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07.02.26 2. 몽골(06. 4. 5. ~ 4. 11.)
  2. 2007.02.20 1. 중국(06. 3. 29. ~ 4. 4.)

2. 몽골(06. 4. 5. ~ 4. 11.)

궤적 2007. 2. 26. 21:11 posted by 주말수염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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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타르

 오전 아홉시 반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 도착했습니다. 배낭에 넣어두었던 두꺼운 옷을 꺼내 입고 기차역을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입김이 날 정도로 추운 날씨였습니다. 역에서 가장 가까운 환전소에 들어가 100$를 환전했어요(118100투그릭). 환전소 안의 TV에선 몇 해 전 종영한 한국 드라마 <보디가드>가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미리 출력해 온 약도를 택시기사에게 보여주고 UB게스트하우스로 향합니다(택시비 1000투그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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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게스트하우스(http://www.ubguest.com/)의 약도.


 숙소 앞에 이르렀는데, 마침 숙소의 주인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Where are you come from?"이라는 물음에에 "비 서동소스 이르승(한국 사람입니다)"이라고, 기차안에서 외워두었던 몽골어로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몽골어는 어디서 배웠어요?"라는 한국어더군요. 여행 준비를 대강 한 탓에 숙소 주인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몽골인들은 한국인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으니, 헷갈릴 만도 했죠. Mr.Kim이라고 불리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UB게스트하우스는 론리플래닛 등의 가이드북에서 '잘 나가는' 숙소로 평가받고 있는 곳입니다. 하루 숙박료가 겨우 5$(도미토리)인 숙소에 머물면서 5000투그릭(우리나라 돈이랑 단위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5000원 정도)짜리 밥을 두 번이나 얻어먹었어요.

 식당에서 Mr.Kim은 제게 겁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강도들이 도처에 날뛰고 있다나요. 값나가는 것들은 들고 다니지 말고, 어두워진 뒤에 돌아다니지도 말라. 사나운 몽골 녀석들에게 얻어맞고 돌아오는 손님들이 너무 많다, 정도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무려나, 어두워지려면 아직 멀었으므로 숙소로 돌아와 그에게 시내 지도를 얻어 대강의 설명을 들은 후 구경에 나섰습니다. 우선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가서 잠시 분위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제법 세련되어 보이는 젊은이들이 둘씩 셋씩 몰려다니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에 들었던 이야기 때문인지 그들의 눈빛이 좀 사나워 보이는듯도 했습니다. 잠시 앉아 지도를 보며 지도와 주위를 맞춰봅니다.

 근처의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모든 질문에 거의 유일하게 알고 있던 몽골어 "한국에서 왔어요"를 남발한 끝에 공짜로 들어갔습니다(나중에 알고 보니 유료라더군요). 몽골의 전시 센스는 그야말로 0점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명이나 디스플레이 모두. 고비 사막에서 발굴했다는 공룡화석은 볼만했어요. 그 엄청난 녀석을 사진기에 담고 싶었지만, 실내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림들과 박제된 동물들은 조금 섬뜩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몽골인들은 무언가 폭력적인 것이나 영웅의 기상(?)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모양이에요.

 Mr.Kim이 지도에 체크해준 '간단히드'라는 사원으로 향하던 중, 언덕 위에 돌무더기가 있는 것을 보고 한 번 올라가 봤어요. 몽골인들이 그 주위를 돌며 돌을 던져놓기도 하고 주위에 술을 뿌리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올라와 놀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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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히드 앞의 벤치에서 한참동안 앉아서 몽골인들이 하는 양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네처럼 건물을 보고 감탄을 하거나 사진을 찍기보다는, 묵묵히 들어와서 그들의 종교행위를 하고 나서 묵묵히 나갈 뿐이었습니다. 포니테일을 한 사내도 몸에 밴 건들거리는 자세로-하지만 묵묵히- 경내를 돌고, 머리카락을 노랗게 염색한 젊은이도 어머니를 모시고 와 경내를 돌고. 아이들은 팔이 닿지 않는 곳에 매달린 종을 만지기 위해 안감힘을 썼구요.

 돌아오는 길에 고려식당이라는 한국어 간판을 내건 식당에서 맥주 한 병(1200투그릭), 비프커틀릿(3000투그릭)을 마시고 먹었습니다. 울란바타르에서는 한국식당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어요. 보통의 몽골 음식점보다는 두어배쯤 가격이 비쌌지만, 인기가 꽤 좋은 모양이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Mr.Kim의 꼬임(?)에 넘어가 카라코룸 투어를 하기로 결정합니다. 기사포함, 게르 1박, 론리플래닛판 러시아어 프랙티스북과 시베리아횡단열차 가이드북, 합쳐서 80$.

 카라코룸

 다음날 아침 일찍 슈퍼마켓에 가서 6000투그릭어치의 음료수와 보드카, 먹을 것들을 사서 떠날 채비를 했어요. 열 시에 기사가 딸린 승용차를 타고 출발합니다.  기사의 이름은 바이라. 32세, 아들 하나를 둔 유부남. 고수머리에 쌍꺼풀, 유순한 얼굴. 동행하게 된 사람은 일본인 유스케군. 동갑내기. 웃을 때마다 금니가 보입니다. 요 녀석은 몽골에 여행을 온 동기가 '비트박스를 연구하기 위해서'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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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을 해준 몽골인 바이라씨.


 자동차는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거의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움품움푹 패인 도로를 달렸습니다. 앞자리에 탔는데, 앞에 얼마나 깊은 구덩이가 있을까 주시하느라 긴장을 늦출 수가 없더라구요. 이렇게 달려서야 도착할 때쯤이면 자동차의 충격완화장치가 다 망가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점심무렵 '룬'이라는 곳에서 잠시 차를 세우고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굴라쉬(1200투그릭, 이 음식은 이번 여행의 종착지인 이집트에서까지 먹을 수 있었어요. 나라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지만,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이더군요. 조리법은 여기! ), 수테차이(100투그릭)을 먹고 마셨습니다.

 세 시 반쯤 '리틀 고비'라고 불리우는 곳에서 말을 타봤어요. 처음이어서 조금 허둥대자니 유스케군이 말을 탈 때에는 발판에 힘을 주어 약간 서있는 느낌이 되어야 한다고 일러주더라구요. 딱딱한 안장 탓인지, 사타구니께가 아팠습니다. 신나게 달려보지는 못했지만, 푸른 하늘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말 주인 아저씨의 게르에서 수테차이도 얻어마셨구요. TV에선 몽골어로 더빙된 러시아 흑백영화가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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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옆에는 양도 키우고 있다.


 오후 일곱시쯤, 카라코룸에 도착했습니다. 영어를 구사하는 아주머니 가야와 그의 남편, 그리고 어린 딸들 칸쵸쵸와 나막쵸춍이 살고 있는 게르에 묵게 되었죠. 우선 저녁으로 말린 고기로 낸 국물에 면을 삶아 만든 칼국수 비슷한 음식을 먹었어요. 밤중에는 몽골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할아버지의 공연을 봤습니다. '모린 호르'라는 해금을 닮은 악기, 가야금을 닮은 '야트가'등을 연주했는데요, 감상평은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였습니다. 좀 투박한 느낌이어서요. 할아버지의 솜씨가 좋지 못한 걸지도 몰라요. 하루 전에 울란바타르 시내를 돌아다니다 길거리에서 들은 것은 이쪽보다는 나았거든요. 몽골 허밍은 신기하더군요. 코로 허밍을 하는 동시에 목에서도 소리를 내기도 하고, 나무토막으로 머리를 울림판 삼아 연주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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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쵸쵸와 나막쵸춍("나 좀 그만 괴롭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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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금 연주. 투박한 소리가 난다.


 공연이 끝나고 유스케군과 술을 마셨습니다. 저는 보드카, 유스케군은 맥주. 몽골의 마실거리에서는 뭐랄까, 몽골적인 맛이 느껴지는데(심지어는 보드카에서도), 그리 좋은 쪽의 맛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오줌같은 느낌이랄까요. 물론 오줌을 마셔보지는 않았습니다. 보드카 한 병을 비우고 기분 좋은 취기를 느끼면서 게르 밖으로 나가 별을 올려보았습니다.

 아침은 간장소스의 볶은면. 열 시쯤 가야의 집을 떠나 '에르데네 주 키드'라는 사원을 둘러보았습니다. 앞서 말했던 몽골인들의 묘한 취향을 말해주는 듯, 탱화들까지 무시무시합니다. 사람가죽으로 만든 말안장 앉은 괴상한 몰골의 사람을 조각해 놓은 것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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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다깨다하며 차 안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몽골노래(노래도 '영웅의 기상' 느낌이어서 비장하기 이를데 없습니다)를 외울 지경이 되었을 때쯤 울란바타르에 도착했습니다.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려오느라 피곤한 몸을 누이고 하루 쉬기로 합니다.

 테렐지

 느리적느리적 테렐지에 갈 준비를 합니다. 지난 밤에 테렐지에 가기로 결정했거든요. 가게에서 7000투그릭 정도의 먹고 마실거리를 산 뒤 숙소에서 대절해준 봉고차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동행은 역시 유스케군. 한 시간쯤 걸려 도착헸어요. 그런데, 갑자기 유스케군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아침에 먹은 것이 잘못된 모양이라며 토를 하더라구요. 강아지 한 마리가, 게르 밖으로 나와 토를 하는 유스케군을 꼬리치며 좇아다니면서 토를 먹어치웠습니다. 유스케군을 데리고 옆 게르에 들어가 같은 숙소에서 하루 먼저 이곳으로 왔다는 미국인 여행자들에게 약을 얻어서, 먹게 했습니다. 그는 게르 안에서 쉬기로 했고, 저는 주위를 산책했습니다. 게르 바로 뒤쪽에 바위산이 있어서, 올라가보기도 하구요. 테렐지쪽이 카라코룸보다는 제가 생각하던 몽골의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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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하는 가나와 유스케. 게르는 멀리 보이는 바위산 아래에 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말을 탑니다. 두 시간 동안 산 너머까지 다녀오는 코스였어요. 아까의 그 미국인들과 저를 가나라는 이름의 열 살짜리 몽골 어린이가 리드했습니다. 그의 리드에 따라 말이 짧은 시간동안 질주했는데,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를 정도였달까요. 돌아오는 길엔 말이 땀을 흘리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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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소년 가나

  유스케군은 앓은 탓인지, 조금 까칠해져 있었습니다. 불을 지펴주러 들어온 가나의 삼촌과 보드카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한국에 가서 일을 했었다. 그러나 곧 쫓겨났다. 다시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싶지만, 비행기삯이 없다"라는 정도의 내용)를 나누었습니다. 그가 나가자 유스케군은 게르의 문을 안쪽에서 잠궈버렸습니다. 새벽에 가나의 삼촌이 불을 때주러 다시 들어올 거라고 말했더니, 그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별 수 없이 얇은 침낭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습니다. 게르 가운데에 있는 난로의 불이 꺼지자, 엄청난 한기가 몰려왔습니다. 새벽 한 시와 여섯 시, 두 번이나 추위때문에 잠에서 깨었어요.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가보니, 바깥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덜덜 떨면서 다시 잠을 청해 여덟시까지 자고 일어나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산그림자가 있을 때 사진을 찍어두려고 했는데, 어디선가 개들이 사납게 짖으며 달려든는 통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게르를 들락날락했죠. 해가 완전히 뜨고 나서야 다시 나가 산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개 한 마리가 몸을 부비며 친한척을 해서 함께 걷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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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사이 마을은 눈에 덮혀 있었습니다. 산그림자가 산중턱까지 기어올라갔을 때쯤되어 게르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툴툴거리며 게르 위에 올라갔어요. 올라가느라 밑에 두고 간 빗자루를 건네받자, 아이들은 솜이불처럼 두툼하게 쌓인 눈을 꼼꼼히 쓸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눈발을 흩뿌렸냐는듯이 푸른 하늘 아래에서였습니다.

  가나와 뭉크가 지붕에 올라가 눈을 치우는 걸 보고 있자니, 열 시 반쯤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낸 차가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눈썰매를 타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어요. 숙소로 돌아가 씻고 세탁서비스를 요청한 뒤, 역 근처의 국제열차표 구매창구까지 걸어가 내일 저녁 러시아의 이르쿠츠크로 떠나는 기차표(33000투그릭, 4인실 윗칸. 도착은 출발 이틀 후 아침 여덟시)를 예매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빨래를 널고 신발을 빨며 이동을 준비했습니다. 갑작스레 변의를 느껴 화장실에 앉아 식은땀을 흘리며 설사를 했습니다. 한국에서 미리 사 둔 지사제 두 알을 투약하고, 저녁 일곱 시까지 한 숨 잤습니다. 일어나보니 옆 침대에 캐나다인 한 명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지금 막 이르쿠츠크에서 오는 길이랍니다. 이르쿠츠크는 몹시 춥다며(자기가 있을 때에는 영하 12도나 되었다고 하더군요) 옷이 충분하냐고 걱정을 하더군요. 제가 가려고 하는 호스텔(이르쿠츠크 다운타운 호스텔. 호스텔 검색은 여기! 또는 여기! 제가 여행하던 때는 비수기라 예약을 전혀 하지 않고-신용카드가 없어서 예약도 불가능했지만-링크해둔 사이트에서 어디서 묵을까만 결정한 뒤 이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종종 난처한 상황에 처할 때도 있었어요)에서 묵었던 모양으로, 기차역에서 다리쪽으로 가는 트램 1번을 타면 금방 도착한다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제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이집트의 여름은 몹시 덥다며 또 걱정을 해줍니다. 유스케군은 다음날 아침에 유럽으로 떠난다고 했습니다. 여행중 영어에 대해 느끼는 것은, 영어는 마치 탁구와 같아서 좋은 상대를 만나면 더 좋은 영어를 구사할 수 있고, 실력없는 상대를 만나면 형편없는 영어가 입밖으로 튀어나온다는 것입니다. 사흘이나 같이 다닌 유스케군과 충분히 친해지지 못한 것은 짧은 영어탓이랄수도 있겠죠.

 다음날에는 기차 안에서 먹을 것들을 사고 남은 몽골돈을 러시아 루블로 환전해둔 뒤, 숙소에서 웹서핑을 하며 기차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여섯 시 사십 분쯤 기차에 올랐습니다. 같은 칸에는 러시아인 부부와 딸 한 명이 함께 타게 되었습니다. 몽골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왔었는지, 기차가 떠날 때까지 플랫폼의 가족을 유리창을 통해바라보며 우는 바람에 인사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기차가 출발하고 나서 한참 뒤에야 인사를 나누었어요. Mr.Kim에게 받은 러시아어 프랙티스북이 유용했죠. 딸의 이름은 레나이고, 이르쿠츠크에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열여덟 살이고 학생은 아니라는군요. 온 몸을 울려 나오는 목소리가 비염 탓에 막혀버리는 듯한 목소리의 소유자입니다. 영어는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셋 중 누군가에게선가 풍기는 암내가 대단하더군요.

 아마도 새벽 네시나 다섯시쯤 국경인 수흐바타르에 도착한 듯했습니다. 여덟시 반쯤 일어나 역으로 가서 소변을 보고 세면을 했어요. 기차로 돌아와 몽골 군인이 국경에서 돈을 압수할지도 모른다는(불법으로 돈을 버는 것을 막기 위해 입국할 때에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인지를 적어야 합니다. 나갈 때에 가진 돈이 들어올 때의 돈보다 많으면 그 차액만큼을 압수한다고 합니다. 극단적인 경우겠죠. 뭐, 저는 귀찮아서 그 칸을 공란으로 해두었습니다) Mr.Kim의 으름장을 떠올리고는 점퍼의 모자 말아넣는 곳에 돈을 말아 종이에 싼 것을 청테잎으로 붙여놓았습니다. 출국심사는 제법 삼엄한 분위기였습니다. 다행히 돈 검사는 하지 않았구요. 열시쯤 기차가 출발하여 열한시쯤 러시아쪽 국경의 나우시키 역에 도착합니다. 한시쯤 입국심사를 마치고 여권을 돌려받았습니다. 두시 반까지 나우시키 역 주위를 산책했습니다. 한적한 시골마을로, 목조건물이 많았고 수종이 몽골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산책 도중 스쳐지나간 러시아 꼬마여자아이의 입모양은 뭔가 욕을 하는 듯했고(눈빛이 분명 그랬거든요), 중학생쯤 되어보이는 사내녀석은 허리가 가슴께에 있어보일 정도로 다리가 길었는데, 걸음은 또 어찌나 빠르던지요. 기차는 네시아 다시 출발했습니다. 그야말로 완행이어서 작은 역에서도 하나하나 정차를 합니다. 같은 칸의 아저씨가 토마토 하나와 살라미 소세지를 잘라서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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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나우시키 역


 옆 칸에는 브리얏 계열의 러시아인(몽골인으로 착각했습니다. 러시아에 사는 몽골 민족입니다)이 몽골에서 한국 전자제품을 잔뜩 사가지고 와서는 내게 설명서 내용을 알려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앙가르스키라는 곳에서 마사지를 하는 분이라는데, 무척 유쾌한 아주머니입니다. 한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아줌마 타입이어서, 전국노래자랑에서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무대 아래로 뛰쳐나가 춤을 추시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거의 정확합니다. '까레야(한국)' 물건을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재킷 하나를 보여주시며 울란바타르의 한국상품 상점에서 샀다는데, 아무리 보아도 중국제 같아 중국제라고 했더니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하더라구요. 같은 칸의 일행과 나누는 대화의 억양이나 제스츄어, 표정을 살펴보니 '속았다' 하는 것 같았습니다. 설명서는 건강보조기의 것이었는데, '정력증강'이나 '생리불순' 같은 단어들을 온갖 몸짓으로 설명하기란 꽤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자, 내일 아침이면 바이칼 호수 옆의 도시 이르쿠츠크에 도착합니다. 꽝꽝 얼은 바이칼 호수 위를 걸어봅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닥터 지바고의 눈 덮인 벌판이 생각나신다구요? leoniscore군은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러시아인들의 현실과 만나게 됩니다.

1. 중국(06. 3. 29. ~ 4. 4.)

궤적 2007. 2. 20. 18:41 posted by 주말수염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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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北京 - 만수아저씨

 아저씨는 자신을 이만수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삼성의 홈런왕 이만수. 그 이름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아저씨와 헤어지는 날에서야였는데, '만수'라는 이름이 정말 아저씨의 이름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동행하는 동안 아저씨가 해 주었던 이야기는 도무지 황당무계한 것들뿐이어서 '네 명을 앞에 두고 거짓말을 해서 네 사람이 다 속아 넘어가면 홈런'이라는 규칙의 게임이 있다면 그야말로 홈런왕이 될 것 같은 사람이 바로 아저씨였던 것입니다.

 아저씨를 만난 것은 천진에서 북경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였어요. 여행 준비를 그다지 치밀하게 하지 않아서 당장 북경의 어느 숙소에서 잘까를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묻고 있자니 누군가 뒤에서 슬그머니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만수 아저씨였죠.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작은 글씨로 숙소 주소들을 적어둔 종잇조각을 꺼내어 보여주며 제게 동행을 제안했습니다. 뭐,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아 그러기로 했어요.

 아저씨를 따라 들어가게 된 조선족 민박집은 그럭저럭 마음에 들만한 곳이었습니다. 민박집에서 차려주는 저녁밥을 먹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아저씨는 쉴새없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의 요는 '극동 각국의 여성들과 잔 이야기'였죠.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아저씨는 사실 컴퓨터 부품이나 포르노 CD등을 가져다 파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그럴듯했던 것은 노인들이 잠이 없는 까닭은 잠든 사이에 죽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다 잠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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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아침에는 숙소를 옮겨야 했습니다. 민박 주인집에서는 예약한 손님이 있다는 핑계를 대었지만, 아무래도 방안에서 줄창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가 못마땅한 모양이었습니다. 前門 근처의 대책란가 제일반점(2인 1실 60원)으로 옮겨갔어요. 근처 식당에서 우육면(8원), 진저로스(12원), 맥주(8원)를 먹고 마신 뒤 Leo Hostel에서 반나절동안 자전거를 빌렸습니다(10원). 가까운 천안문에서부터 자금성 주위의 후통(뒷골목), 류리창을 구경했습니다. 잘 정비된 자전거 도로가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나라의 인사동쯤 되는 거리라고 하는 류리창 뒷골목의 벽에는 각종 계몽 화보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발상이나 내용들이 재미있더군요. 몇 가지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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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은 각자 알아서-!


 어둑해졌을 때쯤, 아저씨의 귀신같은(!) 감으로 야시장을 발견했습니다. 각종 과일들과 양꼬치, 술들을 사서 숙소에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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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치구이 가게. 양꼬치는 생각보다 훨씬 값싸고 맛있으니, 꼭 먹어보자!


 사흘째에는 만리장성을 구경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또 숙소를 옮기자고 하시는 아저씨 덕에 배낭을 북경역에 맡겨두고(8원) 만리장성의 한 부분인 팔달령으로 향하는 919번 버스를 탔습니다. 급행을 의미하는 快 자를 적은 종이를 내어보여서 타게 된 버스(왕복 50원)는 알고보니 중국어 가이드가 딸린 패키지(?) 방식의 버스여서, 몇 군데의 상점에 손님들을 끌고 다니더군요.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조금 짜증이 났습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명황궁이었습니다.ISIC카드를 만들어 간 덕에 50% 할인된 가격(20원)으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명나라 역사를 밀랍인형으로 만들어놓은 곳으로 그다지 볼만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인형의 경우 동작은 어색했지만 각각 만들어 놓은 얼굴의 표정이나 표현만은 근사하더군요. 상점을 한 군데 더 들른 뒤 버스는 팔달령에 도착했습니다. 다시 버스로 돌아오는 시간이 정해져있어서 서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45분동안 쉬지않고 걸어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왠지 아래에서 감탄하며 보는 것만은 못했어요. 같은 길로 내려온다는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길로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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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버스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자.



 다른 길을 택한 탓일까, 길을 잃었습니다. 당연히 약속한 버스출발 시간보다 늦게 되었구요. 다행히 짐은 가지고 있었지만, 허둥대게 되었습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니 저- 아래쪽에 있는 주차장에서 아저씨가 저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목청껏 소리를 질러 아저씨를 부른 뒤 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철조망이 벌어진 틈을 지나,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해가면서 말이죠. 겨우 버스에 탈 수 있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수첩에 적어둔 중국어 '미안합니다!'를 수도 없이 외쳤습니다. 그런데 화를 낼 줄 알았던 승객들이 박수를 쳐주더라구요. 어리둥절하고 겸연쩍은 마음이 되어 자리에 앉았습니다. 덕분에 다음 코스인 명십삼릉은 주마간산식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내내 아저씨는 술을 마셨습니다. (화가 나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저씨는 저와 동행하는 내내 술을 마셨는데 나중에 말씀하시길, 이야기를 할 용기를 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와우-!)

 북경역에서 짐을 찾고 다시 前門쪽으로 돌아와 숙소를 잡았습니다. 근처의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훠궈 비슷한 요리로 간단히 요기를 했습니다. 그새 값싸게 끼니를 해결하는 방법을 깨달은 것인지, 둘이서 21원에 요기할 수 있었습니다.

 북경에서의 마지막 날에 구경한 곳은 당연하다는 듯 자금성이 되었습니다. 어제의 그 식당에서 작장면(4원)으로 아침을 대신했습니다. 딱 기대했던 정도의 맛이더군요(기대치가 무척 낮았다는 뜻입니다). 자금성을 구경하기 전에 북경역에 짐을 맡기고 呼和浩特(후허하오터)행 경와(연와-연한 침대-와 구분되는 딱딱한 침대. 딱딱한 침대라고는 하지만 전혀 딱딱하지 않다. 차이점이라면 연와는 2층인데 비해 경와는 3층이라는 정도) 윗자리 기차표를 예매해 두었습니다. 표를 구하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서 한자와 약간의 몸짓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이를테면 날짜와 呼和浩特과 硬臥라는 한자를 적어보이고 매표구의 유리창에 석삼(三)자의 선을 그려보인 후 제일 위의 선에 동그라미를  치는 것으로 표를 예매하는 것이 끝났으니까요.

 자금성의 입장료가 비싸고(60원, 음성가이드기계 40원) 다리가 부었다는 이유로 만수 아저씨는 입장하지 않았습니다. 오후 다섯시에 모주석 사진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자금성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북한의 어휘를 구사하는 가이드기의 음성을 들으며 관람을 하려니 어쩐지 현실감이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가이드기에는 자금성 내부의 지도가 표시되어 있는데, 아직 관람하지 않은 곳은 붉은 램프로 표시가 되고 현위치는 램프점멸, 지나온 곳은 램프가 꺼지는 방식입니다. 게임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기분으로 한군데 한군데를 꼼꼼히 관람하다가, 폐문시간(동절기 15:30)이 되어 동쪽구역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궁궐이 조용하고 단아한 느낌이라면 중국의 궁전은 그 육중한 몸피로 우리를 압도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크기에 대한 감각을 잠시 잃을 정도였달까요.

 네시 반쯤 아저씨가 돌아오셨습니다. 천안문 광장을 배회하다 오셨다는 아저씨에게서는 술냄새가 물씬 풍겼습니다. 저를 만나자 마자 반가운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처럼 술병을 건네는 아저씨 덕에 자금성 앞의 아무데에나 앉아 술을 약간 마셨습니다. 이때서야 서로 통성명을 했습니다. 열차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자 아저씨는 저를 바래다준다고 하셨습니다.

 열차가 출발하는 북경서역은 그야말로 으리으리해서 그 스케일에 질릴 정도였습니다. 역 구내의 쾌찬점(중국식 패스트푸드)에서 아저씨께 저녁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기차 안에서 먹을 음료수와 빵을 샀습니다. 아저씨도 맥주를 비롯한 이것저것을 사시더군요. 발차 시간이 가까워져서 아저씨와 작별의 포옹을 했습니다. 아저씨의 몸은 몹시 메말라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제 손에 조금 전에 산 것들을 건네주시며 서운한 얼굴이 되었어요. 끝가지 손을 흔드시는 아저씨를 여러 번 돌아보며 검색대를 통과해 역 안에 들어갔습니다.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비장함마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후허하오터呼和浩特

 천장이 몹시 낮은 3층침대칸에서 눈을 떠보니, 바깥의 풍경이 황량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로수의 키가 엄청나다는 것을 그 아래를 지나가는 노인을 보고야 깨달았어요. 뭐든지 큰(?) 나라인 탓에 크기에 대한 감각이 둔해진 모양입니다.

 기차는 아침 일곱시 반쯤 호화호특에 도착합니다. 북쪽으로 올라와서인지 조금 쌀쌀해졌음을 느낍니다. 역전에 나오자마자, 커다란 배낭을 맨 저를 보고 한글로 출력된 종이를 건네며 초원관광을 권유하는 아저씨를 뒤로하고(당장 환전해둔 돈도 없기 때문에) 통따반점으로 향합니다. 40원짜리 2인실을 혼자 쓰기로 하고 방에 들어가보니, 허름한 방이지만-침대 스프링이 죄다 망가져 있습니다- 채광이 참 좋아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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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따반점. 방은 허름하지만 채광이 무척 좋다.


 어제 먹다 남아서 싸온 음식들로 요기한 뒤, 일단 낮잠을 자둡니다. 햇볕이 몸을 간질이는 기분좋은 느낌을 즐기면서 한숨 자고 일어나 역으로 돌아가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행 열차의 출발시간과 가격을 알아봅니다. 요령은 북경역에서와 같습니다. 기차번호 4602/3, 4월 3일과 7일 밤 열 시 30분에 출발하고 요금은 각각 551원, 489원.
 
 당장 표를 살 만큼의 돈을 환전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환전할 곳을 찾아 한참 돌아다니다가 오늘이 일요일임을 깨닫습니다. 한참을 걸은 탓에 허기를 느꼈으므로 역 맞은편의 우육면대왕牛肉麵大王에서 소고기감자볶음과 쌀밥을 먹습니다. 우육면대왕과 같은 쾌찬점이 편한 것은 메뉴판이나 전시되어있는 음식의 실물을 보고 적당한 음식을 고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전시된 음식을 보고 고를 경우 먹고 싶은 음식을 손으로 가리키면 되고 메뉴판에서 고를 때에는 사진 아래의 한자를 가지고 있는 수첩 등에 옮겨적어 보여주면 됩니다. 이도저도 곤란할 때는 옆 테이블을 쓱 둘러본 뒤, 마음에 드는 음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죠. 이 때 주의할 것은 손가락으로 가리킬 때 그 음식을 먹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한 번 씨익 웃어줘야 한다는 것 정도입니다.

 작은 도시의 쾌찬점이어서 그런지 북경서역의 쾌찬점보다 직원들이 친절합니다. 수첩에 한자를 적어 주문을 하고 나자 직원이 수첩에 무언가 글씨를 적고 나서 호기심어린 눈빛을 보냅니다.
 "爾是日本人(일본인입니까?)"
 "我是韓國人(워쓰한궈런-한국인입니다.)"
 아래의 간단회화는 중국을 여행하면서 몇 번쯤 써먹을 수 있으니 외워두는 것도 좋겠죠?

 배를 채웠으니 다시 환전할 곳을 찾아 걷습니다. 다행히 환전업무를 하는 중국은행中國銀行을 찾아 50$를 환전(396원)합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무작정 호화호특으로 온 탓에 어디를 가야할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역 앞으로 가서 아침의 그 중국인 아저씨를 찾아보지만 북경에서 오는 기차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역 앞으로 나오는지, 보이지 않는군요. 호화호특의 여행정보를 얻기 위해서 PC방을 찾기 시작합니다. 온갖 바디랭귀지를 동원하여 행인들에게 물어보니 손짓으로 방향만 가르쳐줍니다. 덕분에 PC방의 동서를 수차례 진동하다가 영어를 구사하는 젊은 아가씨의 통역으로 가까스로 PC방에 들어갔어요. 요금은 한 시간에 2원, 5원의 보증금(?)을 내야 합니다(나갈때 돌려줘요). 그런데 맙소사, 한국사이트들이 접속되지 않는군요. 덕분에 이 지역의 여행정보를 얻는 것은 실패입니다. 숙소에 돌아가 맥주를 마시다 잠이듭니다.

 4월 3일. 울란바타르행 기차가 출발하는 날입니다. 은행에 가서 50$를 더 환전했어요. 몽골돈도 미리 바꿔두려 했는데, 몽골돈은 없다는 모양입니다. 곧장 역으로 가서 기차표(호화호특-울란바타르, 밤 열 시 30분 출발, 551원)를 사둡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꾸려 숙소에 맡긴 후 체크아웃을 합니다. 이제 기차시간까지는 꼼짝없이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어디를 가야 할까 곰곰히 생각해 보다가 어제 중국인 아저씨가 건넨 종이를 꺼내듭니다. 근처에 '시라무인 초원'이 있는 모양입니다. 아저씨를 찾을 수 없었으니, 혼자라도 가봐야겠다 마음먹고 어제 걷는 길에 보아두었던 버스터미널로 갔어요. 그런데 호객꾼을 붙잡고 적어둔 한자를 보여주며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아아, 호화호특 여행은 이래저래 실패로군요.

 '어짜피 몽골에 가면 초원쯤이야 질리도록 볼텐데'라며 스스로를 달랜 뒤, 버스 정류장에서 '공원'자가 들어간 정류장 이름을 찾다가 '국가삼림공원'이라는 곳을 발견하고 그곳에 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버스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 외곽에 이를 정도로, 크지 않은 규모의 도시입니다. 마침 소학교 아이들이 하교할 시간이었는지 버스에 학생들이 몇명 탔는데, 교복이 꼭 우리나라의 옛 민방위복같더군요.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좋지 않은 취향이다!'

 국가삼림공원은 황량합니다. 버스의 종점인데, 내린 사람은 저와 국가삼림공원 안으로 들어간 인부 뿐입니다. 그나마 저는 들여보내주지도 않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피워무니, 공안차량이 다가와서 담배불을 끄라고 손짓합니다. 아무래도 산불조심기간쯤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공안차량이 비포장 도로위에 먼지를 일으키며 떠난 뒤 허탈한 기분이 되어 아무데나 주저앉아 버스를 기다렸어요. 다시 역 앞으로 돌아와 무작정 시내를 걷기 시작합니다.

 한국에서건 중국에서건 시간을 때우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역시 PC방이더군요. 한참을 걷다 찾아낸 PC방에 들어가 dcinside 힛겔의 자료들을 보며 혼자 낄낄댑니다. 한글은 깨져보이지만, 이미지 자료 위주라 다행입니다. 그러나 디씨질도 곧 질려버립니다. 밖으로 나와 걷다가 통따반점 뒤쪽 시장의 허름한 식당앞에 놓인 찜통에서 훈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걸 보고 시장기를 느끼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고기만두(3원), 우육면(4.5원)을 시켜봅니다. '역시 만두는 중국!'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어요. 게다가 가격도 무척 저렴합니다. 5.5원어치를 더 사서 싸들고 숙소로 돌아가 짐을 찾고 역 안에서 『귀여운 여인』(안톤 체홉)을 읽으며 기다리다 보니 탑승시간이 됩니다.

 탑승한 칸의 차장은 몽골인입니다. 중국인 세 명과 4인실을 쓰게 되었어요. 6인실을 요구했는데 왜 4인실인가 의아했으나, 알아 보니 이 열차에는 4인실이 없는 모양입니다. 세 명의 중국인 중 한 명은 북경연합상업대학에 다니는 83년생 학생이고 영어를 구사할 줄 압니다. 덕분에 약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사업차 몽골에 간다는군요. 다른 한 명은 반대머리의 아저씨이고 나머지 한 명은 '대학생의 누나의 남편'으로 큰 덩치에 조금은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꽤 착합니다. 화장실 앞에서 만난 몽골 아이와 대화를 시도해봅니다. 수첩에 적어간 대로 "센베노" 라고 몽골말로 인사를 하니 의외로 영어로 대답을 합니다. 영어 실력도 중국인 대학생보다 낫습니다. 드라마 <야인>을 봐서 김두한을 알고 있다는군요. 나름대로 몽골의 주변국들에 대한 평을 늘어놓는데, 중국에 대한 적개심이 대단한 듯합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딱히 나쁘지는 않다" 정도. 누나가 한국 사람에게 시집을 갔대요.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한국은 그렇게 약해서 쓰겠어?"라는 식입니다. <야인>에서 본 대로라면 김두한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일본인이 총 한번만 쓰면 끝이라는 겁니다. 이어지는 중국에 대한 평은 "덩치는 크지만 멍청해. 게다가 나쁜 놈들이야." 러시아는 "덩치도 큰데다 힘도 센 좋은 친구"라는 인상인 듯합니다. 어린아이답게 가장 센 것은 역시 "몽골"이라는군요. 수첩에 적어두었던 몽골어 몇 가지를 확인한 뒤 잠이 듭니다.

 다음날 오전 여덟시쯤 국경도시 얼렌에 도착합니다. 오래 정차하는 모양이어서 차장에게 기차표를 받아들고 역 밖으로 나갑니다. 처음에는 화장실에만 다녀올 작정이었는데, 걷다 보니 시가지까지 가게 되었어요.  몹시 쌀쌀해서 그늘쪽으로 걸을 때에는 몸을 잔뜩 움츠리고 다니는데, 현지인들은 '이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표정입니다. 돌아다니다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아침 겸 점심을 먹습니다 .마파두부와 쌀밥, 맥주 한병(12원). 시골 동네여서 값은 싼데 맛은 빼어납니다. 며칠 새 익힌 어설픈 중국어 몇 마디로 주문과 계산을 해결합니다. 역에 돌아온 시간은 오전 열시. 차장이 적어준 '2:00'이 두 시간 동안 정차한다는 건지, 두 시까지 돌아오라는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불안해져서 플랫폼을 계속 오가며 기다립니다. 같은 신세가 된 몽골 아가씨가 "언제쯤 기차를 탈 수 있을까, 여권을 두고 내렸는데 걱정이다"라고 영어로 말을 겁니다.

 마침내 오후 두시가 되어 출국심사를 시작합니다. 한국에서 받아 둔 비자에 도장을 받고 기차에 오릅니다. 기차는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여 몽골쪽의 국경도시인 잠잉우드에 도착합니다. 그 사이에 같은 칸의 덩치 큰 중국인이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모양으로 군인에게 불려갔다 옵니다. 어제의 그 몽골 꼬마 녀석이 우리 칸으로 와서 "당신들 바보야? 나쁜 짓을 했으니 벌금을 물어야 할걸?" 따위의 이야기를 하다가 "Go your, ……. nothing."하고 맙니다. 아모도 하려던 말은 "Go your country!"쯤 되지 않을까요?

 몽골쪽의 입국심사는 기차 안에서 받습니다. 상당히 위압적인 태도인데, 아까 잘못을 저지른 중국인이 긴장하여 허둥대는 모습이 조금 우스워 보입니다. 기차는 아홉시에 잠잉우드를 출발합니다. 어둠 속에서 본 바깥풍경은 그야말로 '몽골'스럽습니다. 별이 이렇게 낮게도 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불빛이라곤 전혀 없는 허허벌판에 기차의 창문으로 새어나간 빛이 작은 네모를 그리며 떠갑니다. 가끔씩 나타나는 작은 역에는 액자 속에서 걸어나온 듯한, 빨간모자를 쓴 역무원이 서 있습니다. 기차가 지나간 뒤 작은 역은 별처럼 멀어져갑니다.




-다음편은 몽골! 제발 기대해주세요~ >.<
-여행의 시작이라 아직은 요령이 없는 leoniscore군!  여행기 역시 엉망입니다! 하지만 기다려주세요! 아직 갈 길이 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