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 10점
김애란 지음/문학과지성사
퀴즈쇼 - 6점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가장 큰 차이는, 김애란 소설의 인물들은 '당연히'[숙명처럼] 고시원에 살고 있지만, 김영하 소설의 주인공은 '마지못해' 그곳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김영하는 '그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지어주'겠다고 말하게 된 것이다. 덧붙이자면, 한쪽은 '살고' 있는 동안, 다른 쪽은 '머물고' 있던 것.
 요약하자면, '20대여, 각성하라!' 정도.

도서관 책에 밑줄을 그은 -『사람을 찾습니다』

다시보기 2007. 7. 11. 15:29 posted by 주말수염반장

 
사람을 찾습니다
웡 찡 외 지음, 김혜준 외 옮김/이젠미디어(아이원,서울교육정보)

 도서관의 책에 밑줄을 긋는 것은 범죄행위에 가깝다.
 "이 문장 정말 멋지지 않아?"
 도대체 당신의 감정을 왜 나에게 강요하는가.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려고 드는 연인의 질문만큼 지겹고 낯간지럽다. 아니, 도서관의 책에 밑줄이 그어져있는 경우에는 낯조차 알 수 없어 황당하기까지 하다.

 지난 주말에 빌린 소설책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홍콩 단편소설 모음 『사람을 찾습니다』. 요즈음의 대세에 따라 4·6판 크기정도의 양장본이다. 군복의 건빵주머니에도 쏙 들어갈 만한 크기여서, 읽기를 마친 곳은 예비군 훈련장이었다. 밑줄은 첫 페이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첫 번째 단편소설속의 인물인 '인인'이라는 이름에 파스텔톤 핑크로 옅게 그어져 있는 밑줄. 대개의 경우 소설책에는 '멋진 문장'이나 '멋지다고 여겨지는 문장'에 밑줄이 그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인인'이라는 단어에 그어져 있는 밑줄이라니. 다음 밑줄은 '상해 새우떡볶이'에 그어져 있었다. (도대체 이 사람 뭐야!)

 표제작에는 두 명의 화자가 존재한다. 화자가 바뀔 때마다 문단이 바뀌고 한 줄의 여백이 주어지는데, 두 화자가 전화를 통해 처음으로 대화하는 순간 전화기를 축으로 한 줄의 여백도 없이 화자가 전환되어 잠시 혼란을 준다. 밑줄은 독서에 집중할 수 없을 때라거나 주의깊게 읽어야 하는 곳에서 잦아진다. 그런데 예의 분홍색 밑줄은 엉뚱한 곳에서 갈피를 잃고 헤매고 있었다. 아무래도 소설 읽기에 익숙한 사람은 아닌 듯하다. 이후 한동안 밑줄은 정적.

 읽기를 포기했나보군, 하고 짐작했는데 다섯 번째 단편에서 녀석이 색깔을 바꾸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파란색 볼펜이다. 한 사람의 것이 아니겠거니 생각했지만, 엉뚱한 곳에 밑줄을 긋는다는 혐의를 벗어날 수는 없다. 자기 짝을 좀처럼 찾지 못하는 여주인공이 그렇고 그런 자괴감에 빠져있는 장면이었다.

 밑줄은 다시 분홍 빛깔을 되찾고 일곱 번째 단편을 서성인다. 여기까지 온 녀석의 끈기에 박수라도 보내고 싶을 정도로 지루해졌을 무렵이었다.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연애하는 작중의 남자과 여자가 교감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줄 거라곤 Blue의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라는 노래밖에 없다는 듯이 노래 가사를 몇 번이고 인용하고 있는 단편이다. 여자는 결국 '오해'로 인해 남자를 '만나지 못한' 채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밑줄로 인한 짜증과 함께 읽기를 마쳤다. 홍콩의 소설이 정말 이렇지 않다면(아니리라 믿고 싶다), 실망의 원인은 텍스트를 선별한 이에게 있으리라. 중국 반환 후 나타난 홍콩 소설의 징후를 전화나 인터넷을 통한 개별화라거나 사념적 소설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소외의 문제라면 한국 소설에서도 지겨울 정도로 다루어 왔고 다루고 있다. 수록된 여덟 편의 소설을 통해 홍콩 문학의 일면을 보기란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다. 그것도 한국 소설을 보는 눈을 가지고 선별한 홍콩소설이라면 더더욱. (게다가 밑줄이 그어진 책을 통해서라면 더더더욱?)









보스니아 종교문화사

이보 안드리치/문화과학사
 
제파 강의 다리 외
이보 안드리치 지음, 조준래 옮김/책세상
 

On this place Serbian criminals
in the night of 25th-26th August, 1992, set on fire
National and
University's library
of Bosnia and Herzegovina
over 2 millions of books, periodicals
and documents vanished in the flame.

Do not forget,
remember and warn!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립도서관에 새겨져 있는 글



 사라예보는 탄흔으로 얽어 있었다. 트램바이 선로를 새로 놓느라 온통 파헤쳐진 길 위에 차들이 달렸다. 건물 벽이고 도로 바닥이고 할 것 없이 탄흔 투성이였다. 내전이 끝나고 여러 해가 지났지만, 흔적은 여전했다. 그들에게는 복구의 의지가 없는 것일까, 여력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립도서관에 새겨져 있는 글'과 같이, 잊지 않기 위해서일까.

 지난해 말부터 음모(?)하던 모종의 계획을 위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대한 자료들을 모았다. 소개하는 두 권의 책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이보 안드리치의 저작이다. 그가 구사하는 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무척 단순하다. 독자는 역사책을 읽듯, 그가 제시하는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책을 읽어나가면 된다. 그런데 '종교문화史'야 당연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되겠지만,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견지해야 할 '픽션'에 있어서도 그는 동일한 서술 방식을 사용한다. 그야말로 무뚝뚝하다고 할 수 밖에.
 그가 보여주는 또다른 스타일은 '항상 인간을 주인공으로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리가 서사의 중심에 있는 소설('제파 강의 다리')이 있는가 하면, 몇 개의 산봉우리들이 키가 크거나 작은 형제들의 일생담처럼 이야기되기도 한다('르자프 강변의 언덕들'). 인간이 주인공이 되는 소설의 경우에도 마땅한 연결고리가 없는 몇 개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텍스트 속에 공존한다('아니카의 전성 시대'). 이쯤 되고 보면 작가가 천착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시간'이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소감을 들어보면 짐작은 거의 확신에 가까워진다.

 
"태초부터 모든 역사는 본질적 측면에서 보면, 인생의 의미와 관련된 하나의 공통된 역사이다."


 무려 '인생'을 들먹여가며 말하는 것은 좀 거창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한 말인지는 짐작할만하다. 그가 미시사와 거시사에 대해 얼마나 균형감 있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고, 그의 소설을 읽고 나서의 느낌도 거기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는 여전히 여러 종교를 가진 여러 민족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열심히 밀쳐대고 있다. '종교'와 '민족'이라는 일그러진 형체를 지니게 되어버린 괴물들이 그들을 내려다보며 체스판 위의 말을 다루듯 그들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것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만의 일일까, 생각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