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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

 아침 여섯 시쯤, 내릴 준비를 하느라 부산한 레나 가족들 때문에 잠시 깨었다가, 일곱시에 차장이 깨우는 바람에 다시 일어난다. 여덟 시에 도착한 곳은 바이칼 호수 옆에 위치한 도시, 이르쿠츠크이다. 역 안까지 레나 가족들의 짐을 들어다 준 뒤에 몽골에서 만난 캐나다인에게 얻은 정보대로 다리쪽으로 가는 트램 1번을 타고(5루블) 두 정거장 뒤에 내려서 약간 헤맨 끝에이르쿠츠크 다운타운 호스텔을 찾아들어간다. 그야말로 러시아인답게 생긴 여주인이 반긴다. 체크인을 한 뒤 그녀에게 거주자 등록(러시아에 입국한 뒤 사흘 안에 거주자 등록을 해야 한다. 간혹  거주자등록을 하지 않은 채 경찰의 검문에 걸리면 골치아픈 일이 생긴다고 한다. 러시아의 경찰이나 군인들이 깡패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는 여행자들에게 유명하다. 내가 묵은 숙소에서는 300루블에 거주자 등록을 해결해 주었다)을 부탁하고 샤워실로 가던 중, UB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미국인 셋을 만난다. 유스케군에게 약을 주었던 그들이다. 그들은 오늘 모스크바로 떠난다고 한다.
 
 빵과 치즈, 홍차로 아침식사를 하고 열한시 반쯤 숙소 밖으로 나간다. 가까운 은행에서 환전을 한다. 100$=2600루블. 환율이 형편없다. 일단 이르쿠츠크 역으로 다시 걸어가 내일 저녁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표를 예약한다. 3등석 침대칸(쁘라치까르타), 1833루블(이르쿠츠크까지 타고 왔던 기차는 2등석이었다. 2등석은 막혀있는 칸 안에 침대가 네 개 있고, 3등석 침대칸 한 량이 모두 개방되어있고, 복도쪽에까지 침대가 두 개 있어서 2등석으로 치자면 한 칸에 침대 여섯 개가 있는 셈이다). 아래 사진과 같이 수첩에 적어 보여주는 것으로 표 구입을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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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내일 아침, 쁘라치까르타(3등석 침대칸), 한명'이라는 키릴문자를 몽골의 Mr.Kim에게 받은 러시아어 프랙스 북에서 찾아 적었다. 그림은 '차량의 양 끝쪽은 싫어요(양 끝에 화장실이 있어 사람들이 자주 드나든다), 아래쪽의 침대를 주세요'라는 의미로 그려넣었는데, 알고 보니 차량 안에서의 위치는 승차할 때 차장의 마음대로 정해지는 것이었다.

  체크인 할 때 호스텔 주인에게 들은 대로 트램 1번을 타고 중국인 시장에서 내린 뒤, 버스터미널로 걸어간다. 이르쿠츠크에서 가까운 바이칼호수변의 마을 리스트뱐카행 버스표(50루블)를 산다. 버스터미널 안의 행선지 표시는 모두 키릴문자로 표기되어 있어, 기차 안에서 키릴문자 읽는 법을 대강 익혀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가 출발하기까지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중국인 시장을 구경하며 요깃거리를 찾노라니, 어디선가 한국어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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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의 중국인 시장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한국어로 호객을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한국 밥 드시고 가시우!" 시장통에서 밥과 반찬을 담아파시는 조선족 아주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마침 시장하기도 했고 반갑기도 한 마음에 밥 한 그릇에 반찬 얹은 것을 받아들고 길거리에 서서 허겁지겁 떠먹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의 한국인 손님이었는지, 아주머니께선 살기 힘들다는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하셨습니다. "러시아 너무 춥고 사람도 없어요. 장사하기 힘들어요." 아주머니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사람이 지나가면 러시아어나 중국어로 열심히 호객을 했습니다. 아마도 한국 반찬이랑 밥 드시고 가세요, 정도의 내용이 아니었을까요. 사람들은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귓가로 흘려버리면서 지저분한 시장통을 요령좋게 빠져나갔습니다. 먹기를 마치고 작별인사를 하는 제게 아주머니는 "또 오시구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 참, 아주머니도-. 저 이제 모스크바로 간다니까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