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종교문화사

이보 안드리치/문화과학사
 
제파 강의 다리 외
이보 안드리치 지음, 조준래 옮김/책세상
 

On this place Serbian criminals
in the night of 25th-26th August, 1992, set on fire
National and
University's library
of Bosnia and Herzegovina
over 2 millions of books, periodicals
and documents vanished in the flame.

Do not forget,
remember and warn!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립도서관에 새겨져 있는 글



 사라예보는 탄흔으로 얽어 있었다. 트램바이 선로를 새로 놓느라 온통 파헤쳐진 길 위에 차들이 달렸다. 건물 벽이고 도로 바닥이고 할 것 없이 탄흔 투성이였다. 내전이 끝나고 여러 해가 지났지만, 흔적은 여전했다. 그들에게는 복구의 의지가 없는 것일까, 여력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립도서관에 새겨져 있는 글'과 같이, 잊지 않기 위해서일까.

 지난해 말부터 음모(?)하던 모종의 계획을 위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대한 자료들을 모았다. 소개하는 두 권의 책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이보 안드리치의 저작이다. 그가 구사하는 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무척 단순하다. 독자는 역사책을 읽듯, 그가 제시하는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책을 읽어나가면 된다. 그런데 '종교문화史'야 당연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되겠지만,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견지해야 할 '픽션'에 있어서도 그는 동일한 서술 방식을 사용한다. 그야말로 무뚝뚝하다고 할 수 밖에.
 그가 보여주는 또다른 스타일은 '항상 인간을 주인공으로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리가 서사의 중심에 있는 소설('제파 강의 다리')이 있는가 하면, 몇 개의 산봉우리들이 키가 크거나 작은 형제들의 일생담처럼 이야기되기도 한다('르자프 강변의 언덕들'). 인간이 주인공이 되는 소설의 경우에도 마땅한 연결고리가 없는 몇 개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텍스트 속에 공존한다('아니카의 전성 시대'). 이쯤 되고 보면 작가가 천착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시간'이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소감을 들어보면 짐작은 거의 확신에 가까워진다.

 
"태초부터 모든 역사는 본질적 측면에서 보면, 인생의 의미와 관련된 하나의 공통된 역사이다."


 무려 '인생'을 들먹여가며 말하는 것은 좀 거창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한 말인지는 짐작할만하다. 그가 미시사와 거시사에 대해 얼마나 균형감 있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고, 그의 소설을 읽고 나서의 느낌도 거기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는 여전히 여러 종교를 가진 여러 민족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열심히 밀쳐대고 있다. '종교'와 '민족'이라는 일그러진 형체를 지니게 되어버린 괴물들이 그들을 내려다보며 체스판 위의 말을 다루듯 그들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것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만의 일일까, 생각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