아저씨! 개표 직전, 어떻게 기차 안에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녀석들 중 하나가 창문을 통해 내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인다.

 일곱 시 반쯤 기차에 오른다. 엄청난 몸집의 할머니가 맞은편에 앉는다. 옷을 걸기도 힘들어 보여서 거들어준다. 짐에서 먹을 것을 주섬주섬 꺼내어 간이탁자 위에 올려놓은 뒤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모습이 탐욕스러워 보인다. 시트를 펴니 지린내가 코를 찌른다. 45p을 지불하고 시트커버를 빌린다. 그것 없이는 도저히 잘 수가 없을 것 같다. 복도 쪽 2층 자리의 다른 뚱보 아주머니가 자리를 바꾸자고 해서 흔쾌히 승했는데, 자리에 눕고 나니 바로 후회가 든다. 좁고 불편한 데다가, 덥기까지 했다. 나쁜 저리인지 뻔히 알면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을 이용해먹는 그녀에게 울분을 느낀다. 묵묵히 앉아있는 군복 차림의 러시아 녀석을 놓아두고 말이다. 녀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예의 그 코막힌 소리를 가진 ‘멍청한 러시아인’의 전형처럼 보이는 녀석으로, ‘건들지 마’라는 식의 얼굴을 하고 있다가 누군가 말을 걸어주자 그때부터 말문이 터져 엄청나게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내가 있는 칸의 사람들만이 밤늦도록 떠들었으므로,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거구의 할머니의 경우, 몸을 움직일 힘은 없어도 입술을 달싹여 떠들 힘은 충분하다는 기세로 계속 지껄여댄다. 심한 갈증이 불쾌감을 더해서, 레스토랑 칸을 찾아가 40p짜리 값비싼 물(젠장할, 탄산수다)을 사서 마신다. 여행 시작 이후 가장 불쾌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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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


4월 13일 목요일

 여덟 시 반쯤 기상. 아홉시에 빵과 차로 아침식사. 아무도 깨어있는 사람이 없다. 천천히 씻고 나갈 준비를 한 뒤, 열한 시 반쯤 밖으로. 열두 시 전에 체크아웃을 하려고 했는데, 가방 정도는 그대로 둬도 된다고 한다. 지도를 보며 일단 광장으로. 거의 걸음을 멈추지 않고 걸어다닌다.

 걷다 보니 앙가라 강변에 도착. 광장 뒤편인에서는 마침 2차대전 당시의 이르쿠츠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꺼지지 않는 불꽃'의 초병 교대의식이 진행중이다. 다리를 높이 올려 걷는 딱딱한 동작으로 교대하는 군인들 주위를 러시아인들이 놀리듯 경례를 하며 따라 걷는다. 정위치하여 부동자세로 서 있는 군인을 폰카로 찍으며 웃는 러시아 여성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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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지 않는 불꽃'의 초병


 허기가 느껴져서, 트램 1번을 타고 중앙시장으로 가서 구경한 뒤 빵과 네스티(50p)로 요기. 무엇을 사야 할까(기차 안에서 먹을 것) 대충 눈으로 보아둔 뒤, 중심가쪽으로. 중심가쯤 가니까, 이르쿠츠크가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리는 이유를 얼핏 알 듯도 하다. 추위를 피해 백화점 구경 후, 중국시장에 가서 어제 발견한 좌판 아주머니의 밥을 사 먹는다. 아주머니는 단속을 피해 골목 안으로 들어가 계신다. 중국인 시장은 여기가 러시아인지 중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중국인이 많다. 다시 백화점으로 가서 현금인출기에서 2000루블 출금. 중앙시장으로 가서 기차 안에서 먹을 것들을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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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 중심가의 레닌 흉상


 다섯 시쯤 숙소에 도착. 주인 아주머니와 짧은 영어로 대화하다가 다섯 시 40분에 역으로. 15번 칸의 12번 침대를 차장아주머니가 배정해준다. 내가 산 차표는 3등 침대칸으로, 한 량이 모두 개방되어 있는 열차다. 여행자라고는 나밖에 없다(여행자들의 경우, 보통은 2등 침대칸-4인 1실-을 탄다고 한다. 하지만 3등 침대칸의 가격은 2등 침대칸의 절반). 세르게이라는 이름의 할아버지(라기엔 그리 나이들어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손자와 있으니. 우리 아버지뻘 정도)와 안나라는 이름의 아이 엄마(28세), 바샤(바부쉬카, '성 바실리'의 이름을 딴 것. 6세)라는 아이와 같이 지내게 됨. 적어 둔 러시아어로 인사하고, 사탕 하나를 바샤에게 쥐어준 뒤 금세 친해진다. 이 가족도 모스끄바까지 간다고. 기차 안의 시계는 모스끄바에 맞춰져서 -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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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할아버지와. 뒤쪽에 '군복 녀석들'도 보인다. 촬영은 바샤가.


 바샤의 그림책으로 러시아어 읽기를 연습하자니, 상의를 입지 않은 군복 차림의 녀석들이 말을 걸어온다. 그중에 이가 담뱃진으로 누런 녀석 하나가 옆에 붙어앉아 발음을 교정(?)해준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열차칸 사이로 나갔다가, 술에 잔뜩 취한 군복 녀석들 중 하나에게 붙들려 엄청 시달림. 자기들이 가진 통조림을 꺼내보이며 이걸 사서 같이 보드카를 마시자는 모양이다. 아껴두었던 소주 한 병을 먹여 달래보려 했으나, 허사. '내일'을 러시아어로 말하며 겨우 잠자리에 든다.

(시트 커버 요금 45p)



4월 14일 금요일

 모스끄바 시간 다섯 시쯤 기상(이후 모두 모스끄바 시간). 다섯 시간 시차만큼의 거리를 기차로 이동하는 것이다. 어제 사둔 사과와 라면으로 아침식사. 기차는 예니세이강을 건너 '크라스노야르스크' 역에 도착. 30분 가량 서 있다. 기차가 정차해 있는 동안 역 주위의 노파들이 집에서 만들어 온 음식들을 판다. 맥주 한 병과 닭다리 하나, 오이절임을 산다(100p). 그것과 빵, 살라미 소시지, 치즈, 홍차로 점심. 기차 양 끝의 사모바르에서 뜨거운 물을 쓸 수 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한국에서 가져온 책 "귀여운 여인"(안톤 체홉)을 읽다보니 금세 바샤네 가족이 저녁 먹을 준비를 한다. 빵, 소시지, 오렌지 쥬스로 요기. 바샤네 가족에 대한 상세 정보. 세르게이는 집 짓는 일을 한다는 모양. 안나는 미용쪽 일. 벨라루시에 계신 안나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이며, 집은 chita라고. 식사를 마친 뒤, 기차가 이름모를 역에 도착한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걸로 보아 조금 덜 추운 곳으로 접어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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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이35를 들고 있는 바샤. 작은 크기 때문인지,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울란바타르에서 이르쿠츠크로 이동할 때 탔던 2등 침대칸보다 3등 침대칸쪽이 훨씬 재미있다. 무엇보다. 자리가 좋게 배정되었다. 허름한 차림의 남자에게는 화장실 가까운 자리를 주더라. 아직까지 지루하지는 않지만, 하루가 조금은 단조로워졌음을 느낀다. 일기도 자연 짧아질 밖에.

 

4월 14일 토요일

 아침은 역시 사과와 라면. 점심은 바샤네가 준 러시아제 라면. 쌀이 먹고 싶다!(러시아제 라면 봉지가 쌀로 만든 면이라는 의미의 그림으로 되어 있긴 하지만) 정차역에서 50p짜리 튀긴 빵을 사 먹음. 안에 사과쯤으로 생각되는 잼이 들어 있어 맛있다. 기차에 오르기 전에 미리 사두었던 먹을 것들이 거의 동이나 이젠 사 먹을 수밖에 없다. 멍하니 봉지를 들고 있다가 개에게 먹을 것을 빼앗길 뻔한다. 이런 사소한 일들이 모여 하루가 된다.

 낮잠을 잔 뒤, 햄버그와 빵, 토마토 두 개, 삶은 계란 하나와 파 한 뿌리가 든 도시락(50p)을 사 먹는다. 금방 만들어 온 것이라 따끈따끈하다. 일단은 라면이 아니라서 좋다. 창 밖에는 눈이 쌓여있지 않은 곳이 눈에 띄기 시작하는데, 어제 눈이 오지 않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점점 따듯한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키 큰 나무들은 여전하고, 군복 녀석들도 술 마시자고 계속 채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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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샤와 안나. 침대와 침대 사이에 간이 탁자가 놓여 있다.


 모레 새벽이면 모스끄바에 도착이다. 바샤 가족과 미리 주소를 교환한다. 내일은 사진을 찍어둬야겠다. 바샤가 하루종일 치대서 땀이 날 지경이다. 샤워가 하고 싶다. 여름에 블라디보스톡에서부터 기차를 타는 사람들은 정말 고역일 게다. 창 밖으로 기가막힌 풍경들이 지나갈 때마다 사진을 찍을 수 없음이 아쉽다. '운전면허를 따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드는 몇 안되는 경우 중 하나.

 오늘은 바샤가 세르게이 할아버지께 혼나고 우는 것을 보았는데, 베개로 머리를 감싼 채 소리죽여 울더라. 여섯 살짜리 답잖은 행동이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안나에게 귓속말을 하는 모습은, 그 전에 큰소리로 "오줌 마려워!"라고 했다가 혼나는 바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서 재미있다.



4월 16일 일요일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우즈베키스탄 아저씨를 만나다. 이름은 압둘라. 이슬람 교도이고 평택, 수원, 금산에서 일을 하셨다고. 비자가 만기되어 쫓겨나신 모양이다. 다행히 한국에 대한 나쁜 기억은 없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 마음씨가 좋다며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아저씨. 술과 담배는 하지 않지만 여자는 밝힌다며, 아내를 넷까지 들일 수 있는 이슬람교 탓을 한다. 우즈베키스탄 여자들은 이슬람교도인 탓에 집안 일만 해서, 돈을 벌기가 힘들다고 한다. 모스끄바에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길이라고. 상페테르부르크에는 못된 놈들이 많다며 조심하라는 당부말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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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노동 경력이 있어서 한국어를 구사하시던 압둘라 아저씨.


 모스끄바 역 전에 '황금의 고리'라 불리는 곳에 정차한다는 사실을 알고 도중에 내리려 했으나, 압둘라 아저씨의 통역에 따르면 바샤 가족은 모스끄바에서 내려 벨라루시에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열 시간 동안 나와 함께 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결국은 모스끄바에서 함께 내리기로 결심. 무슨 일이 생기면 벨라루시로 전화하라는 든든한 안나의 말. 여자는 확실히 애를 낳은 뒤에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생물이 된다. 영어를 구사하는 러시아 학생도 중간에 승차했지만, 압둘라 아저씨를 만난 탓에 전혀 관심 밖이다.

 기차는 작은 역도 빠뜨리지 않고 정차한다. 이거야 원, 통일호를 타고 서울-부산을 며칠간 왕복하는 기분 아닌가. 오늘은 비가 내린다. 창 밖은 어느 새 완연한 봄이다.

(오늘 지출 내역 : 고기가 든 튀긴 빵 50p, 닭다리 도시락 50p. 닭다리 도시락은 약간 상한 느낌도 들고, 잘 익지도 않은 엉터리였다.)



여행통신(중국-이집트, 육로여행)

궤적 2007. 5. 8. 19:29 posted by 주말수염반장
 순전히 '귀찮다'라는 이유로 근 한달째 여행기 쓰기를 미루고 있습니다. 다시 의욕이 생길 때까지의 틈을 메우기 위해, 여행중에 미니홈피의 방명록에 썼던 '여행통신'을 긁어서 모아봤습니다.

 우선, 루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출동-China-Mongolia-Russia-Estonia-Latvia-Lithuania-Poland-Czech-Germany-Austria-Hungary-Croatia-Bosnia & Herzegovina-Montenegro-Albania-Greece-Bulgaria-Turky-Syria-Jordan-Egypt-한국
 

 '여행통신'을 통해 앞으로의 여행기를 짐작해보세요-!




조금 전에 베이징에 무사히 도착. 조선족이 운영하는 민박집에 왔더니 한글 자판도 쓸 수 있고 좋다! 북경에서 며칠 머물다가 몽골로 이동할 계획. (2006.03.29 21:37)

-'뻬이징 덕(?)'은 돈을 아끼느라 먹지 못했지만, 무척 맛있는 중국 만두는 실컷 먹을 수 있었습니다.

-몽골에서 6일동안 너무 늘어져 있어서, 다시 배낭을 짊어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웃음).

-오늘 저녁에 러시아 이르쿠츠크(바이칼 호수 옆이라죠)로 가는 기차에 오릅니다. 기차 안에서 두 밤 자야 해요. 아아, 지금까지는 별 거부감 없는 얼굴(그들과 비슷해 보인다는 의미에서) 덕에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이방인이 되어야겠군요. 부디 제가 무사하기를 기도해주세요-!
( 2006.04.10 11:56, IP 202.179.21.110 )

러시아 이르쿠츠크에 도착했습니다!

마치 "여기가 바로 시베리아다!"라고 말하고 있는듯한 풍경이 제법 그럴듯했습니다.

바이칼 호수는 아직도 꽁꽁 얼어있더군요. 그 위를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겨울에는 표지판이 세워진다고 하던데, 확인은 못했습니다만-.

내일 저녁에 다시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떠납니다. 무려 5일이나 걸리는 대장정입니다.

그럼 그때까지, 모두들 안녕히-! ( 2006.04.12 21:18 )

-상트 베쩨르부르크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제법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러시아에는 수많은 김영근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인가 트램 안에서 한 무리의 김영근들을 보았을 때 저는 잠시 정신이 아뜩해져서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의 심정을 말하자면 '아아, 우리의 지구를 어쩔 셈인가-!' 정도랄까요(웃음). 허리가 가슴께에 달린 것 같은 그들은, 어찌나 성큼성큼 걷는지 아무리 열심히 따라가려해도 벌써 저만큼 가 있기 일쑤입니다.

-요 며칠간 동행이 없어서 외롭기 그지없습니다. 그간의 동행들을 소개하자면, 북경에서는 각국의 '인체 번식에 대한 아크로바틱한 접근'이라는 내용을 담은 CD를 보급하시는데에 진력하시는 40대 중반의 '만수아저씨'와 함께였고, 몽골에서는 비트박스를 연구하는 동갑내기 일본인 '유스케'군과 함께 여행했었습니다.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 안에서는 살 길을 찾아 벨로루시로 가는 러시아인 '바샤'가족과 함께였구요. 다음에 만나게 될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몹시 궁금합니다.
( 2006.04.22 01:56 )

-St.Petersburg를 꼭지점으로, 북서쪽으로 나아가기를 멈추고 남서를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아, 짧은 영어 탓에 양키들을 대하기가 몹시 겁이 납니다. 영어 공부를 전혀 하지 않있던 6년동안에, be동사의 시제변화도 까먹었을 정도예요! T.T "I was-"라고 말했던 자신을 발견하고는 얼굴이 빨개지곤 합니다. be 동사의 시제변화, 누가 좀 알려주세요~!

-거창한 건물들을 보는 것도 이제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좀 조용한 곳에 가서 며칠 푹 쉬고 싶지만, 숙소값이 만만치 않아서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싼 숙소야, 나타나라-!" ( 2006.04.30 06:18 )

아아, 숙소 방명록을 보니까 "I was"가 맞군요. 두 번 죽는 기분이 이런거구나-. (2006.05.02 04:16)

-발틱 3국과 폴란드, 체코를 지나 독일에 도착했습니다. 폴란드에서는 갑자기 지친듯한 느낌이 들어 조금 고생했지만, 체코에서는 '과연!'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분좋게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슬슬 한국분들도 나타나주셔서 벙어리 신세도 면할 수 있게 되었구요.

-5주 넘게 기른 수염을 자르고, 머리도 다시 짧게 잘랐습니다. 정성기 군의 말에 의하면 '이제 좀 사람같다'는군요. 숙소비 굳은 김에 며칠 푸욱 쉴 작정입니다. 말하자면 '개인정비' 기간이랄까요-.

-앞으로의 루트는 오스트리아-헝가리-불가리아-그리스-이집트-터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장 있는 독일도 원래는 계획에 없었으니까,이 루트도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엽서를 받고 싶으신 분은 원하시는 국가명과 주소를 '비밀이야' 쪽에 남겨주세요. 사실은 주소를 하나도 몰라서 엽서를 전혀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군대에 있을 때만큼 편지를 쓰고 싶어요-! ( 2006.05.11 19:30 )

-며칠 전에는 마침내(?) 노숙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잘쯔부르그 역 안 벤치에서요. 정말 끔찍한 밤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저의 눈꺼풀을 통해 밝음과 어두움을 투사하는 전광판, 어둠의 차례에 누군가 앞에 있나 싶어서 눈을 떠 보면 보이는 등신대의 할머니 광고판, 즉석 증명사진 부스에서는 "Nuclear Lunch Detected" 톤의 목소리가 일정 간격으로 들려오고,쉽사리 잠이 오지 않아 눈을 떠 보면 보이는 "Zug Um"이라는 단어. 그 날 밤에 대해서는 어느 술자리에선가 자세하게 이야기 해드릴게요.

-어제 만난 일본인 슈와 산보의 꼬임(?) 덕분에 앞으로의 행보는 뱀이 기어가는 꼴이 될 것 같습니다. 조금 생소한 나라들입니다. 차차 보고하겠습니다.

-지금 묵고 있는 숙소가 주로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라서, 별 수 없이 또 다시 일본인 이야기입니다. 숙소에 6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일본인 할머니 한 분이 계십니다. 손녀쯤 되어보이는 일본 여성과 함께 있길래 '보기 좋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혼자 여행하고 계시더군요.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보며 "쓰고이!"를 외치시는 할머니의 눈은, 정말 초롱초롱했습니다. (손녀로 착각한 일본 여성은 혼자서 1년 2개월째 여행중이라더군요!) ( 2006.05.21 16:53 )

-부탁한 모두에게 도합 열 통의 엽서를 크로아티아에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엽서를 받았다는 소식이 전혀 없군요. 하루 생활비 절반 정도의 돈을 쓰고는 쓰린 속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터키에서 이집트로 가는 배가 없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별 수 없이 육로로 이집트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시리아를 지나야 해서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필요 서류중 하나인 한국 대사관 추천장(?) 발급이 중단되었다는군요. 이리저리 알아보느라 '이스탄불 한인회장님(!)'까지 만났습니다. 일단 국경에 가보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과연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의 엄청난 물가에 시달리다가, 불가리아에서부터는 '좀 살만하군'이라는 느낌입니다. 당장 배는 곯지 않고 있는데, 과연 한국에 돌아갈 비행기삯이 남을지 걱정입니다. ARS 모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네요.

-이번 보고서(?)에서는 이래저래 엄살만 부리게 되는군요. 마지막 엄살입니다. 오랜만에 대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사이버 캠퍼스 로그인하여 분반 확인 후 과제물 제출할 것!'이라는 공지가! 아아, 첫 학기부터 낙제생이 되어야 하는건가요- ( 2006.06.08 03:24 )

-마침내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이집트에 도착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덥습니다-!

-요 며칠동안 누군가가 숙소에 두고 간 "야생초 편지"를 읽고 있는데요, 그 탓인지 향긋한 풋고추에 된장을 쿡 찍어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서 큰일입니다. 여행 막바지에 들어서 갑자기 한국음식 생각이 나는 것은 대체 무슨 조화일까요.

-시리아에서 세 장의 엽서를 더 보냈습니다. 그 중 두 장은 부탁하지 않은 사람에게 보냈으니, 기대해보세요-. '난 아닐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는 당신, "네, 당신은 아녜요." ㅎ ( 2006.06.23 20:07 )

-우와, 내게도 이런 일이! 어제 이태리인 '이반'이 추근덕거리는 바람에 일찍 숙소로 도망와 독주 한 병을 마시고 잤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합'이라는 홍해변의 마을에 있는데, 완전 반해버려서 벌써 세 밤째랍니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느긋하게 보내고 있는 나날이라서 엽서 양산 모드에 돌입했습니다. 모두 꽈방으로 보내니까, 2~3주 후에 꽈방 탁자 위를 확인해보세요.
(2006.06.26 03:10)

-아아, 마침내 귀국입니다. 같은 비행기인줄 알았던 세 명은 아침 비행기로 떠나버리고, 결국 출발할 때처럼 저 혼자입니다. 이래저래 꽤나 늦추어진 귀국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돌아가기 싫어요-!"(버럭) '한국 가면 돈 열심히 벌어야지'라고 마음먹었습니다.

-"가기 싫어-!"하며 발버둥치느라 지쳐서 쓸 기운도 없군요. 이쯤에서 김군의 여행통신을 '일단은' 마칩니다. 멀지 않은 어느 날인가 다시 뵐 수 있게 되기를. 안녕-.  ( 2006.07.08 17:23 )

3. 러시아(06. 4. 12. ~ 4. 23.) #2 '오물'과 보드카

궤적 2007. 4. 4. 19:18 posted by 주말수염반장

바이칼 호수

 두시 반, 라스트뱐카로 향하는 버스가 출발한다. 창 밖의 풍경은 그야말로 "여기가 시베리아다"라고 외치고 있는 듯, 흰눈으로 덮힌 벌판과 곧게 자란 침엽수림뿐이다. 버스 어디엔가 구멍이 뚫렸는지, 몸을 더욱 움츠리게 만드는 바람도 시베리아를 체감하게 한다.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바이칼 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보통은 관광객들이 우르르 내릴 때 따라 내리면 되겠지만, 버스 안에 다른 여행자라고는 없는 것 같다. 적당한 곳에서 내려, 오물(바이칼 호수에서만 산다는 담수어)을 파는 노점상들 곁을 지나 호수로 향한다. 
 바이칼 호수는 '꽁꽁' 얼어 있다. 어찌나 두껍게 어는지, 한겨울에는 호수의 얼음 위에 도로표지판까지 세워진다고 한다. 쇄빙선의 궤적이 다시 울퉁불퉁한 얼음이 되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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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빙선의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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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게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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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사진이 아니다.

  바이칼 호수에 왔으니만큼, 명물이라는 오물을 먹어보지 않을 수 없다. 노점상에서 훈제된 오물 두 마리(50루블)를 사서 옆에 있는 상점으로 들어간다. 100 루블짜리 싸구려 보드카 한 병을 사서 오물을 안주삼아 마시기 시작한다. 무미에 가까울 정도로 담백한 생선을 훈연의 향이 적절히 감싼 맛이다. 씹히는 느낌은 무척 부드럽다. 창 밖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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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상인들은 좌판을 덮어두고 상점 옆에 앉아 눈이 그치기를 기다린다.


보드카 한 병과 오물 두 마리를 금세 해치워버리고 얼근해진 몸을 일으킨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맛뵈드리고 싶어 마른 오물 다섯 마리(100루블)를 산다.
 오물이 든 비닐봉지를 달랑거리며 내렸던 곳의 반대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좀처럼 오지 않는다. 일곱 시까지 기다리다 별 수 없이 버스보다 10루블 비싼 미니버스를 타기로 결정한다. 10루블만큼 빨라서, 한 시간만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한다. 짧은 시간동안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했다는 느낌이 들어 만족스러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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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

 아침 여섯 시쯤, 내릴 준비를 하느라 부산한 레나 가족들 때문에 잠시 깨었다가, 일곱시에 차장이 깨우는 바람에 다시 일어난다. 여덟 시에 도착한 곳은 바이칼 호수 옆에 위치한 도시, 이르쿠츠크이다. 역 안까지 레나 가족들의 짐을 들어다 준 뒤에 몽골에서 만난 캐나다인에게 얻은 정보대로 다리쪽으로 가는 트램 1번을 타고(5루블) 두 정거장 뒤에 내려서 약간 헤맨 끝에이르쿠츠크 다운타운 호스텔을 찾아들어간다. 그야말로 러시아인답게 생긴 여주인이 반긴다. 체크인을 한 뒤 그녀에게 거주자 등록(러시아에 입국한 뒤 사흘 안에 거주자 등록을 해야 한다. 간혹  거주자등록을 하지 않은 채 경찰의 검문에 걸리면 골치아픈 일이 생긴다고 한다. 러시아의 경찰이나 군인들이 깡패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는 여행자들에게 유명하다. 내가 묵은 숙소에서는 300루블에 거주자 등록을 해결해 주었다)을 부탁하고 샤워실로 가던 중, UB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미국인 셋을 만난다. 유스케군에게 약을 주었던 그들이다. 그들은 오늘 모스크바로 떠난다고 한다.
 
 빵과 치즈, 홍차로 아침식사를 하고 열한시 반쯤 숙소 밖으로 나간다. 가까운 은행에서 환전을 한다. 100$=2600루블. 환율이 형편없다. 일단 이르쿠츠크 역으로 다시 걸어가 내일 저녁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표를 예약한다. 3등석 침대칸(쁘라치까르타), 1833루블(이르쿠츠크까지 타고 왔던 기차는 2등석이었다. 2등석은 막혀있는 칸 안에 침대가 네 개 있고, 3등석 침대칸 한 량이 모두 개방되어있고, 복도쪽에까지 침대가 두 개 있어서 2등석으로 치자면 한 칸에 침대 여섯 개가 있는 셈이다). 아래 사진과 같이 수첩에 적어 보여주는 것으로 표 구입을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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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내일 아침, 쁘라치까르타(3등석 침대칸), 한명'이라는 키릴문자를 몽골의 Mr.Kim에게 받은 러시아어 프랙스 북에서 찾아 적었다. 그림은 '차량의 양 끝쪽은 싫어요(양 끝에 화장실이 있어 사람들이 자주 드나든다), 아래쪽의 침대를 주세요'라는 의미로 그려넣었는데, 알고 보니 차량 안에서의 위치는 승차할 때 차장의 마음대로 정해지는 것이었다.

  체크인 할 때 호스텔 주인에게 들은 대로 트램 1번을 타고 중국인 시장에서 내린 뒤, 버스터미널로 걸어간다. 이르쿠츠크에서 가까운 바이칼호수변의 마을 리스트뱐카행 버스표(50루블)를 산다. 버스터미널 안의 행선지 표시는 모두 키릴문자로 표기되어 있어, 기차 안에서 키릴문자 읽는 법을 대강 익혀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가 출발하기까지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중국인 시장을 구경하며 요깃거리를 찾노라니, 어디선가 한국어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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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의 중국인 시장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한국어로 호객을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한국 밥 드시고 가시우!" 시장통에서 밥과 반찬을 담아파시는 조선족 아주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마침 시장하기도 했고 반갑기도 한 마음에 밥 한 그릇에 반찬 얹은 것을 받아들고 길거리에 서서 허겁지겁 떠먹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의 한국인 손님이었는지, 아주머니께선 살기 힘들다는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하셨습니다. "러시아 너무 춥고 사람도 없어요. 장사하기 힘들어요." 아주머니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사람이 지나가면 러시아어나 중국어로 열심히 호객을 했습니다. 아마도 한국 반찬이랑 밥 드시고 가세요, 정도의 내용이 아니었을까요. 사람들은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귓가로 흘려버리면서 지저분한 시장통을 요령좋게 빠져나갔습니다. 먹기를 마치고 작별인사를 하는 제게 아주머니는 "또 오시구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 참, 아주머니도-. 저 이제 모스크바로 간다니까요.



(계속)

2. 몽골(06. 4. 5. ~ 4. 11.)

궤적 2007. 2. 26. 21:11 posted by 주말수염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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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타르

 오전 아홉시 반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 도착했습니다. 배낭에 넣어두었던 두꺼운 옷을 꺼내 입고 기차역을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입김이 날 정도로 추운 날씨였습니다. 역에서 가장 가까운 환전소에 들어가 100$를 환전했어요(118100투그릭). 환전소 안의 TV에선 몇 해 전 종영한 한국 드라마 <보디가드>가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미리 출력해 온 약도를 택시기사에게 보여주고 UB게스트하우스로 향합니다(택시비 1000투그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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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게스트하우스(http://www.ubguest.com/)의 약도.


 숙소 앞에 이르렀는데, 마침 숙소의 주인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Where are you come from?"이라는 물음에에 "비 서동소스 이르승(한국 사람입니다)"이라고, 기차안에서 외워두었던 몽골어로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몽골어는 어디서 배웠어요?"라는 한국어더군요. 여행 준비를 대강 한 탓에 숙소 주인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몽골인들은 한국인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으니, 헷갈릴 만도 했죠. Mr.Kim이라고 불리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UB게스트하우스는 론리플래닛 등의 가이드북에서 '잘 나가는' 숙소로 평가받고 있는 곳입니다. 하루 숙박료가 겨우 5$(도미토리)인 숙소에 머물면서 5000투그릭(우리나라 돈이랑 단위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5000원 정도)짜리 밥을 두 번이나 얻어먹었어요.

 식당에서 Mr.Kim은 제게 겁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강도들이 도처에 날뛰고 있다나요. 값나가는 것들은 들고 다니지 말고, 어두워진 뒤에 돌아다니지도 말라. 사나운 몽골 녀석들에게 얻어맞고 돌아오는 손님들이 너무 많다, 정도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무려나, 어두워지려면 아직 멀었으므로 숙소로 돌아와 그에게 시내 지도를 얻어 대강의 설명을 들은 후 구경에 나섰습니다. 우선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가서 잠시 분위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제법 세련되어 보이는 젊은이들이 둘씩 셋씩 몰려다니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에 들었던 이야기 때문인지 그들의 눈빛이 좀 사나워 보이는듯도 했습니다. 잠시 앉아 지도를 보며 지도와 주위를 맞춰봅니다.

 근처의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모든 질문에 거의 유일하게 알고 있던 몽골어 "한국에서 왔어요"를 남발한 끝에 공짜로 들어갔습니다(나중에 알고 보니 유료라더군요). 몽골의 전시 센스는 그야말로 0점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명이나 디스플레이 모두. 고비 사막에서 발굴했다는 공룡화석은 볼만했어요. 그 엄청난 녀석을 사진기에 담고 싶었지만, 실내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림들과 박제된 동물들은 조금 섬뜩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몽골인들은 무언가 폭력적인 것이나 영웅의 기상(?)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모양이에요.

 Mr.Kim이 지도에 체크해준 '간단히드'라는 사원으로 향하던 중, 언덕 위에 돌무더기가 있는 것을 보고 한 번 올라가 봤어요. 몽골인들이 그 주위를 돌며 돌을 던져놓기도 하고 주위에 술을 뿌리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올라와 놀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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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히드 앞의 벤치에서 한참동안 앉아서 몽골인들이 하는 양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네처럼 건물을 보고 감탄을 하거나 사진을 찍기보다는, 묵묵히 들어와서 그들의 종교행위를 하고 나서 묵묵히 나갈 뿐이었습니다. 포니테일을 한 사내도 몸에 밴 건들거리는 자세로-하지만 묵묵히- 경내를 돌고, 머리카락을 노랗게 염색한 젊은이도 어머니를 모시고 와 경내를 돌고. 아이들은 팔이 닿지 않는 곳에 매달린 종을 만지기 위해 안감힘을 썼구요.

 돌아오는 길에 고려식당이라는 한국어 간판을 내건 식당에서 맥주 한 병(1200투그릭), 비프커틀릿(3000투그릭)을 마시고 먹었습니다. 울란바타르에서는 한국식당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어요. 보통의 몽골 음식점보다는 두어배쯤 가격이 비쌌지만, 인기가 꽤 좋은 모양이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Mr.Kim의 꼬임(?)에 넘어가 카라코룸 투어를 하기로 결정합니다. 기사포함, 게르 1박, 론리플래닛판 러시아어 프랙티스북과 시베리아횡단열차 가이드북, 합쳐서 80$.

 카라코룸

 다음날 아침 일찍 슈퍼마켓에 가서 6000투그릭어치의 음료수와 보드카, 먹을 것들을 사서 떠날 채비를 했어요. 열 시에 기사가 딸린 승용차를 타고 출발합니다.  기사의 이름은 바이라. 32세, 아들 하나를 둔 유부남. 고수머리에 쌍꺼풀, 유순한 얼굴. 동행하게 된 사람은 일본인 유스케군. 동갑내기. 웃을 때마다 금니가 보입니다. 요 녀석은 몽골에 여행을 온 동기가 '비트박스를 연구하기 위해서'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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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을 해준 몽골인 바이라씨.


 자동차는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거의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움품움푹 패인 도로를 달렸습니다. 앞자리에 탔는데, 앞에 얼마나 깊은 구덩이가 있을까 주시하느라 긴장을 늦출 수가 없더라구요. 이렇게 달려서야 도착할 때쯤이면 자동차의 충격완화장치가 다 망가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점심무렵 '룬'이라는 곳에서 잠시 차를 세우고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굴라쉬(1200투그릭, 이 음식은 이번 여행의 종착지인 이집트에서까지 먹을 수 있었어요. 나라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지만,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이더군요. 조리법은 여기! ), 수테차이(100투그릭)을 먹고 마셨습니다.

 세 시 반쯤 '리틀 고비'라고 불리우는 곳에서 말을 타봤어요. 처음이어서 조금 허둥대자니 유스케군이 말을 탈 때에는 발판에 힘을 주어 약간 서있는 느낌이 되어야 한다고 일러주더라구요. 딱딱한 안장 탓인지, 사타구니께가 아팠습니다. 신나게 달려보지는 못했지만, 푸른 하늘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말 주인 아저씨의 게르에서 수테차이도 얻어마셨구요. TV에선 몽골어로 더빙된 러시아 흑백영화가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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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옆에는 양도 키우고 있다.


 오후 일곱시쯤, 카라코룸에 도착했습니다. 영어를 구사하는 아주머니 가야와 그의 남편, 그리고 어린 딸들 칸쵸쵸와 나막쵸춍이 살고 있는 게르에 묵게 되었죠. 우선 저녁으로 말린 고기로 낸 국물에 면을 삶아 만든 칼국수 비슷한 음식을 먹었어요. 밤중에는 몽골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할아버지의 공연을 봤습니다. '모린 호르'라는 해금을 닮은 악기, 가야금을 닮은 '야트가'등을 연주했는데요, 감상평은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였습니다. 좀 투박한 느낌이어서요. 할아버지의 솜씨가 좋지 못한 걸지도 몰라요. 하루 전에 울란바타르 시내를 돌아다니다 길거리에서 들은 것은 이쪽보다는 나았거든요. 몽골 허밍은 신기하더군요. 코로 허밍을 하는 동시에 목에서도 소리를 내기도 하고, 나무토막으로 머리를 울림판 삼아 연주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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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쵸쵸와 나막쵸춍("나 좀 그만 괴롭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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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금 연주. 투박한 소리가 난다.


 공연이 끝나고 유스케군과 술을 마셨습니다. 저는 보드카, 유스케군은 맥주. 몽골의 마실거리에서는 뭐랄까, 몽골적인 맛이 느껴지는데(심지어는 보드카에서도), 그리 좋은 쪽의 맛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오줌같은 느낌이랄까요. 물론 오줌을 마셔보지는 않았습니다. 보드카 한 병을 비우고 기분 좋은 취기를 느끼면서 게르 밖으로 나가 별을 올려보았습니다.

 아침은 간장소스의 볶은면. 열 시쯤 가야의 집을 떠나 '에르데네 주 키드'라는 사원을 둘러보았습니다. 앞서 말했던 몽골인들의 묘한 취향을 말해주는 듯, 탱화들까지 무시무시합니다. 사람가죽으로 만든 말안장 앉은 괴상한 몰골의 사람을 조각해 놓은 것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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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다깨다하며 차 안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몽골노래(노래도 '영웅의 기상' 느낌이어서 비장하기 이를데 없습니다)를 외울 지경이 되었을 때쯤 울란바타르에 도착했습니다.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려오느라 피곤한 몸을 누이고 하루 쉬기로 합니다.

 테렐지

 느리적느리적 테렐지에 갈 준비를 합니다. 지난 밤에 테렐지에 가기로 결정했거든요. 가게에서 7000투그릭 정도의 먹고 마실거리를 산 뒤 숙소에서 대절해준 봉고차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동행은 역시 유스케군. 한 시간쯤 걸려 도착헸어요. 그런데, 갑자기 유스케군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아침에 먹은 것이 잘못된 모양이라며 토를 하더라구요. 강아지 한 마리가, 게르 밖으로 나와 토를 하는 유스케군을 꼬리치며 좇아다니면서 토를 먹어치웠습니다. 유스케군을 데리고 옆 게르에 들어가 같은 숙소에서 하루 먼저 이곳으로 왔다는 미국인 여행자들에게 약을 얻어서, 먹게 했습니다. 그는 게르 안에서 쉬기로 했고, 저는 주위를 산책했습니다. 게르 바로 뒤쪽에 바위산이 있어서, 올라가보기도 하구요. 테렐지쪽이 카라코룸보다는 제가 생각하던 몽골의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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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하는 가나와 유스케. 게르는 멀리 보이는 바위산 아래에 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말을 탑니다. 두 시간 동안 산 너머까지 다녀오는 코스였어요. 아까의 그 미국인들과 저를 가나라는 이름의 열 살짜리 몽골 어린이가 리드했습니다. 그의 리드에 따라 말이 짧은 시간동안 질주했는데,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를 정도였달까요. 돌아오는 길엔 말이 땀을 흘리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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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소년 가나

  유스케군은 앓은 탓인지, 조금 까칠해져 있었습니다. 불을 지펴주러 들어온 가나의 삼촌과 보드카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한국에 가서 일을 했었다. 그러나 곧 쫓겨났다. 다시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싶지만, 비행기삯이 없다"라는 정도의 내용)를 나누었습니다. 그가 나가자 유스케군은 게르의 문을 안쪽에서 잠궈버렸습니다. 새벽에 가나의 삼촌이 불을 때주러 다시 들어올 거라고 말했더니, 그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별 수 없이 얇은 침낭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습니다. 게르 가운데에 있는 난로의 불이 꺼지자, 엄청난 한기가 몰려왔습니다. 새벽 한 시와 여섯 시, 두 번이나 추위때문에 잠에서 깨었어요.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가보니, 바깥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덜덜 떨면서 다시 잠을 청해 여덟시까지 자고 일어나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산그림자가 있을 때 사진을 찍어두려고 했는데, 어디선가 개들이 사납게 짖으며 달려든는 통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게르를 들락날락했죠. 해가 완전히 뜨고 나서야 다시 나가 산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개 한 마리가 몸을 부비며 친한척을 해서 함께 걷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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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사이 마을은 눈에 덮혀 있었습니다. 산그림자가 산중턱까지 기어올라갔을 때쯤되어 게르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툴툴거리며 게르 위에 올라갔어요. 올라가느라 밑에 두고 간 빗자루를 건네받자, 아이들은 솜이불처럼 두툼하게 쌓인 눈을 꼼꼼히 쓸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눈발을 흩뿌렸냐는듯이 푸른 하늘 아래에서였습니다.

  가나와 뭉크가 지붕에 올라가 눈을 치우는 걸 보고 있자니, 열 시 반쯤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낸 차가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눈썰매를 타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어요. 숙소로 돌아가 씻고 세탁서비스를 요청한 뒤, 역 근처의 국제열차표 구매창구까지 걸어가 내일 저녁 러시아의 이르쿠츠크로 떠나는 기차표(33000투그릭, 4인실 윗칸. 도착은 출발 이틀 후 아침 여덟시)를 예매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빨래를 널고 신발을 빨며 이동을 준비했습니다. 갑작스레 변의를 느껴 화장실에 앉아 식은땀을 흘리며 설사를 했습니다. 한국에서 미리 사 둔 지사제 두 알을 투약하고, 저녁 일곱 시까지 한 숨 잤습니다. 일어나보니 옆 침대에 캐나다인 한 명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지금 막 이르쿠츠크에서 오는 길이랍니다. 이르쿠츠크는 몹시 춥다며(자기가 있을 때에는 영하 12도나 되었다고 하더군요) 옷이 충분하냐고 걱정을 하더군요. 제가 가려고 하는 호스텔(이르쿠츠크 다운타운 호스텔. 호스텔 검색은 여기! 또는 여기! 제가 여행하던 때는 비수기라 예약을 전혀 하지 않고-신용카드가 없어서 예약도 불가능했지만-링크해둔 사이트에서 어디서 묵을까만 결정한 뒤 이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종종 난처한 상황에 처할 때도 있었어요)에서 묵었던 모양으로, 기차역에서 다리쪽으로 가는 트램 1번을 타면 금방 도착한다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제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이집트의 여름은 몹시 덥다며 또 걱정을 해줍니다. 유스케군은 다음날 아침에 유럽으로 떠난다고 했습니다. 여행중 영어에 대해 느끼는 것은, 영어는 마치 탁구와 같아서 좋은 상대를 만나면 더 좋은 영어를 구사할 수 있고, 실력없는 상대를 만나면 형편없는 영어가 입밖으로 튀어나온다는 것입니다. 사흘이나 같이 다닌 유스케군과 충분히 친해지지 못한 것은 짧은 영어탓이랄수도 있겠죠.

 다음날에는 기차 안에서 먹을 것들을 사고 남은 몽골돈을 러시아 루블로 환전해둔 뒤, 숙소에서 웹서핑을 하며 기차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여섯 시 사십 분쯤 기차에 올랐습니다. 같은 칸에는 러시아인 부부와 딸 한 명이 함께 타게 되었습니다. 몽골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왔었는지, 기차가 떠날 때까지 플랫폼의 가족을 유리창을 통해바라보며 우는 바람에 인사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기차가 출발하고 나서 한참 뒤에야 인사를 나누었어요. Mr.Kim에게 받은 러시아어 프랙티스북이 유용했죠. 딸의 이름은 레나이고, 이르쿠츠크에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열여덟 살이고 학생은 아니라는군요. 온 몸을 울려 나오는 목소리가 비염 탓에 막혀버리는 듯한 목소리의 소유자입니다. 영어는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셋 중 누군가에게선가 풍기는 암내가 대단하더군요.

 아마도 새벽 네시나 다섯시쯤 국경인 수흐바타르에 도착한 듯했습니다. 여덟시 반쯤 일어나 역으로 가서 소변을 보고 세면을 했어요. 기차로 돌아와 몽골 군인이 국경에서 돈을 압수할지도 모른다는(불법으로 돈을 버는 것을 막기 위해 입국할 때에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인지를 적어야 합니다. 나갈 때에 가진 돈이 들어올 때의 돈보다 많으면 그 차액만큼을 압수한다고 합니다. 극단적인 경우겠죠. 뭐, 저는 귀찮아서 그 칸을 공란으로 해두었습니다) Mr.Kim의 으름장을 떠올리고는 점퍼의 모자 말아넣는 곳에 돈을 말아 종이에 싼 것을 청테잎으로 붙여놓았습니다. 출국심사는 제법 삼엄한 분위기였습니다. 다행히 돈 검사는 하지 않았구요. 열시쯤 기차가 출발하여 열한시쯤 러시아쪽 국경의 나우시키 역에 도착합니다. 한시쯤 입국심사를 마치고 여권을 돌려받았습니다. 두시 반까지 나우시키 역 주위를 산책했습니다. 한적한 시골마을로, 목조건물이 많았고 수종이 몽골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산책 도중 스쳐지나간 러시아 꼬마여자아이의 입모양은 뭔가 욕을 하는 듯했고(눈빛이 분명 그랬거든요), 중학생쯤 되어보이는 사내녀석은 허리가 가슴께에 있어보일 정도로 다리가 길었는데, 걸음은 또 어찌나 빠르던지요. 기차는 네시아 다시 출발했습니다. 그야말로 완행이어서 작은 역에서도 하나하나 정차를 합니다. 같은 칸의 아저씨가 토마토 하나와 살라미 소세지를 잘라서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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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나우시키 역


 옆 칸에는 브리얏 계열의 러시아인(몽골인으로 착각했습니다. 러시아에 사는 몽골 민족입니다)이 몽골에서 한국 전자제품을 잔뜩 사가지고 와서는 내게 설명서 내용을 알려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앙가르스키라는 곳에서 마사지를 하는 분이라는데, 무척 유쾌한 아주머니입니다. 한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아줌마 타입이어서, 전국노래자랑에서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무대 아래로 뛰쳐나가 춤을 추시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거의 정확합니다. '까레야(한국)' 물건을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재킷 하나를 보여주시며 울란바타르의 한국상품 상점에서 샀다는데, 아무리 보아도 중국제 같아 중국제라고 했더니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하더라구요. 같은 칸의 일행과 나누는 대화의 억양이나 제스츄어, 표정을 살펴보니 '속았다' 하는 것 같았습니다. 설명서는 건강보조기의 것이었는데, '정력증강'이나 '생리불순' 같은 단어들을 온갖 몸짓으로 설명하기란 꽤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자, 내일 아침이면 바이칼 호수 옆의 도시 이르쿠츠크에 도착합니다. 꽝꽝 얼은 바이칼 호수 위를 걸어봅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닥터 지바고의 눈 덮인 벌판이 생각나신다구요? leoniscore군은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러시아인들의 현실과 만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