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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은 꽃이 되고픈가 봐요

수양록 2007. 2. 6. 11:29 posted by 주말수염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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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 영수증


 
 

느껴집니까, 영수증에서 나는 향기가?


 당신은 지금, 제가 회사에 가 있는 동안 장을 봐두라고 동생에게 체크카드를 맡겨둔 결과물을 보고 계십니다. 얹혀살고 있던 친구의 집에서 나와 동생과 옥탑방이나마 구해 살림을 차린 지 3주째, 하나 둘씩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이제는 집에서 밥을 해먹어야겠다는 심산으로 소금이나 후추, 간장 따위의 조미료와 먹고 싶은 것들을 사오라며 동생에게 체크카드를 맡겨두고 출근을 했습니다.


 퇴근 후 제가 보게 된 것은 당신이 위에서 본 영수증입니다. 동생이 사온 것들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우선 사오라고 했던, 요리를 위해 필요한 것들. 대두유 1.8리터짜리. 조금 큰 것을 사왔다는 것을 제외하곤 별 문제 없습니다. 델리케챱 50. 어디에 뿌려먹으려고 사왔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설마 밥에 비벼먹으려는 것은 아닐 테고. 한술에국찌개. 국간장으로는 볶음요리를 할 수 없죠. 호기심에 사온 게 아닐까 짐작됩니다. 바몬드카레. 분말입니다. 영수증에 적혀있는 대로, 동생이 사 온 것들 중에 야채는 전혀 없습니다. 맛소금1호. 요리를 할 때 미원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데, 맛소금이라니! 하얀설탕 1KG. 집을 옮기기 전까지 다 소비하지 못하겠죠. 순후추 20g. 유일하게 제대로 사온 것입니다. 뭐, 다른 선택지가 없나요?

 다음으로 먹고 싶은 것들. 초코다이제3. 세 개 들이 번들 비스킷입니다. 쥬시쿨(사과). 저도 몹시 좋아 하기 때문에 패스. 감자깡. 모어마쉬멜2. 쵸코바입니다. 짜파게티 멀티. 다섯 개 들이 번들. 쌀 새우깡45. 가문어. 누가 봐도 안주거리죠.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죠. 다음 부류는 온갖 향기나는 것들입니다. 페브리즈 은은. 오, 이렇게 큰 사이즈도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거대합니다. 샤프란 로맨틱. 지난번에 섬유유연제인줄 알고 사온 울샴푸를 만회하기 위한 것인 듯합니다. 냄새쏙쏙 허브. 방향제입니다.


 아아, 제 동생은 꽃이 되고 싶은가 봐요. 친구와 살 때에는 3만원어치 장을 봐오면 2주 정도는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었는데, 이건 뭐, 과자나 씹으며 살 수도 없고. 저는 향기 뿜는 꽃이 되기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되고 싶습니다만.

 어쨌거나, 동생에게는 아무 말 못하고 여기서 불평하고 있습니다. 대나무밭에서 소리지느는 두건장이라도 된 것 같군요.

상반신 불수의 휴대전화

수양록 2007. 1. 25. 17:46 posted by 주말수염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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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신 불수가 되어버린 휴대전화



 사실을 말하자면, 전화기가 바닥에 떨어진 데에는 어느 정도 고의가 섞여있었다. 그럭저럭 3년동안 쓴 전화기라지만, 워낙 통화를 즐기지 않는 편이어서 투명 케이스를 씌우거나 튠업을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전화기에 별다른 애정이 없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떨어진 전화기는 '마음에 딱 들 만큼' 고장이 나 주었다. 접히는 부분(힌지라고 부르면 될까)을 기준으로 아래쪽의 기능은 살아있고, 윗쪽의 기능은 정지하였다. 이를테면, 송화기 부분인 아래쪽은 살아있어서 내가 하는 말은 상대에게 들리지만 수화기 부분인 위쪽의 기능은 정지하여 상대가 하는 말은 나에게 들리지 않는다는 식이다. 다행히 스피커가 위치한 곳은 아래쪽이어서 아침에 나를 깨워주는 알람시계로서의 기능만은 충실히 해주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아주 만족스러운 상태이다. 이 참에 전화기를 없애고 알람시계나 하나 장만할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주변 사람들이다. (여기부터는 뻔한 변명이 되어버릴테니 생략하도록 하자.)
 결론은,
 
 "전화기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