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예매경쟁을 뚫지 못하고 별 생각이 없었던 영화를 보게 될 경우가 있다. 사전 정보도 없이 보기 시작한 영화가 뜻밖으로 마음에 들 때의 쾌감은 대단하다. 길을 걷다 오천 원짜리 지폐를 주었을 때의 기분 정도?(왜 오천 원인지는 비~밀-)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영화는 보통 훌륭하지 않을 경우가 많다.

 묶어놓은 기준을 짐작할 수 없는 단편들의 묶음 “부천 초이스 : 단편 2”의 경우는 어느 쪽이었느냐 하면, ‘대체로 나쁘지 않다’ 정도. 하나하나 간단히 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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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외로운 별> Korea : 2006 : 10min : Digi-beta : Color : 한병아
 엔딩 크래딧이 애니메이션 자체보다 볼 가치가 있다. 감독은 그냥 한 번 애니매이션을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엔딩 크레딧엔 감독의 이름이 가득하다. 많은 이를 혹하려면 차라리 싸구려 아포리즘이라도 채워 넣었으면 됐을 텐데, 그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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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드워드 제임스의 기억> Canada : 2006 : 15min : Beta : Color : 로드리고 구디뇨
 최면 치료를 받는 남자의 시각을 카메라로 대체하여 기억을 추적하는 영화. 시작하고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결말을 알 수 있는 단편이다. 그 단점을 감춰보려는 의도였을까, 마지막에는 ‘그게 아냐!’라는 식의 꼬리를 붙이는 비겁함을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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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의 매듭> Italy : 2006 : 33min : Beta : Color : 파비오 레시나로 & 파비오 구아글리오네
 과학이 신체에서 영혼의 물리적 근거를 발견한 근미래. 인류는 더 이상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없게 된다, 라는 전제로 시작하는 영화. 세계관이 마음에 들뿐더러, 영상과 음악도 빼어나다.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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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탈 느와르> France : 2006 : 15min : Beta : Color : 프랑수아 쟈맹
 단편답게 간결한 사건을 가지고 ‘르와르’ 장르를 패러디한다. 여자의 목을 삽으로 찍어 죽이는 장면에서는 의외로 공포에 질렸달까, 그런 반응의 관객들이 많았다. “오랫동안 친구가 되겠군”(이었던가?)이라는 마지막 대사에서는 이 영화의 성격을 확실히 이해하고 키득키득 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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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터와 로봇아빠> Spain : 2006 : 9min : Beta : B&W : 카를로스 탈라망카
 흑백필름. 예스러운 조명. 문장으로 치자면 의고체의 영화다. 아버지를 잃은 소년이 이런저런 부품들을 모아 로봇 아빠를 만든다. 로봇이 완성되어 기침하듯 연기를 뱉어내며 아들과 걷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여객기가 무언가를 조롱하듯 날아간다. 은근히 웃긴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