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동음이의어일까, 다의어일까?

수양록 2008. 10. 16. 13:05 posted by 주말수염반장

중학교 1학년 2학기 생활 국어 교과서를 보다가 의아한 점이 있어서 질문합니다.

교과서 92~93쪽에 다음과 같은 '활동' 란이 있습니다.




활동 2 다음 밑줄 그은 낱말의 뜻을 생각해 보자.
1) 밑줄 그은 '해'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밑줄 대신 따옴표로 표시하겠습니다.)

이제
저녁 노을 너머로
'해'가 지네요.
어둠의 사자가 서서히 다가오면
이 '해'도 다 가게 되겠지요.
이 '해'의 마지막 '해'를 보니
내 마음은 설레네요.

-이 시에서는 '태양'을 의미라는 '해'와 '1년'을 의미하는 '해'가 같이 사용되었지만, '해'의 의미를 혼동하지 않고 올바로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은 문맥 속에서 의미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만일, '해'라는 낱말이 홀로 쓰였다면, 이 낱말이 '태양'을 뜻하는지, '1년'을 뜻하는지 올바로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 같이 동음 이의 관계에 있는 낱말은, 문맥이나 상황을 고려하여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좋다.




인용한 부분에 따르면, '해'는 동음 이의어입니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 편찬 지침 1'에 따르면 '한 표기에 하나 이상의 의미가 대응될 경우 두 가지 처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표제어를 달리해서 의미를 구분해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의 표제어 아래 뜻풀이 번호를 달리해서 구분해 주는 것이다. 전자를 동음이의어로 처리한다고 하고 후자를 다의어로 처리한다고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해'의 동음 이의어를 18개로 구분했고, 그 중 '해01'에 대해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해01
[Ⅰ]「명사」
「1」‘태양02「1」’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2」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한 해는 열두 달로, 양력으로는 365.25일이고 음력으로는 354일이다.
「3」날이 밝아서 어두워질 때까지의 동안.
[Ⅱ]「의존명사」
((주로 고유어 수 뒤에 쓰여))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을 세는 단위.





중학교 1학년 2학기 생활 국어 교과서에서는 '해'를 동음 이의어로 보고 있는 반면,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같은 어휘를 다의어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교과서 쪽의 잘못인 듯합니다. 이것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라는 질문을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에 올려 놓고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다. 예전 답변을 검색해 보니 이렇다.




안녕하십니까?

동음이의어와 다의어는 서로 상대되는 관계가 아닙니다. 따라서 동음이의어로 분류할 수 있으면서 경우에 따라 다의어로도 분류할 수 있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문의하신 ‘해’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1) 태양을 나타내는 ‘해’와 연도의 단위를 나타내는 ‘해’가 음이 같은데 뜻이 다르다는 특성을 중심으로 분류하자면 ‘해’는 동음이의어입니다.

2) 하지만 하나의 단어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특성을 중심으로 분류하자면 ‘해’는 다의어입니다.

그런데 교과서 99쪽에서는 동음 이의어와 다의어를 '구별'할 것을 요구한다. (활동 4 '동음 이의어와 다의어를 구별해 보자.')

안녕하십니까?
일단은 ‘태양’을 뜻하는 ‘해’와 ‘1년’을 뜻하는 ‘해’를 어떤 이유로 동음이의어로 처리하고 있는지 학교 교육 과정을 기준으로 그 근거를 찾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다의어에서 일부 의미가 원래의 기본 의미와 아주 멀어졌을 경우 그것을 아예 동음이의어로 간주하는 일이 있기는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명사 ‘해’에 대하여 1) 태양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2)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으로 풀이하고 있는데, 이는 ‘해’를 다의어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론적 견해에 따라서는 앞의 1)과 2)를 아예 다른 의미로 간주하여 ‘해1’과 ‘해2’로 나눌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그 의미적인 관련성이 멀어졌다고 보아 ‘해1’과 ‘해2’를 동음이의어로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의어와 동음이의어는 어원뿐 아니라 의미적 관련성을 기준으로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교과서 104쪽의 '이 단원을 마치며' 란을 보면, '동음 이의어는 뜻이 다른 별개의 낱말이기 때문에 사전에는 따로따로 올리며, 다의어는 하나의 뜻어서 관련되어 확장된 것이므로 한 낱말로 사전에 올린다.'라고 씌어 있다. 교과서 역시 사전을 기준으로 동음 이의어와 다의어를 구분함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해'를 다의어로 보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1학년 2학기 생활 국어 교과서에서는 그것을 동음 이의어로 가르치고 있다.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